‘오원춘 사건’ 현장에서 450m, 성폭행 끝날 때까지 기다려
경찰 “자연스러운 성관계라고 판단했다” 무책임한 해명

[뉴스포스트=권정두 기자]  지난해 국민들을 분노에 끓게 했던 ‘오원춘 사건’. 그 현장에서 불과 450m 떨어진 곳에서 또 성폭행 사건이 발생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경찰의 대응은 허점투성이였다. 신고한지 2분만에 현장에 도착한 경찰은 1시간 동안이나 성폭행 현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자연스러운 성관계라고 판단했다”는 것이 경찰의 해명이다. 그러나 피의자는 성폭행 전과2범의 전자발찌를 착용한 ‘성폭행 중점관리 대상자’였다.

지난 3일 오전 3시 20분. 출장마사지 여성 A씨가 수원시 팔달구 지동의 한 다세대주택으로 들어갔다. 밖에선 그녀를 태워다준 출장마사지 업소 남자종업원 문모(22) 씨가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손님 집에 들어간 여성이 ‘특별한 점 없이 일을 시작한다’는 내용의 확인 전화를 하기로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0여분이 지나도 기다리는 전화는 오지 않았다. 이상하게여긴 문씨는 A씨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기는 꺼져있었다.

2분 만에 도착한 경찰, 1시간 지나 검거

문씨는 “출장마사지 여성이 손님 집에 들어갔는데 전화기가 꺼져있다. 이상하다”며 112에 신고했다. 당시 시간은 오전 3시 33분경이었다. 경기지방경찰청 112종합상황실은 위급한 상황일수도 있다고 판단하고 비상출동 지령인 코드1을 발령했다. 신고 2분여만인 오전 3시 35분경 수원 동부파출소 소속 경찰관이 사건 현장에 도착했다. 5분 뒤에는 경찰관 3명이 추가로 도착했다.

현장에 도착한 5명의 경찰관은 A씨가 들어간 집 주변을 수색했다. 문은 잠겨있었지만 집 뒤쪽의 창문을 통해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집 안에서는 임모(26) 씨가 A씨를 성폭행하고 있었다. 경찰관들은 문을 따고 들어갈 수 있는 장비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수원중부경찰서 상황실과 대처방법을 논의한 끝에 ‘위급한 상황이 아닌 것 같으니 일단 지켜보자’는 결론을 냈고, 그대로 지켜보고 있었다.

오전 4시 18분에는 수원중부경찰서 소속 형사기동대원 4명이 추가로 현장에 도착했다. 이로써 현장에 총 9명의 경찰관이 있었지만, 여전히 검거를 위한 움직임은 없었다.

곧 피해자 A씨가 문을 열고 나왔다. 그녀는 나오자마자 “성폭행을 당했다”고 했고, 그제야 경찰관들은 피의자 검거에 나섰다. 오전 4시 25분경 피의자 임씨는 경찰에 검거됐다. 현장에서는 임씨가 A씨로부터 빼앗은 현금 2만9,000원과 침대 밑에 있던 흉기가 발견됐다. 문씨가 112에 신고하고, 경찰관이 현장에 출동한지 무려 1시간 가까이 흐른 뒤였다.

이같은 사건이 알려지자 경찰의 부실한 초동대응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게다가 이번에 사건이 발생한 곳은 지난해 4월 온 국민에게 큰 충격을 준 ‘오원춘 사건’ 현장에서 불과 450m가량 떨어져있는 곳이어서 더욱 지탄을 받고 있다. 여기에 경찰이 내놓은 무책임한 해명은 타오르는 불씨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경찰은 “창문을 통해 봤을 때 피의자가 여성을 흉기로 위협하는 등 강압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없었다”며 “두 남녀의 행동이 너무 자연스러워 위급한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또한 “강제로 문을 따고 들어갔다가 인질극 등 여성이 위험해질 수 있음을 고려해 무리하게 진입을 시도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결국 경찰은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성폭행 현장을 1시간 가까이 지켜만 보고 있었던 것이다.

‘오원춘 사건’이후 도입한 각종 정책, 있으나마나

강력 성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미숙한 경찰 대응은 비난의 대상이었고, ‘오원춘 사건’은 그 정점을 찍었었다. 당시 경찰은 피해 여성의 다급한 신고전화에 “지금 성폭행 당하고 계신거냐”고 묻는가 하면 “자세한 위치가 어디냐”, “주소를 알려달라”고 하는 등 부실한 대응으로 국민들의 원성을 샀다. 또한, 피해 여성이 비교적 자세히 사건 현장을 알려줬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고려하지 않은 탐문조사로 결국 신고한지 약 13시간 만에 피의자를 검거했다. 그 사이 피해 여성의 주검은 심하게 훼손당하기까지 했다.

‘오원춘 사건’ 이후 경찰은 신속한 출동과 적극적인 초동대응이 가능하도록 ‘위급상황시 가택출입·확인 경찰활동 지침’을 마련해 지난해 12월부터 시행에 들어간 바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 경찰은 신고 2분 만에 현장에 도착, 성폭행 장면을 목격하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신속한 출동과 애써 만들어놓은 지침을 무색하게 만든 것이다.

설사 경찰이 판단했던 것처럼 ‘자연스러운 성관계’였다 하더라도 문제다. 출장마사지 여성과 손님이 성관계를 갖고 있다면 그것은 곧 성매매 현장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경찰의 해명이 무책임한 이유다.

상습 성폭행범들의 재범방지를 위해 마련해둔 방안들도 전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경찰 조사결과 피의자 임씨는 2007년 미성년자 성폭행으로 2년 6개월, 2010년 강간미수죄로 2년 6개월을 복역한 바 있는 ‘성폭행 중점관리 대상자’였다. 전자발찌도 착용한 상태였다. ‘성폭행 중점관리 대상자’가 전자발찌를 착용한 채 1시간가량이나 성폭행하고 있는 현장을 경찰이 지켜본 꼴이 됐다.

이와 관련해 경찰은 “우범자에 대한 인권보호 차원에서 전자발찌 착용자에 대한 정보는 지구대 직원이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며 “향후 이러한 정보를 파출소 직원들도 공유하도록 보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지난 4일 특수 강도강간 등의 혐의로 임씨를 구속했다. 아울러 경기지방경찰청 청문감사담당관실은 이번 사건의 초동대처가 적절했는지 등 진상파악을 위해 감찰조사에 착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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