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아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이사 인터뷰
고강도 업무·낮은 수가...코로나19·저출산 겹쳐
“소아청소년과 붕괴 직전...올해 안에 대책 내놔야”

어린이 환자는 어른과 다르게 대해야 한다는 의학적 상식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의학이 소아과학(小兒科學)을 따로 정립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9세기부터다. 우리나라에서는 2007년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소아청소년과로 명칭이 변경됐다. 향후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주역들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소아과가 오늘날에는 안 보이기 시작했다. <뉴스포스트>는 이른바 ‘소아과 대란’ 사태를 해결할 방안을 모색해 본다.

이진아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사진=서울아산병원 제공)
이진아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사진=서울아산병원 제공)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지난 27일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연차별 수련 현황’ 자료를 살펴보면 전국 1~4년 차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는 2018년 850명에서 2023년 304명으로 5년 새 546명이 감소했다. 올해 304명의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들 중 1년 차는 44명, 2년 차 36명, 3년 차 40명, 4년 차 83명이다. 1~3년 차 인원수는 4년 차와 비교하면 절반 수준에 그쳤다. 해마다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숫자가 감소한다는 의미다.

소아청소년과를 희망하는 예비 전공의들 역시 정원보다 턱 없이 모자란 상황이다. 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정원은 159명이지만, 지원자는 32명에 불과했다. 전국 각 대학병원의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모집 결과도 다르지 않았다. 모집 병원 50곳 중 38곳에는 소아청소년과 지원자가 한 명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유일하게 정원을 다 채운 대학병원은 단 1곳에 그쳤다.

앞서 올해 3월 말 개원의들로 구성된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소아청소년과 간판을 내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호소하며 폐과 선언을 한 바 있다. 이후 동네 작은 소아청소년과 병의원들이 속속 문을 닫고 있고, 제법 큰 규모의 어린이 병원까지 영향받고 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보건 당국은 대책 마련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현재까지 눈에 띄는 성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른바 ‘소아과 대란’은 소아청소년과 의사 수가 턱없이 모자란 상황을 의미한다. 초저출생 국가 대한민국에서 아이들보다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더 부족해진 것이다. 왜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이 사라질까. <뉴스포스트>는 해답을 알기 위해 당사자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이달 23일 대한소아청소년학회 홍보이사를 맡고 있는 이진아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와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예견된 사태, 소아과 대란

이 전문의에 따르면 ‘소아과 대란’은 예견된 사태였다. 높은 업무 강도와 낮은 보상 수가 등 고질적인 문제가 있었는데, 엎친데 덮친 격 저출생 현상과 코로나19 팬데믹의 장기화로 환자 수마저 줄어든 것이다. 이 전문의는 “지속적인 저출생 현상 역시 소아청소년과를 기피하게 만든 데 한몫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의사들이 소아청소년과를 기피하게 된 원인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이 전문의는 “소아청소년과를 금전적인 이유로 지원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다. 과거에도 인기 있는 과는 아니었지만, 소명의식을 갖고 지원하려는 ‘마니아층’은 항상 있었다”면서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 사망 사건 이후 마니아층은 한번 무너졌다. 소아청소년과 전공의가 하고 싶어도, 구속 수사까지 감내할 의사들은 많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지난 2017년 12월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 인큐베이터에서 치료받던 환아 4명이 감염에 의한 패혈증으로 사망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의대 교수 3명이 구속되는 등 의료인 총 7명이 재판을 받았다. 당시 의료계는 강하게 반발했다. 환자의 사망으로 의료인을 구속 수사하는 것은 과한 처사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듬해 4월에는 구속 수사 반대 집회를 열기도 했다.

지난 2018년 4월 서울 동화면세점 앞에서 의료계 인사들이 이대 목동병원 신생아중환자실 의료진 3명 구속을 규탄하며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2018년 4월 서울 동화면세점 앞에서 의료계 인사들이 이대 목동병원 신생아중환자실 의료진 3명 구속을 규탄하며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재판 결과 이대목동병원 7명의 의료인은 1심부터 대법원까지 전부 무죄를 선고받았다. 숨진 신생아들이 의료인의 과실이 아닌 다른 원인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는 게 무죄 선고 이유였다. 의료인들은 혐의를 벗었지만, 소아청소년과 기피 현상은 가속화됐다.

이 전문의는 “위중한 환자일수록 사망 가능성은 커진다. 의사가 환자 사망으로 구속 수사까지 된다면 누가 중환자를 맡겠나”라며 “2019년 경에는 소아청소년과 지원자가 뚝 떨어지는 것을 체감했다”고 전했다.

