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은 뒤숭숭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미국 발 경제위기가 깊어지면서 서민들의 삶은 점점 더 팍팍해지고 있었다. 월급만 빼고 물가를 비롯해 모든 공공요금까지 계속 오르고 있었다.

이런 경제위기가 북한에게는 기회였다. 김정일은 남한 경제를 노조의 손아귀에 의해 좌우되도록 만들어 무너뜨리기로 했다. 그렇게 되면 남쪽의 경제는 곧 파멸하게 될 것처럼 보았다. 그는 남한에 종북정권이 계속 이어져야만 적화통일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좌파 대통령의 임기가 반환점을 지나자 남한 보수세력들은 좌파정권을 밀어내려고 필사적으로 결집하고 있었다.

김정일은 남한의 대통령에게 충고가 담긴 비밀편지를 보냈다.

“동지, 보수반동 언론들과 각을 너무 날카롭게 세우지 마시오!”

원래 남의 말을 듣기보다는 자기 말을 많이 하는 편인 좌파 대통령은 김정일의 훈수를 시큰둥하게 받아들였다. 그 말은 마이동풍(馬耳東風)이었다.

“동지, 이렇게까지 걱정해줘서 고맙소. 그자들은 원래 그렇게 하는 맛으로 살고 있다는 것을 참고하십시오.”

김정일은 종이신문보다는 방송매체가 대남 적화통일에 훨씬 더 유용하다고 믿고 있었다. 조국일보, 동서신문 등은 원래 골수 보수려니 하고 무시해 왔지만, 방송은 그렇지 않았다. 방송매체는 김정일이 교시하는 것보다 훨씬 앞서 나가면서 기대 이상의 효과를 주고 있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멈출 김정일이 아니었다.

최근 들어 다른 방송매체인 NBS와 BCS는 점점 더 보수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이들은 이미 보수로 돌아섰다는 분위기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었다. 하지만 언터처블(untouchable)이라고 알려질 대로 알려진 KMG는 철옹성 같은 노동조합이 버티고 있어서 좌파들의 최후 보루가 되어 가고 있었다. 이럴 때 주시만 하고 있을 김정일이 아니었다. 역시 싸움에는 실탄이 풍족해야 이기는 법이다. 그는 이것을 아버지 김일성한테서 귀가 아프게 들어서 잘 알고 있었다.

평양직할시 중구역 남산동의 김정일 집무실.

그는 대남공작 총책을 맡고 있는 김규헌을 자기 집무실로 급히 들어오라고 지시했다. 여간해서 자기 집무실로 아랫것들을 부르는 일이 없었지만 이번만은 사정이 달랐다. 경제가 엉망이 되어 ‘남한 인민’들의 불평이 하늘을 찌를 때가 남한을 흔들어 손아귀에 넣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위원장 동지, 무슨 일로 부르셨습네까?”

김규헌은 턱까지 차오르는 숨을 헐떡거리면서 질문을 던졌다.

김정일이 그가 헐떡거리는 모습을 보고 위로를 한답시고 한 마디 내뱉는 것이었다.

“야, 너 숨 좀 고르고 천천히 말하라우!”

“네, 이런 일이 난생 처음이라서 어지러웠습네다.”

“자네 남조선 KMG 잘 알고 있지?”

“네, 그걸 말씀이라고 하십네까?…”

“남한에는 방송이 네 개 있는데 둘은 반동이고 그나마 KMG는 노동조합이 짱짱해서 우리 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제는 그것도 맘 놓을 수가 없게 됐다구야!”

김규헌은 위원장의 말을 듣고 보니 미처 자기가 선제적으로 보고를 올리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려 찝찝해졌다. 그렇다고 전혀 생각을 못했던 것으로 보였다가는 강제노역소로 끌려갈지도 몰라 맞장구를 치기로 했다.

“맞습네다. 남조선 언론인이라는 애들이 다 무너지고 이제는 KMG만 남았습네다. 위원장 동지께서 교시하신 대로 끝까지 맞장 떠주는 노동조합이 받쳐주고 있어서 다행입니다만…….”

김정일은 KMG 사장에 좌파성향이 강한 인물을 보내서 영구히 자기 손아귀에 넣고 싶은 욕망으로 밤잠을 설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이, 그러면 KMG 사장으로 누구를 시키면 좋겠나?”

