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진보계의 대부 정계은퇴… “시민운동에만 종사할 것”
위기 자초한 진보, “썩은 줄 버리고 새 줄 만들어 잡아야”

[뉴스포스트=허주렬 기자]권영길(71) 전 민주노동당 대표가 지난 10일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초대 위원장, 민주노동당 초대 당대표 등을 지낸 노동운동 및 진보정치의 거목이 최대 위기에 직면한 진보정치를 뒤로하고 정치권을 떠난 것이다. 특히 권 전 대표는 은퇴 선언에서 “지금의 진보 정당은 사실상의 사망 선고를 받은 것과 다름없다”고 쓴소리를 해 눈길을 끌었다. 이제는 ‘권영길과 나아지는 살림살이’ 이사장으로 시민운동에만 종사할 것이라 고 밝힌 권 이사장의 지난 삶을 <뉴스포스트>에서 재조명했다.

▲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

▶유년시절부터 꿈꾼 노동·진보적 삶

권영길 전 대표는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의 삶을 관통하는 노동·진보적 활동과 관련해 “남몰래 가슴에 새긴 아버지와의 약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즉, 권 전 대표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아버지 권우현 씨부터 알아야 한다.

권우현 씨는 1936년 일본으로 이주, 도쿄에서 막노동 등을 하며 살다가 1945년 광복 후 귀국했다. 경남 산청군에 정착해 초등학교를 세우고 야학을 여는 등의 활동을 펼쳤던 그는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빨치산 활동을 위해 지리산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그리고 1953년 정전협정이 체결되고, 한국군의 대대적 토벌 작전 과정에서 사살됐다.

권 전 대표는 부모님이 일본에 머물던 1941년 도쿄 야마구치 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귀국 때 함께 들어온 그는 유년 시절 아버지의 야학 활동과 빨치산 활동을 지켜보며 자랐다.

사회 운동에 일찍 눈을 뜬 그는 부산 남부민초등학교, 경남중·고교를 거쳐 서울대 농대에 입학했지만 1967년 학교를 휴학하고 대한일보 기자로 잠시 활동한다.

이후 다시 학교로 돌아가 1969년 대학을 졸업한 뒤 1971년 서울신문으로 옮겨 본격적으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권 전 대표는 기자생활을 하면서도 반유신 민주화에 뜻을 가진 동지들을 모아 비밀결사조직을 꾸렸고, 이 조직은 당시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려는 목표도 세웠다고 한다.

그러나 1974년까지 활동한 이 조직은 이후 내부적으로 “또 하나의 쿠데타 세력이 되는 것 아니냐” “과연 근본적 사회변화를 이뤄낼 수 있을까” 등의 고민을 놓고 갈등을 겪은 끝에 자진해산했다.

1980~1987년 서울신문 파리특파원으로 근무했던 그는 1987년 6월 항쟁 소식을 듣고 귀국해 곧바로 노동조합에 참여했다. 언론노동조합연맹(언론노련) 창립의 주역이자 1~3대 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또, 1995년에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을 창립해 초대위원장이 됐다. 기자로 재직하면서도 민주화 운동과 노동 운동에 상당한 관심을 가졌고, 나름의 성과도 거둔 셈이다.

▶진보정치인으로 변신

민주화 운동과 노동 운동을 거쳐 진보정치인으로 변신한 권 전 대표는 1997년 9월 ‘국민승리21(민주노동당 전신)’ 대통령선거 후보로 15대 대선에 나섰지만 전체 유효 투표의 1.2%인 30만5,974표를 얻는 데 그쳐 4위로 낙선했다.

이후 진보정치 활동을 이어가던 그는 1999년 민주노동당 창당준비위원회 상임대표를 맡아 민노당 창당을 주도, 이듬해 민노당 초대 당대표가 됐다. 그러나 같은 해 출마한 16대 총선에서는 경남 창원을에 출마해 낙선했고, 민노당도 원내 진출에 실패했다. 

2002년에는 민노당 후보로 2번째로 대선에 도전했지만 95만7,148표(3.89%)를 득표, 3위에 그쳐 낙선했다.

열악한 진보 정치의 한계를 절박하며 실패를 거듭했지만 2번째 대선 도전은 나름의 성과를 남겼다. 당시 선거에서 그는 “국민 여러분 살림살이 많이 나아지셨습니까?”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내기도 했으며, 대선 과정에서 TV토론 등을 통해 전국적 인지도를 높일 수 있었다. 이때 쌓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2004년 17대 총선에서는 창원을 지역구에 재도전해 결국 당선됐다. 그의 당선과 더불어 민노당도 10석의 의석을 얻어 원내진출에 성공했다.

