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임 사장 해임 이후 4개월간 리더십 공백 코레일
에스컬레이터 역주행, 철도노조 투쟁 등 자중지란
한 사장, 취임 후 대규모 간부 인사로 리더십 확보
[뉴스포스트=이상진 기자] 한문희 사장이 이끄는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경영실적과 조직운영이 안정권에 접어들었다. 전임 사장의 해임으로 리더십 공백을 겪었던 코레일을 취임 8개월여 만에 정상괘도로 올려놨다는 평가다. 다만 올해 한문희 사장은 최대 1조 원 안팎의 수익이 달린 철도 유지보수 권한을 놓고 이견을 보이는 국가철도공단과 풀어야 할 숙제가 남았다.
‘알박기 인사’ 논란 나희승 사장, 해임 후 ‘자중지란’
코레일은 전임 나희승 사장 시절 탈선 위험에 시달렸다. 문재인 정부인 2021년 11월 취임한 나희승 사장은 재직기간 동안 ‘文정부 알박기 인사’라는 비판에 시달렸다. 나 사장은 2021년 11월부터 2023년 3월까지 재직했는데, 이 기간 이끄는 코레일은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에서 최하 등급을 받는 등 대내외 악재가 이어졌다.
코레일은 2021년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최하 등급인 E등급을, 2022년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도 최하 등급인 ‘아주 미흡’을 받았다. 무궁화호 궤도이탈 사고에 이어 경부고속선 KTX 궤도이탈 사고, 남부화물기지 오봉역 직원 사망사고, 대전조차장 경부선 대전 SRT차량 궤도이탈 사고 등 철도안전법 위반이 문제가 됐다. 매년 수천억 원대의 영업손실을 보는 등 실적 부진도 경영평가에 악영향을 줬다.
전 정부의 임기 말에 임명된 나희승 사장 재직 기간 사망사고 4건 등 모두 18건의 철도사고가 발생했다. 나 사장은 2023년 3월 기관 운영과 관리 부실 등 사유로 윤석열 정부 들어 첫 해임된 공공기관장이 됐다.
4개월 동안 공석으로 리더십 부재 상황을 맞았던 당시 코레일은 그야말로 자중지란이었다. 14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수내역 에스컬레이터 역주행 사고, 차기 코레일 사장에 지원한 후보자들의 자료가 유출, 철도노조 준법투쟁 등 혼란에 휩싸였다.
전임 사장 공백 ‘꽉 채운’ 한문희, 인사권으로 조직쇄신
한문희 사장은 코레일 리더십 공백 4개월 만인 지난해 7월 사장에 임명됐다. 혼돈의 코레일을 다잡기 위한 한 사장의 첫 행보는 대규모 인사 단행이었다. 취임 이후 한 사장은 대규모 간부급 인사를 내며 조직기강 혁신에 나섰다.
40여 명의 간부급 인사를 단행하며 코레일은 안전 최우선 경영과 경영혁신, 기술개발, 해외사업 등 미래 핵심역량 강화에 나서겠다고 공언했다. 코레일은 “이번 인사는 출신학교 등으로 인한 커넥션을 배제하고 역량과 경력, 조직 기여도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현장관리자를 과감히 발탁했다”고 밝혔다.
학교 등 이른바 ‘스펙’이 아닌 실력과 능력 중심의 이 같은 코레일 인사 기조에는 ‘한문희 사장의 정체성’이 있다. 한 사장은 역무원에서 시작해 코레일 사장에 오른, 철도계의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철도고 출신인 한 사장은 1984년 철도청 9급 역무원과 8급 수송원으로 철도계에 발을 담갔다. 이후 1993년 37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에도 ‘철도맨’으로 남아 2018년 코레일 경영기획본부장을 끝으로 친정 코레일을 떠났다. 이후 사장으로 금의환향한 셈이다.