이것은 김규헌으로서는 감히 꿈에서조차 생각할 수 없는 엄청난 공작이었다.

그가 바로 대답을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사이 김정일이 100점 맞은 아이처럼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면서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혀진 누런 종이쪼가리를 꺼내들었다.

“이것 보라우야! 남한 KMG에서 가장 전투적이고 몸을 안 사리는 인물로 김한철이란 자가 있는데, 이 자를 사장으로 올려 보라우야!”

이 말을 듣자 그의 콧등에는 땀방울이 송송 맺히고 있었다. 이 자리가 감히 어디라고, 위원장의 면전(面前)에서 감히 ‘아니다’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네, 잘 알겠습니다. 위원장 동무의 결심이라면 즉각 결행하겠습니다.”

“그러면 김한철이 사장이 될 수 있도록 지령을 내리고 공작금도 두둑하게 보내주라우야! 그래야 우리 선대의 과업을 완수하여 굶주리면서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신음하고 있는 남한 인민들을 구해낼 수 있을 거 아니겠는가?”

“네, 그렇습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는 김정일의 말이라면 무작정 맞장구를 치는 버릇이 있었다. 김정일은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는지 빨리 가보라고 눈짓을 보냈다.

“그래, 과업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제때에 보고하라우.”

그가 문 쪽으로 돌아서자 위원장이 다시 그를 불러 세웠다.

“귀를 어서 내 입에다 대라우야.”

그는 왼쪽 귀를 위원장 입에다가 대주었다.

그러자 위원장이 소곤소곤 말하는 것이었다.

“내레 반도체가 있어야 핵무기를 쏠 수가 있다는 것을 잊지말라우. 김한철을 사장으로 올려주고 반도체를 받아오라우야. 알간?”

“네, 알갔습니다.”

“천기를 누설하면 그걸로 끝이라는 것을 알라우.”

미국은 북한의 핵실험을 저지하려고 북한으로 들어가는 전자제품의 반도체를 이 잡듯이 뒤져서 색출해내고 있었다.

그는 바로 행동으로 옮겨 김한철의 동향을 면밀하게 파악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위원장이 지령을 직접 내린 지 27분 만에 제1신이 올라왔다.

김한철이 가진 거라고는 서울 변두리에 있는 30평형 아파트 한 채가 전부였다. 그것도 부자들 동네인 강남이 아니어서 그걸 팔아봤자 강남 아파트 전세금도 안 되는 것이었다.

그는 여기서 손바닥을 치면서 쾌재를 불렀다.

“상대적인 빈곤감을 느끼고 있는 인간을 포섭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야.”

자본주의에서 가진 게 없는 자일수록 세상에 대한 불만도 많아서 공작금을 적당히 내려 보내 충견(忠犬)을 만들기가 쉬웠다.

그는 김정일의 비밀교시에 따라 남조선 고정간첩을 통해 김한철에게 선물 두 가지를 내려 보냈다.

그는 스스로 만족해서 느끼한 웃음을 흘렸다,

“자식 김한철 그놈 현찰 되게 밝히는구먼.” <다음호에 계속>

 
   
 
▶저자 최도영(崔道榮)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1981년 MBC에 입사해서 라디오에서만 근무했다.

‘환경리포트’ ‘마이크출동’ ‘여성시대’ ‘음악캠프’ ‘푸른신호등’ 등 주로 현장에 나가서 취재하는 프로그램을 연출했다.

1988년 이후 현재까지 환경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2007년에 공정방송노조를 설립했으며 사무국장, 대외협력국장을 지냈으며 2009년에는 위원장을 맡았다. 2009년 2월, 노조원 대상의 ‘MBC 민영화 여론조사’, 그해 5월 ‘일산제작센터 비리의혹’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때 불과 3일 사이에 노조원의 3분의 2가 빠져나갔다. 현재는 이 사회의 썩은 사과를 골라내는 ‘뉴스톰’ ‘엔터스톰’ ‘팩트스톰’ ‘블랙박스’ 등을 준비하고 있다.

▶경력
라디오본부 PD(국장), MBC공정방송노동조합 사무국장 겸 대외협력국장 등.

▶담당프로그램 
환경리포트, 여성시대, 마이크출동, 배철수의 음악캠프, FM모닝쇼, 푸른신호등 아침의 행진, 강변가요제, 대학가곡제, 신인가요제, 한국민요대전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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