17대 국회의원 임기 동안에는 국회 남북관계발전특별위원, 통일외교통상위원, 한중 의원 친선협회 부회장, 민노당 의원단 대표, 한미FTA비상시국회의 공동대표 등을 지냈다.

2007년 당내 경선에서 심상정 후보를 제치고 17대 대선에 나설 당 후보로 선출된 그는 3번째 대선 도전에서는 71만2,121표(3.01%)로 5위에 그쳤다.

하지만 이듬해 18대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해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 국회 호민관클럽 공동대표 등으로 활동했다. 2010년에는 민노당 원내대표로 선출됐고, 국회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진보정당 국회의원이 지역구 재선의원으로 당선된 것은 이때까지 권 전 대표가 처음이었다.

이때까지 민노당을 사실상 이끈 권 전 대표는 2011년 민노당과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간 통합과정에서 반대 입장을 표명하며 동참하지 않았다.

이후 자신의 마지막 선거였던 지난해 12월 경남도지사 보궐선거에 무소속 후보로 출마했지만 70만2,689표(37.08%)에 그쳐 119만1,904표(62.91%)를 얻은 새누리당 홍준표 현 지사에게 패했다.

한국의 진보정치인이라는 고난의 길을 택하며 무수한 실패를 경험했지만 권 전 대표로 인해 척박한 진보정치계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 권영길 전 민노당 대표(현 나살림 이사장)가 지난 10일 오후 서울 효창공원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사단법인 권영길과 나아지는 살림살이 출범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다시 초심으로

진보정치인 권 전 대표의 삶은 여기까지다. 그는 지난 10일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권영길과 나아지는 살림살이(이하 나살림)’ 출범식을 열고 “이 운동은 정당의 틀에서 움직여지는 것이 아니다”라며 “정당 정치 활동으로 보지 말아 달라. 이제는 그 길에 들어서지 않겠다”고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다사다난했던 진보정치인의 삶을 정리하고 시민운동이라는 초심으로 돌아간 것이다.

이어 그는 “민노당은 한때 20%가 넘는 지지를 받았지만 다시 내려앉았다. 그리고 분당됐다”며 “지금 진보정당은 사실상의 사망선고를 받은 것과 다름없다”고 진보진영을 향해 쓴소리를 가했다.

그러면서도 권 전 대표는 “노동중심의 새로운 진보정당을 갈망한다”며 “정당정치의 틀 안에서 직책을 맡지는 않겠지만, 새 진보정당 창당에는 노력하겠다”고 진보정치를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지난 12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서도 그는 “이미 진보정당은 1, 2년 전부터 국민들의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실제적으로 분열과 분당으로 인해서 진보정당 스스로 자초한 것”이라며 “현재의 썩어가는 줄은 놓아버리고 새로운 줄을 만들어서 잡아야 된다”고 조언했다.

시민운동가로 돌아간 것과 관련해서는 “8년간 국회의원을 하면서 내가 서야할 곳은 허허벌판이라 생각했다. 고난의 길이지만 그 길이 고향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며 “역사를 만드는데 기여할까한다. 저는 이제 광야로 돌아가겠다. 광야로 돌아가 열심히 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이에 대해 민주당 문재인 의원은 “권 전 대표가 다시 시민운동가로 돌아왔다. 정치는 후배들에게 맡기고 다시 시민운동 영역으로 돌아와 젊은 시절의 마음을 갖겠다는 열정에 존경을 표한다”며 “비록 정치무대는 떠나지만 복지국가와 평화통일을 위한 시민운동은 고맙고, 소중하고 의미 있다”고 말했다.

정의당 천호선 대표는 “권 전 대표의 말에는 여러 의미가 있다. 저는 그 속에서 지금의 진보정치에 대한 준엄한 경고가 담긴 명령이 있다 생각한다”며 “지금 진보정치는 사상초유의 위기고 권 전 대표의 ‘사망에 이르렀다’는 지적을 깊게 받아들인다. 서있는 자리에서 새로워지다 보면 (진보가) 하나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지난해와 올해 여러 사건이 특정그룹이 아닌 모두의 잘못이라 자성하면 새로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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