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응선 논설고문
강응선 논설고문

[뉴스포스트 전문가 칼럼 =강응선]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주 52시간 근무제’ 개편 방향에 대한 정부 대응을 보면 한심하다. 노동개혁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는 이 과제가 정부 내에서 2주일여 사이에 5차례나 반복되면서 갈팡질팡하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현행 ‘주 52시간 근무제’는 산업 현장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문제가 발생해 어떤 형태로든 수정돼야 마땅하다. 경제 현상이란 게 동전의 앞뒤처럼 양면성, 즉 득과 실이 함께 하기 마련이므로 지난 정부에서 좀 더 신중하게 결정했더라면 좋았을 것이지만 당시 허술한 정책 결정이 결국 사달이 난 셈이다.

때문에 이번 개편안도 애초부터 좀 더 여러 이해계층의 목소리를 폭넓게 듣고 최종적인 결정을 내렸더라면 정부, 여당, 대통령실, 심지어는 대통령까지 연계돼 혼선을 야기하는 정책 결정의 미숙함을 드러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주 52시간 근무제’ 개편은 앞으로 정부가 추진해야 할 노동개혁 과제 전체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어찌 보면 쉽게 해결할 수도 있었던 노동개혁의 첫 단추가 이렇게 국민들 앞에 미숙한 모습을 보이고 말았으니 노동개혁 말고도 시급히 정책 대안을 마련해야 할 연금개혁, 재정개혁, 교육개혁, 저출산, 고령화 등의 굵직굵직한 국가적 어젠다는 앞으로 어찌 세팅해 나갈 것인가. 첫 단추부터 삐거덕거리고 말았으니 걱정부터 앞설 수밖에.

이번 일을 겪으면서 앞으로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결정짓게 될 중대한 과제, 즉 국가적 과제(agenda)를 세팅하는 방식을 다시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듯이 향후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게 될 과제들에 대해선 이해당사자는 물론 국민의 총체적 의사까지 담아낼 수 있는 정책 결정 방식을 도입해야 할 것이다.

그저 단순히 ‘이것은 대선 공약이니’ 하는 식의 안이한 정신자세로 주요 정책 결정을 하다가는 제2, 제3의 사달이 예상되기 때문에 그렇다.

이 대목에서 정부의 정책결정 방식이 민간기업의 의사결정 방식과 비교해 어떠한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기업들은 늘 살아남기 위해, 다시 말해 지속적 생존을 위해 현재는 물론이고 중장기적인 미래과제를 찾아내고 그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다. 그러기에 요즘처럼 격변하는 세계 경제환경 속에서도 그들은 생존을 확보하고 그것이 결국 한국경제의 현주소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어떠한가. 무엇보다 5년 단임 정권이라는 태생의 환경 속에서 한 발자국이라도 나아가기는커녕 늘상 허우적거리고 있는 꼴이다. 대표적 사례가 저출산 대책이다. 2000년대 들어 역대 정권이 수 십조원의 세금을 쏟아 부었건만 결과는 거꾸로만 가고 있다. 출산율 세계 최하위라는 오명만 뒤집어 쓰고 있을 정도로 대표적인 실패 사례다.

이쯤되면 과거 개발연대(주로 70-80년대를 지칭)에 정부가 마련해 실행에 옮겼던 경제사회발전 5개년계획(최초 이름은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그리워진다. 1993년 문민정부가 들어서자마자 개발독재 시대의 산물이라며 폐지되고 말았지만 그 이후로는 폭넓게, 그리고 중장기적으로 국가의 미래를 내다보는 어젠다 설정 자체가 없어진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1962년 이후로 5개년계획이라는 미래를 향한 좌표 설정이 있었기에 우리가 후진국을 벗어나고 중진국을 넘어 이제 세계 10위 경제권에 진입할 수 있었다. 이런 국가적 기능이 없어진 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며 현재 우리 경제의 부진과도 결코 무관하지 않다.

이제라도 국가적 어젠다 자체의 설정은 물론이고 이에 대한 구체적 정책 대안 마련 또한 더 폭넒은 계층이 참여해 긴 호흡을 가지고 추진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저 대선 캠프에서 검토됐다든가, 공약이기 때문이다 라는 식의 한계적 여건에서 국가적 주요 정책이 결정되는 것만은 더이상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프로필>
▲ 서울상대 졸업
▲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경제학 석사
▲ 미국 하와이대 경제학 박사
▲ 제 16회 행정고시
▲ 경제기획원  정책조정국 조정 4과장
▲ 매일경제신문 논설위원실장MBN 해설위원
▲ 시장경제연구원장
▲ 고려대 초빙교수
▲ 서울사이버대 부총장
▲ 가천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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