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강남불패’ 신화 무너지나

강남의 큰손들이 움직이고 있다. 특히 재산 목록 1위로 꼽았던 부동산을 처분하고 있다는 소식이 심심찮게 들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부동산 강남 불패’ 신화가 드디어 막을 내리는 신호로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부동산 지각변동이 과연 일어나는 것일까. 최근 부동산 시장에 대한 흐름을 <뉴스포스트>가 살펴봤다.

“강남 부동산시장 예전 같지 않아…” 50억짜리 상가 내놓기도
급매로 7억 물건 내놔도 1년째 안팔려…대형 평수가 중형보다 싸

다국적 부동산기업 ERA코리아 장진택 이사는 “부동산 경기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이 이어지면서 강북 도심보다 경기 흐름에 민감한 강남의 경우 눈치 빠른 자산가들은 이미 부동산에서 손을 뗐거나 처분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현재로서는 매수자 우위 시장이 형성된 시점이어서 매도·매수 호가 차이로 거래가 뜸한 편”이라고 말했다.

강남 테헤란로에 입점한 증권사 및 시중은행 프라이빗뱅킹(PB) 상담사들은 강남 부동산시장의 현주소를 가장 잘 체감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신한금융투자 명품PB센터 강남지점의 안범찬 차장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강남 자산가들이 재건축 아파트 투자에 매달렸다면 요즘은 기존 부동산 중에서 아파트부터 매각하려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삼성증권 테헤란지점 류남현 부장도 “상담자 대부분이 부동산을 통한 재테크가 쉽지 않다는데 동의하는 분위기”라며 “노른자위급 부동산을 빼고는 보유하거나 투자하려는 욕구가 많이 떨어진 것 같다”고 분석했다.

강남의 중대형 주택 및 경매시장은 이 같은 분위기를 잘 말해준다.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도곡동 타워팰리스와 대치동 동부센트레빌 역삼동 아이파크 등 강남의 랜드마크격인 고급 아파트들은 고점 대비 최대 5억원까지 떨어졌다. 또 잠실 롯데캐슬골드 등 경매시장에 나온 주상복합아파트도 사려는 사람이 없어 2∼3차례씩 유찰되면서 시세의 51∼64%까지 떨어진 상황이다.

이 같은 사태를 반영하듯 유명 보험사 임원인 50대 초반의 강모씨는 서울 역삼동 강남역 인근의 S주상복합 아파트(142㎡)를 7억5000만원에 급매로 내놨지만 1년째 팔지 못했다. 은행에서 2억7000만원을 융자한 터라 매달 이자만 100만원이 넘는 ‘생돈’이 빠져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 역삼동에 시가 15억원짜리 재건축 아파트(전용면적 171㎡)를 보유한 한모(72)씨는 요즘 추가부담금 7억원을 더 들여 조합원 아파트를 분양받을지 아니면 15억원을 보상받고 이사를 갈지 고민 중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입주가 시작되는 3년 뒤쯤 아파트값이 22억원(15억원+7억원) 이상 유지되기는 어려울 것 같기 때문이다.

서울 논현동에 사는 개인사업가 성모(57)씨는 지난달 말 A은행 투자상담센터를 찾았다. 논현동과 청담동에 각각 시가 50억원이 넘는 상가 건물을 갖고 있는데 이 중 하나를 팔기 위해서다. 성씨는 “강남 부동산 시장이 예전 같지 않은 것 같아서 고심끝에 내린 결정”이라며 “건물을 팔고 난 뒤 자금을 어떻게 굴려야 할지 아직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은평뉴타운, 중형 아파트 값이 대형보다 비싸

부동산뱅크에 따르면 4월 셋째 주 전국 아파트값은 -0.04%의 변동률을 기록했다. 서울이 -0.11%로 전주와 비슷한 양상을 띠었고 신도시를 비롯한 경기 지역은 각각 0.11%, 0.09%씩 하락했다. 버블세븐지역(-0.12%)은 전주보다 0.13%, 인천은 0.02% 소폭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서울 권역별로는 강남권이 -0.13%, 비강남권이 -0.10%씩 약세를 보였다.

