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 메뚜기’ 비판 철도지하화, 리츠·채권·SPC 등 구체적 구상 나왔다
최대 80조원...정부 “시대적 과업” 정부·여야·지자체 이견 없는 강한 의지
이성해 철도공단 이사장 “PM 체계조직개편 제2의 창립” 지하화조직 신설
[뉴스포스트=이상진 기자] 이성해 국가철도공단 이사장이 정부의 철도지하화 정책 완수를 위해 프로젝트 관리 중심의 PM 강화 카드를 꺼내 들었다. 최소 50조 원에서 최대 80조 원에 달하는 철도지하화의 현실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가운데 나온 의미있는 행보라는 해석이다.
사골공약? ‘윤석열표 철도지하화’ 다르다
철도지하화 공약은 선거철 매년 나오는 ‘20년째 사골공약’이란 비아냥을 받아왔다. 철도지하화 사업이 진영을 불문한 현실성이 결여된 ‘퍼주기 공약’의 하나로 지적돼면서 선거철 메뚜기라는 비판을 받는 것이다. 그 배경엔 코앞으로 다가온 선거 막판 표심이 있었다. 실제 선거가 막을 내리면 철도지하화 공약도 슬그머니 무대 뒤편으로 사라지길 반복했다.
그간 철도지하화 사업은 정치적 반목과 부처간 이견으로 무산돼 수십 년째 제자리에 머물러있었다. 윤석열 정부의 철도지하화 사업 추진이 그 전 사례들과 다른 점은 윤 대통령이 사업구상을 밝힌 시기와 여야의 정치적 합의, 그리고 정부 부처와 지자체의 의지다.
윤 대통령은 선거가 끝난 당선인 시절부터 철도지하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 1월에는 6차 민생토론회에서 수십조 원의 예산이 필요한 철도지하화 사업 추진 의지를 다시 한 번 밝히기도 했다. 정치적 여건도 무르익었다. 여야가 이번 철도지하화 사업에 있어서는 한목소리를 내는 까닭이다. 지난해 12월 ‘철도지하화 및 철도부지 통합개발에 관련 특별법’ 정부 제정안이 여야 합의로 국회를 통과했다. 여야 모두 철도지하화 사업을 4·10 총선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다.
통합계획권과 예산권을 쥔 정부와 사업의 주요 수혜자인 지자체 모두 철도지하화 사업 의지가 강하다는 점도 이전과 다르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4일 서울 용산구 드래곤시티에서 ‘철도지하화 통합개발 추진 협의체’ 출범식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박상우 국토부 장관은 “철도지하화는 정치적 리스크가 거의 없다”며 “시대적 과업을 성공적으로 이끌겠다고”고 밝혔다. 현재 정부는 철도지하화 통합개발 종합계획 수립에 착수한 상황이다.
이날 출범식에는 서울과 부산, 인천, 세종 등 전국 16개 시·도지사들과 공공·연구기관, 철도기술·금융 등 다양한 분야별 전문가들이 참석해 철도지하화 사업에 대한 의지와 구상을 밝히기도 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철길 인근 거주 주민들이 소음과 분진 때문에 많은 불편을 겪고 지역 간 소통이 단절되는 문제도 있었다”며 “서울시는 철도 지하화에 대한 욕구가 크고 지하화 도시변화가 가장 크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해 기대감을 드러냈다.
서울에는 경의선과 경춘선, 중앙선을 포함해 경부선, 경인선 등 70킬로미터를 넘는 국가철도 6개 노선이 지상으로 지나간다. 또 30킬로미터에 달하는 지상 도시철도 구간도 도시를 단절하고 있다.
국가철도공단, ‘PM 강화’로 정부 철도지하화 사업구상 받는다
정부와 연구기관, 철도업계 등 여러 기관의 분석을 종합하면, 국가 단위 철도지하화 전체 예산은 최소 50조 원에서 최대 80조 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예산 마련을 위해 채권 발행과 리츠, SPC 등을 고려하고 있다. LH 등 공공기관의 채권 발행과 민간투자인 리츠를 활용해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구상이다. 특수목적법인(SPC)을 활용한 전통적인 재원 마련 방안에서 탈피한 행보다.
지난 5일 국토부가 개최한 ‘국토교통 산업계 릴레이 간담회’에서 윤진환 국토부 철도국장은 “리츠 자본도 철도 역사를 활용한 사업을 하고 싶어 하지만 역이 매입 없이 점용허가를 받는 방식”이라며 “매각할 수 있는 역사에 대한 매각 건의가 있었고 가능하면 매각하려고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국가철도공단과 코레일, 철도협회 등 관계 기관과 건설·설계사, 차량·시스템·부품제작사 등 민간업계가 모여 리츠를 통한 철도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또 국내·해외 철도사업에 참여하는 중소·중견기업의 지원방안 등도 논의됐다. 이와 함께 여행사와 영화사를 대상으로 역사, 열차 등을 이용한 관광 콘텐츠 발굴, 금융사와 민자운영사를 대상으로 수익률 제고 방안에 대한 논의도 이뤄졌다. 철도지하화 이후 비어있는 지상부지를 활용하는 민간투자 리츠에 방점이 찍힌 것으로 해석된다.
올해 2월 취임해 취임 두 달차를 맞은 이성해 국가철도공단 이사장은 정부와 지자체의 통합계획과 재원 마련 구상을 ‘PM 강화’로 받았다. 사업 전 주기에 걸친 강력한 관리로 공기를 준수해 철도지하화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다. 그간 철도공단은 철도사업의 다양한 단계와 공사 종류에 따라 주관부서가 분산돼 업무가 지연되는 등 적기 공정 준수를 저해하는 요인이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철도공단은 23일 철도공단 대전 본사에서 이성해 이사장을 비롯한 전 임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현장중심 책임경영 선포식을 개최했다. 앞서 철도공단은 지난 16일 철도지하화 국정과제의 성공적 이행을 위한 현장중심의 조직개편을 단행한 바 있다.
당시 철도공단은 철도지하화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전담조직을 신설하고 민간투자사업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신설된 사업관리 조직은 사업의 규모 및 단계에 따라 사업단장을 처장·부장·차장급으로 분류하고 사업관리 역량을 갖춘 융합형 인재들로 채웠다.
이날 책임경영 선포식에서 철도공단은 △현장중심의 사업관리(PM) 체계 조직 전환 △신설된 철도지하화 국정과제 전담 조직 강화 △현장 지원을 위한 부서 신설과 효율화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성해 이사장은 사업관리 전문가를 ‘Strong PM’이라고 칭하며 “열차가 멈추지 않으려면 철도를 구성하는 모든 분야의 엔지니어가 강력한 사업관리(PM)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번 현장중심 PM 체계의 조직개편 및 인사발령은 제2의 창립에 견줄 만큼 공단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전환점 될 것”이라며 “국민이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는 철도건설을 위해 새로운 조직체계에서 직원 모두가 역량을 결집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