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5일 오전 최갑복이 탈주 직후 은신했던 곳으로 추정되는 대구 동구의 한 농가에서 현장검증 실시 전 경찰에게 담배를 얻어 피고 있다.
[뉴스포스트=노재웅 기자] 대구 유치장 배식구 탈주범 최갑복이 도주 6일 만에 다시 붙잡혔다. 온몸에 연고를 발라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13.5cm 간격의 비좁은 창살을 빠져나간 최갑복은 탈주 이후 연일 세간의 화제가 됐다. 특히 도주 기간 동안 그의 행적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최갑복은 경찰이 당초 도주지로 지목했던 경북 청도의 야산을 유유히 탈출했던 것은 물론, 도주 과정에서 단 한 차례의 경찰 검문도 받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경찰 추적을 피하기 위해 여성용 옷부터 우의까지 4차례에 걸쳐 옷을 바꿔 입으며 변장 행각을 벌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일주일 간 경찰을 유린하고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최갑복의 6일간 도주일지를 낱낱이 재구성해봤다.


유치장 배식구 통해 탈출, 대구에서 창원까지 6일간 유유히 도주 성공
과감한 도주 행로에도 불구 경찰 최소 5번 이상 검거기회 놓쳐 ‘질타’

유치장 탈주범 최갑복(50)이 도주 6일 만에 다시 붙잡혔다.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비좁은 창살을 빠져나간 최갑복은 탈주 이후 연일 세간의 화제가 됐다. 특히 도주 기간 동안 그의 행적에 대해 관심이 집중됐다. 그는 경찰이 당초 도주지로 지목했던 경북 청도의 야산을 유유히 탈출했던 것은 물론, 도주 과정에서 단 한 차례의 경찰 검문도 받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경찰 추적을 피하기 위해 여장을 하는 등 수 차례에 걸쳐 변장 행각까지 벌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서 근처에서만 11시간

경찰에 따르면 최갑복은 지난 17일 오전 5시 2분께 유치장에 수감 중 배식구를 통해 달아났다. 오전 4시 54분께 일어난 최갑복은 준비해뒀던 외상용 연고를 머리, 몸, 배식구 창살 등에 발랐다. 윗도리를 벗은 상태로 가로 45cm·세로 15㎝ 크기의 배식구에 머리를 집어넣고 두 차례 가량 몸을 뒤틀어 밖으로 빠져나가는데 성공했다.

배식구를 통해 유치장을 빠져나온 최갑복은 낮은 자세로 경찰관이 졸고 있던 감시대 옆을 지나 10여m 떨어진 벽면에 도달했고, 2m 높이의 벽면 창문을 열고 웃옷을 밖으로 집어던졌다. 그러고는 풀쩍 뛰어올라 창틀을 붙잡았다. 가로 170㎝·세로 65㎝ 크기의 창문에는 창살이 13.5㎝ 간격으로 설치돼 있었다. 그는 이 비좁은 창살 틈을 비집고 경찰서 건물을 빠져났다. 최갑복이 쇠창살 사이를 빠져나가는 데는 불과 수십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최갑복은 탈출 전 잠들어 있는 것처럼 모포를 둘둘 말아 놓았고, 이 사실 몰랐던 경찰은 탈출 두 시간이 지난 오전 7시 35분께가 돼서야 도주 사실을 인지했다.

최갑복이 떠난 유치장 안에는 '出理由書'(출이유서·유치장을 나가는 이유)라고 적힌 구속적부심 청구서가 남겨져 있었다. 탈출 이유서에는 '미안하다', '누명을 벗어야 하기에 선택한 길'이라고 적혀 있었다. 또 '선의적 피해를 끼쳐드려 죄송하다, 용서해 달라. 누구나 자유를 구할 本能(본능)이 있다'는 내용과 함께 괴로움과 어려움을 구원해 달라는 의미인 '救苦救難 南無觀世音菩薩(구고구난 나무관세음보살)'이란 글귀가 한문으로 남겨져 있었다. 최갑복은 초등학교 5학년까지만 다닌 것으로 알려졌지만 한문쓰기 실력은 중·고등학생 이상의 수준을 보여 잦은 수감생활 중 한문을 따로 공부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탈출에 성공한 최갑복은 경찰서 근처 빈 집에 침입해 벙거지 모자와 블라우스, 치마를 훔쳐 입고 여장을 했다. 경찰서 주변에 숨어 지내다 오후 4시 30분께부터 10시께 사이 서에서 2여㎞ 떨어진 신서동 한 주택에 침입해 승용차 1대와 지갑(신용카드 등)을 훔쳐 오후 10시 2분께 동대구 IC에 진입, 20여분 후 청도 IC에 진출했다.

최갑복은 이어 오후 10시 30분께 경북 청도군 청도읍 원정리 한 편의점에서 현금으로 담배 2갑, 우유, 김밥 등을 구입했으며 15여분 후 청도읍 월곡리 한 주유소에서 훔친 신용카드를 이용, 기름 12만원을 주유했다. 이때도 최갑복의 의상은 바뀌어 있었는데 편의점에 찍힌 폐쇄회로(CC)TV에는 검은색 양복과 초록색 남방을 입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후 편의점 종업원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순찰차와 5km의 추격전을 벌이다가 오후 11시 30분께 경북 청도군 청도읍 초현리 한재초소 앞 100여m 지점에서 경찰의 검문을 보고 차를 버린 채 인근 야산으로 도주했다. 경찰은 야산에 수색병력 400~500명과 수색견, 헬기 등 총동원했지만 그를 찾아내진 못했다.