이날 한 사장은 “국민에게 신뢰받는 철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과감한 경영혁신과 조직문화 쇄신이 시급하다”며 “각 분야에서 경험과 능력이 검증된 전문가들이 이끌어가는 코레일의 변화와 성장을 기대해달라”고 새 리더십의 청사진을 전했다.
한 사장 취임 이후 조직 쇄신을 단행한 지난해 영업손실 3970억 원을 기록하며 손실 폭을 상당 부분 줄였다. 앞서 코레일은 2020년 영업손실 1조 2114억 원, 2021년 8881억 원 등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바 있다.
철도공단에서 매년 1조원 받는 코레일, 철산법 개정안 난제
올해 한문희 사장에게 남은 숙제는 지난해부터 논란이 되는 ‘철산법 개정안’이다. 현행 철도법상 철로 유지보수와 관제는 코레일이, 철로 건설과 개량은 국가철도공단이 맡아 이원화된 상태다. 철산법 개정안은 코레일이 가진 유지보수 독점을 없애는 내용이다.
지난 2022년 12월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철도산업발전기본법 일부 개정안’(철산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철산법 개정안의 내용은 단순하다. 현행 철도산업발전기본법 제38조의 ‘철도시설 유지보수 시행업무는 철도공사에 위탁한다’는 문구를 삭제하는 내용이다.
단순한 법률 개정안이지만 한국 철도계에 던지는 충격은 크다. 해당 내용으로 철산법을 개정하면 코레일뿐만 아니라 국가철도공단 등 타 기관도 철도시설 유지·보수 업무를 담당할 수 있게 된다. 철도공단이 철로의 건설과 개량을 담당하는 만큼, 철도업계는 향후 법률이 개정되면 철로 유지보수에 대한 철도공사의 영향력이 커지는 걸 당연한 수순으로 보고 있다.
최근 이성해 철도공단 이사장도 철산법 개정안이 세계적인 추세라는 입장을 밝혔고, 국토교통부도 일부 철로의 유지보수를 나누는 방향을 국회에 제안하기도 했다. 앞서 국토부가 2022년 말 보스턴컨설팅그룹에 맡긴 타당성 조사 연구용역 결과를 기반으로 낸 절충안인 셈이다.
철산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국가철도공단은 매년 최대 1조 원 규모의 비용을 보전할 수도 있다. 철도공단이 유지보수비 명목으로 코레일에 1조 원에 달하는 비용을 지급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코레일은 매년 1조 원의 수익이 없어진다. 철도공단이 코레일에 지급한 시설유지비용은 2022년 9234억 원, 2021년 8948억 원 등으로 매년 증가 추세다.
철도 전문가들도 철로 유지보수 업무의 독점을 없애야 한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류재영 한양대 교통물류학과 교수는 지난해 5월 이뤄진 뉴스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기본적으로 옳은 방향”이라며 “운영과 유지보수의 주체가 코레일이어야만 한다는 주장은 교통카드를 이용하기 위해서 지하철 1호선부터 9호선, 광역버스, 마을버스 등을 모두 코레일이 운영해야만 한다는 얘기와 같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철산법 개정안과 관련해 한문희 사장은 유지보수 업무와 관련해 코레일이 중심이 돼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국토부 출입기자간단회에서 한 사장은 “철도는 다른 교통 인프라에 비해 밀접도가 높기 때문에 유지보수나 운행이 통합돼 이뤄지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철산법 개정안에 대한 현 상황은 코레일에 유리한 것으로 보인다. 조응천 의원이 대표발의한 철산법 개정안은 지난해 12월 국회 국토위 교통소위에 상정되지 못했다. 사실상 제21대 국회에서는 자동 폐기 수순을 밟게 됐다.
또 오는 5월 출범하는 제22대 국회에서 해당 개정안이 논의될지도 불투명하다. 철산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던 조응천 의원이 제22대 국회에 입성하지 못하면서다. 조 의원은 민주당에서 당적을 옮겨 개혁신당으로 경기 남양주갑에 출마했지만, 민주당 최민희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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