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세 아버지는 75세 아들의 소주잔을 말없이 채웠다

[뉴스포스트=김혜선 기자] 65년 만에 가족을 만난 남북 이산가족들이 2박3일이라는 찰나의 시간이 지나고 또다시 헤어지게 됐다. 양측 이산가족들은 서로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하염없는 눈물을 닦아냈다.

둘째날인 21일 북한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단체상봉에서 남측 백민준(93) 할아버지의 북측 가족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둘째날인 21일 북한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단체상봉에서 남측 백민준(93) 할아버지의 북측 가족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22일 남북 이산가족들은 오전 10시부터 3시간동안 작별상봉에서 마지막 점심식사를 함께 했다. 남측 이산가족들은 이날 오후 1시30분 경 북측 가족들을 뒤로한 채 남측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올라섰다.

앞서 상봉에서 양측 가족들은 서로의 주소와 전화번호, 가족 사항 등을 주고받거나 ‘다시 만나자’고 기약 없는 약속을 하며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모습을 눈에 담았다.

남측 김병오씨(88)는 북측 여동생 김순옥(81)씨를 차마 바라보지 못하고 소리 없는 눈물을 흘렸다. 오빠의 눈물에 순옥씨는 “오빠, 울지마. 울면 안 돼”라며 병오씨의 손을 맞잡았지만 이내 함께 눈시울을 붉히며 입술을 떨었다.

남측 이기순(91)씨는 두 살 때 헤어진 아들 리강선(75)씨의 소주잔을 말없이 채웠다. 이씨는 상봉 전 취재진과의 대화에서 “(아들과)두살 때 헤어졌어. 두 살 때…”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아버지는 아들 앞으로 사과를 밀어놓았다.

20일 오후 북한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이산가족상봉 북측 주최 환영만찬에서 남측 이기순(91) 할아버지가 북측 아들 리강선 씨와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있다. (사진=뉴시스)
20일 오후 북한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이산가족상봉 북측 주최 환영만찬에서 남측 이기순(91) 할아버지가 북측 아들 리강선 씨와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있다. (사진=뉴시스)

배순희(82)씨는 북측 언니와 여동생에게 “지금은 100세 시대니까 오래 살고, 서로 다시 만나자”고 말했다. 북측 여동생 두명을 만난 김춘식(80)씨도 눈물을 글썽이며 “오래 살아야 다시 만날 수 있어”라고 말했다.

지나간 세월에 서로의 건강을 단단히 당부하기도 했다. 한신자(99)씨는 이제는 할머니가 된 북측 두 딸에게 “찹쌀 같은 것이 영양이 좋으니까 잘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함성찬(93)씨도 북측 동생 함동찬(79)씨에 “건강이 최고다”라고 당부했다.

신재천(92)씨는 여동생에게 “서로 왕래하고 그러면 우리집에 데려가서 먹이고 살도 찌우고 하고 싶은데…죽기 전에 우리 집에 와서 밥도 먹고 그래”라고 말했다. 여동생 신금순(70)씨는 “개성에서 금포 금방이잖아. 빨리 통일이 돼야 해”라고 답했다. 그러자 신씨는 “내가 차 갖고 가면 40분이면 간다. 아, 왕래가 되면 배불리고 가는데…”라며 아쉬워했다.

한편, 이번 1차 상봉에서 남북 이산가족들은 2박3일간 총 12시간가량 함께 시간을 보냈다. 상봉 첫날인 20일에는 단체상봉 2시간, 같은 날 저녁 환영만찬 2시간을 만났고 다음날인 21일에는 개별상봉과 객실오찬으로 3시간을 보냈다. 이후 오후 시간에는 2시간의 단체상봉을 했고 저녁은 따로 먹었다.

북측 이산가족 83명이 남측 가족을 만나는 2차 상봉행사는 금강산 관광지구 내에서 24~26일 열린다. 2차 상봉행사에 참여하는 남측 상봉단은 오는 23일 속초에 집결해 이산가족 상봉 접수와 방북교육, 건강검진 등을 받고 24일 방북길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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