풍전등화 상황인 소아청소년과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의 높은 노동 강도는 미디어나 언론을 통해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만큼 소아청소년과 의료 수준에 대한 기대치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잔인한 사실이지만 모든 환자가 다 살 수는 없다. 아무리 열심히 치료해도 경과는 나빠질 수 있다. 3차 의료기관에 종사하는 이 전문의는 1~2차 기관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이 받는 스트레스를 간접적으로 경험했다고 털어놨다.

이 전문의는 “3차 의료기관에는 진료나 치료가 어려운 환자들이 주로 온다. 환자들의 보호자들은 1~2차 의료기관을 거친 상태라 매우 지치고, 기대가 꺾여있다”며 “반면 1차 의료기관 선생님들은 보호자들의 다급함을 온몸으로 감내해야 한다. 일부 보호자들은 1차 의료기관을 원색적으로 비난하시기도 한다. 의사도 인간이다. 원색적 비난은 상처를 낳는다”고 전했다.

1~2차 의료기관보다 흥분한 보호자를 마주할 확률은 적지만, 3차 기관의 상황도 여의치 않다. 1~2차 진료체계가 무너지면서 종합병원은 병동, 중환 및 응급진료를 축소해야 했다. 여파는 금세 드러났다. 지난달 서울에서는 고통을 호소하던 5세 어린이가 밤새 응급실을 찾다가 병상이 모자라 입원하지 못했고, 다음날 사망했다. 가장 보호받아야 할 소아청소년을 위한 의료체계가 무너지고, 사회안전망이 위협받는 중대한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

다만 이 전문의는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가 ‘폐과’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오해를 일으킨다고 우려했다. 그는 “1차 기관 선생님들의 고통을 충분히 공감한다. 폐과라는 표현은 소아청소년과가 아니더라도 일반 진료로 다변화해 살길을 찾겠다는 선언으로 해석된다”면서도 “폐과라는 용어 사용이 소아청소년과 자체의 존립 문제로 비치고, 국민적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소아과 대란, 정상화를 향해서

바람 앞 등불인 소아청소년 진료체계를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이고 강도 높은 정책이 필요하는 게 이 전문의의 주장이다. 그는 “보통 수가 얘기가 많이 나오지만, 수가 문제가 전부는 아니다. 소아청소년과 의료진들의 의료 행위가 정당한 평가와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표현하는 게 더 적절하겠다”며 ‘연령 가산’과 ‘중증도 가산’을 제시했다.

이 전문의는 “어린 환자는 성인보다 진료를 보는 게 어렵다. 환자가 어리면 어릴수록 더욱 치료 난이도가 올라간다. 연령을 가산해 보상을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며 “마찬가지로 중증도에 대한 가산도 필요하다. 환자의 상태가 중할수록 치료가 더욱 어렵다. 중증 소아청소년 환자들을 치료하는 의료진들에게 정당한 대우와 격려가 필요하다”라고 전했다.

아울러 신경정신과와 같이 소아청소년과도 상담 수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전문의는 “진료 보고, 약을 지어주는 것보다 환자에 대해 자세한 상담을 해주는 게 훨씬 많은 노력이 들어간다”며 “보호자들 역시 자녀의 건강과 관련된 일이기 때문에 질문도 많고, 자세한 답변을 원하신다. 보호자들의 궁금증은 누군가가 해결해줘야 한다. 적절한 상담 수가 도입을 고려해봐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 밖에도 일선 현장과 정부 사이 원활한 소통, 지속적인 정책 실행을 위해 보건복지부 내에 전담 부서 설치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 전문의는 “학교에서 아이들이 건강검진을 하는데, 교육부 소관이라 적절한 진료와 연결되기 쉽지 않다”며 “우리나라에서 소아청소년의 건강을 담당하는 주관 부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국가의 소아청소년 의료체계 관리 책임의 근거를 규정하는 ‘어린이 건강기본법’ 제정 역시 중요하다. 이 전문의는 “출생한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건강하게 자라도록 국가가 서포트를 해야 소아청소년과가 살아날 거 같다”며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여러 전문가들과 조율하며 관련 법을 제정했지만, 우리나라에는 아직 없다”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이 전문의는 “소아청소년과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힘든 시기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소아청소년과는 우리 사회의 생존 문제다. 단기적인 말만 하는 게 아니라, 올해 안에 현실적으로 소아청소년 의료체계를 회복시킬 안이 나오지 않으면, 조만간 큰일 날 수 있다”며 “전공의부터 시작해 여러 선생님들께서 회복의 시그널을 받아야 희망이 있을 거 같다. 국민들 전체적으로 다 같이 응원하고, 살만한 나라를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저작권자 © 뉴스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