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 채무 최대 90% 탕감, 하위 20% 청년 채무 조정
청년층 ‘빚투’ 책임 감면...반대 여론 거세

[뉴스포스트=이해리 기자] “열심히 일해서 성실히 채무를 갚아왔는데, 한 방을 노린 사람들의 이자는 깎아준다고 들으니 바보가 된 것 같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본관에서 금융부문 민생안정 과제 추진현황 및 계획을 브리핑하고 있다. (사진=금융위원회)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본관에서 금융부문 민생안정 과제 추진현황 및 계획을 브리핑하고 있다. (사진=금융위원회)

정부가 최근 폐업 등으로 빚을 갚기 힘든 자영업자의 채무를 최대 90% 탕감해주고, 빚투(빚내서 투자)한 청년은 이자를 깎아주기로 하면서 형평성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세금으로 빚을 줄여주는 것은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를 양산하고, 성실히 채무를 갚아온 차주들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금융위는 취약차주에 대한 금리 부담을 완화하고 청년층에 대한 채무지원을 강화하는 내용의 ‘금융부문 민생안정 대책’을 발표했다. 금리 상승에 따른 소상공인·가계·청년·서민 등 취약 부문의 부담 경감을 대환과 채무조정, 신규자금지원 등을 추진하는 게 주요 골자다.

우선 올해 9월 말 종료될 예정이었던 소상공인 대출 만기 연장·상환 유예 조치를 재연장한다. 지난 1월 말 기준 만기 연장(상환 유예 포함) 조치를 받고 있는 대출 잔액은 133조 원가량이다. 만기 연장·상환 유예 조치 중인 소상공인 차주가 신청할 경우 90~95%가량을 은행권 자율로 만기를 다시 연장하도록 하겠다는 것이 금융위 구상이다. 

은행권 지원을 받지 못하는 나머지 5~10% 차주에 대해 ‘배드뱅크’ 성격의 ‘새출발기금’을 만들어 30조 원을 지원한다. 원금을 최대 90%까지 감면하고, 금리도 인하하는 등 부실을 직접 책임지겠다고 했다.  

금융위는 또 청년층이 투자 실패가 장기간 사회적 낙인이 되지 않도록 하겠다며 청년 특례 채무조정 제도를 신설했다.

금융위는 “많은 청년들이 저축 대신 돈을 빌려 주식‧가상자산 등 위험자산에 투자했는데, 상당수가 투자실패 등으로 경제적·심리적 어려움에 직면했다”며 “저(低)신용자의 금융 접근성이 악화될 경우 생계 곤란 및 불법사금융 노출 등 사회문제화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신용평점이 하위 20%인 만 34세 이하 청년을 대상으로 1년간 한시적으로 채무조정 특례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소득·재산 대비 채무 정도에 따라 이자는 30~50% 낮추고, 상환유예기간 (최대 3년) 중 이자율은 3.25%로 고정한다는 내용이다. 

은행권 신용대출 평균 금리가 연 5.78%(5월 기준)인 점을 고려하면 이자 절감 효과가 크다. 금융위는 최대 4만 8000명이 1인당 연간 141만~263만 원의 이자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사진=금융위원회)
(사진=금융위원회)

투자에 실패한 청년까지도 지원해준다는 정부 계획이 발표되자 ‘빚투’에 대한 책임을 감면해줘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거세다. 

직장인 김진영(28) 씨는 “자영업자 지원은 경제를 살리는 일이니 도와줘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지만, 빚내서 투자한 사람들은 알아서 회생하는 게 맞다”며 “특히 다른 세대보다 청년층은 일을 해 갚아 나갈 능력이 되는데, 한탕주의를 노린 손해를 왜 책임져야 하는지 모르겟다”고 비난했다. 

직장인 유다혜(31) 씨는 “대출을 받아 투자한 건 개인의 선택이니 손실에 대한 책임도 당연히 본인이 져야 한다”며 “가상화폐는 수익에 대한 세금도 내지 않는데, 왜 우리가 성실히 납부한 세금으로 구제해줘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직장인 이현지(30) 씨는 “입을 거 먹을 거 참아가며 꼬박꼬박 이자와 원금을 갚아나가던 국민들은 바보가 된 것 같다”며 “분명한 역차별이며, 벌써 주변에서도 ‘연체 안 하고 갚은 사람은 바보, 이자 안 내고 버티면 나라가 갚아주겠지’라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논란에 금융위는 18일 해명 자료를 통해 청년 특례 채무조정 제도는 카드 발급과 신규대출 등 금융거래에 상당한 제약이 있는 청년층만 지원 대상이라고 밝혔다.

김주현 금융위원장도 이날 예정에 없던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번 대책은 부채 상환이 정상적으로 어려운 분들을 위해서 한 조치다”며 “코로나19로 영세 소상공인을 위한 지원 조치를 할 때도 모럴 해저드 문제가 있었지만 정부가 적극적으로 취약계층을 위해 지원을 했기 때문에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진화에 적극 나섰지만 수그러들지 않자 대통령실도 나섰다. 대통령실은 19일 공식 페이스북을 통해 “최근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청년층 신속채무조정은 대출 만기를 연장하고, 금리를 일부 낮춰 채권의 일체가 부실화하는 것을 막는 제도다”며 “원금 탕감 조치는 어떠한 경우에도 지원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한편, 21일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5대 금융지주 회장들과 첫 상견례 자리를 갖고 취약차주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을 요청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 배부열 NH금융지주 부사장이 참석했다. 

김 위원장은 “최근 물가 급등과 금리 상승 상황에서 대응 여력이 미약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취약계층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며 “최근 정부가 발표한 ‘금융 부문 민생안정 과제’ 이행에 대해 금융권의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이에 금융지주 회장들은 오는 9월 말 소상공인 만기 연장 및 이자 상환 유예 조치가 종료되더라도 고금리 개인 사업자에 대해서는 금리를 깎아 주는 등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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