특히 서울 재건축 아파트값이 강남4구 일대 재건축 단지 매매가를 끌어내리는 현상도 나타났다. 강남, 서초, 송파 등 강남 3구의 경우 지난 2월부터 줄 곳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이번주 3.3㎡당 3999만원을 기록, 17주 만에 4000만원 밑으로 떨어졌다. 일대 투자자들이 일제히 사라지면서 거래소강상태가 몇 달째 지속된 탓이다. 송파구에서는 잠실동 주공5단지 118㎡가 6500만원 떨어진 13억2500만원에, 신천동 장미 151㎡가 2000만원이 하락한 12억3000만원에 매매가를 형성했다. 잠실동 J공인 대표는 “찾아오는 사람은 물론, 문의전화조차 없다”며 “집을 팔아야 하는 사람들은 앞서 거래된 가격보다 3000만~4000만원씩 더 낮게 매물을 내놓으면서까지 매도하려 하지만 이마저도 사겠다는 사람은 없는 상황”이라고 시장 분위기를 전했다.

지난해 지하철 9호선 개통 호재로 상승장을 이었던 강서구는 지난 2월부터 거래가 일제히 끊긴 상황이다. 간혹 급매를 찾는 매수자가 찾아오더라도 급매로 나온 가격보다도 낮은 가격에 집을 매입하겠다고 나서 거래성사가 불가능하다고 일대 중개업자는 언급했다.

신도시는 중대형의 약세가 두드러졌다. 99㎡대 미만 중소형의 경우 급매물이 간간이 거래되면서 쌓여있던 매물이 소화되는 모습이지만 중대형의 경우 올초 나왔던 매물이 아직까지 소화되지 않는 등 매물 적체현상이 심화되는 양상이다. 평촌이 -0.29%가 빠졌고 일산(-0.12%), 분당(-0.08%), 산본(-0.06%) 등의 순으로 약세장이 이어졌다. 평촌은 132㎡대 이상 아파트값이 2000만원 이상씩 내렸다. 샘대우 165㎡가 7억1000만원에서 6억5500만원으로, 샘쌍용 158㎡가 6억7000만원에서 6억4000만원으로 매매가가 조정됐다.
일산에서는 주엽동 문촌신안 125㎡(5억8000만→5억4000만원), 마두동 백마금호 102㎡(4억1000만→3억9000만원) 등이 집값 하락세에 동참했다. 분당에서는 이매동 이매삼환 141㎡(7억6000만→7억2500만 원) 등이 약세장을 이끌었다.

서울 은평뉴타운에서는 중형 아파트 값이 대형보다 비싼 단지까지 나오며 대형의 인기추락을 실감케 했다. 10일 부동산114에 따르면 같은 단지 안에서 규모가 작은 아파트가 큰 아파트 값을 추월하는 가격역전 현상이 처음 등장했다. 주인공은 은평뉴타운 2지구. 지난해말 입주가 시작된 이 단지의 101㎡(41평형) 매매시세는 분양가에 1억5000만~2억원 정도의 프리미엄이 붙은 6억3000만~7억원선이다. 이에비해 134㎡(53평형)는 오히려 분양가보다 시세가 떨어져 있다. 매매시세는 6억5000만~7억8000만원대를 형성하고 있다.

인근 중개업소에서는 53평형이 한때 2억원까지 프리미엄이 붙을 정도였지만 대형 주택에 대한 선호도가 낮아지기 시작한 이후 이제는 마이너스 프리미엄이 5000만원까지 붙어있다고 전했다. 이에따라 41평형보다 낮은 가격으로 거래되는 53평형이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매물 중 같은 블록의 41평과 53평의 호가가 6억5000만원으로 같지만 대형 주택인 경우가 급매물이 많아 더 싸게 거래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중형주택의 가격역전 현상은 워낙 거래가 되지 않다보니 발생하는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또다른 중개업소 관계자는 “전세만 거래될 뿐 매매는 거래 자체가 거의 되지 않고 있다”면서 “53평짜리 호가가 2억원 이상 차이나는 경우가 많아 어느 선이 시세인지조차 모를 정도여서 중형보다 더 낮게 거래되는 대형 매물이 나오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이러다보니 급매물을 처분해야 하는 경우 집주인들이 터무니없는 가격에도 매도하고 나갈 정도가 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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