“억울하다” 쪽지 남기기도

최갑복은 야산으로 도주 후 은신을 하며 도보로 산을 넘어 9월 20일 오전 7시 30분께 경남 밀양시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현금 6,000원을 주고 창원행 버스에 탔다. 그러다 버스 안에 있던 공익근무 요원 4명이 자신을 알아보자 오전 7시 50분께 경남 밀양시 상남면 새천마을 정류장 부근에서 멀미가 난다며 하차했다.

버스에서 하차 후 오후 5시께부터 다음날 오후 7시 10분께 경남 밀양시 하남읍 명례리 한 고추농막에 침입해 밀짚모자와 우의, 부엌칼 등을 훔치고 라면을 끓여 먹은 후 훔친 옷으로 다시 갈아입었다. 이곳에도 최갑복의 자필 쪽지가 남겨져 있었다. 쪽지에는 농막 주인 앞으로 '죄송합니다. 비강도자 최갑복'이라는 메모가 적혀있었다.

최갑복은 9월 21일 오후 7시~8시께 사이 경남 밀양시 하남읍 수산리 소재 '새마을금고 웨딩' 부근에서 주민에 의해 목격됐으며, 다음날 오후 4시 10분께 같은 장소 인근 한 건설현장에서 주민이 목격해 경찰에 신고했다.

이어 같은 날 오후 4시 7분께 경남 밀양시 하남읍 수산리 한 주택에 침입했지만 주민에 의해 또 다시 발각, 9월 22일 오후 4시 40분께 같은 장소 한 아파트 옥상에서 경찰에 의해 검거됐다. 유치장에서 직선거리로 80㎞, 실제 이동거리로 무려 90㎞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검거 당시에도 다시 복장이 줄무늬 흰색 셔츠와 면바지로 바뀌어 있었다.

최갑복의 도주 기간 소지품(위)과 탈주 직전 자신은 억울하다는 내용으로 작성한 메모.
검거 마지막 순간까지도 확인할 수 있었듯 최갑복은 도주 내내 여장도 불사할 만큼 각종 옷을 훔쳐 갈아입으며 경찰의 눈을 피했다. 이동 거리도 예상보다 상당했다. 그의 기가 막힌 변장과 신출귀몰한 도주 방법 때문에 6일 동안 3,300여명의 대규모 인원을 총동원해 대구 동부경찰서 주변과 청도, 밀양 등을 검문하고 수색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허탕만 쳤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시민들의 발 빠른 신고가 아니었다면 경찰은 아직도 최갑복을 찾지 못하고 엉뚱한 곳만 수색하며 헤매고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경찰은 이번 탈주 과정에서 초동 대응 미비 등으로 최소 5번 이상 검거기회를 놓친 것으로 확인됐다.

우선 유치장 근무자 2명은 근무수칙을 어기고 면회실과 유치장 안 감시대에서 각각 잠을 자며 탈주 빌미를 제공했다. 유치장 복무실태와 유치인 수 확인을 해야 하는 당직팀장도 1시간여 뒤 유치장을 돌아봤는데도 탈주사실을 알지 못했다.

이후 최갑복이 최소 11시간 이상 경찰서 주변에서 숨거나 돌아다녔는데도 검문검색과 수색이 전혀 이뤄지지 못했다.

또 오후 6시에서 밤 10시 사이 역시 경찰서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주택에서 차량을 훔쳐 동대구IC를 통해 빠져나갔는데도 경찰은 행적파악을 전혀 하지 못했다. 그 시간 동안 경찰은 200명이 넘는 인원을 동원, 동부관내 버스터미널과 동대구역과 연고지 위주로 검문검색을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고속도로이용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이어 최갑복이 청도군의 편의점에서 담배 등을 사고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는 등 눈에 띄는 행동을 보여 시민의 신고가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차량으로 추적을 하다 불과 20여m 앞에서 놓쳐 검거기회를 날렸다. 뿐만 아니라 9월 20일 최갑복이 창원행버스에서 내려 인근 야산으로 간 사실을 신고 받았을 때도 빠르게 대처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만약 최갑복이 그대로 버스를 타고 대도시인 창원에서 잠적해버렸다면 지금까지도 검거가 되지 않았거나 미제사건이 될 가능성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또한 최갑복의 검거는 이루어졌지만 탈주 경로에 대한 경찰의 발표가 일부 경로가 불분명한 채 이루어져 국민들의 의구심 해소에 미흡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어 은폐한 부분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마저 사고 있다. 경찰의 수사발표에는 최갑복이 유치장 탈주 후 이동을 위해 차량을 훔치기 전까지의 행적과 청도에서 밀양으로 도주했을 당시의 행적 등이 누락됐다.


‘사라진 이틀’ 최갑복은 뭘 했나

한편 검거 3일 후인 9월 25일에는 사건의 현장검증이 실시됐다. 이날 현장검증은 최갑복을 차량에 태운 뒤 대구 동구와 경북 청도군, 경남 밀양시 일대를 돌며 이동 경로와 행적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경찰은 최갑복의 탈주 직후 은신처 및 주요 도주 경로에서 그를 차에서 내리게 해 정확한 행적을 파악했다.

차에서 내린 최갑복은 담담한 표정으로 현장검증에 임했다. 특히 현장검증 시작 전 경찰에게 담배를 얻어 피우기도 했다. 그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산을 타고 강물을 따라 밀양으로 넘어갔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주로 밤에 이동해 최갑복 자신도 정확한 이동 경로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자세한 행적은 조금 더 조사해 봐야 알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탈주범 최갑복의 정확한 도주 경로 및 행적이 파악되는 대로 검찰에 송치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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