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통신사 보조금 처리 놓고 갈등

이동통신업계가 휴대전화 보조금에 대한 회계처리 기준을 놓고 갈등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의무약정제에 가입한 소비자에게 지급하는 휴대전화 보조금을 ‘자산’으로 회계처리할 지, 아니면 ‘비용’으로 인식할지가 논란의 핵심이다.

 

갈등의 시작은 KTF가 의무약정제 가입자에 대한 보조금 회계처리를 이연 처리키로 하면서 불거졌다. SK텔레콤과 LG텔레콤은 보조금을 의무약정기간(18~24개월) 동안 나눠 회계처리할 경우 회계 일관성을 훼손할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SKT와 LGT은 지난 4일 금융감독원에 보조금 처리에 대한 회계 질의서를 제출했다.

 

금감원은 보조금 지급을 향후 경제적 이익이 발생하는 ‘자산’으로 회계처리하는 것이 적절할지, ‘비용’으로 인식해 당기손익에 반영해야 할지를 이달 말까지 결론을 내린다는 방침이다.


 

KTF가 마케팅 비용을 이월 분산처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가입자 모집을 위해 쓴 돈이 매월 결산에 한꺼번에 반영되는 것을 막기 위해 여러 달에 걸쳐 나눠 처리하는 방식을 고민하는 것이다.

 

13일 KTF는 “회계법인 등에 질의한 결과, 의무약정제에 한정할 경우 비용을 이연 처리하는 것이 적정하다는 의견을 받았다”면서 “비용을 약정기간 동안 나눠 회계처리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결국은 고육지책


의무약정제는 일정 기간 동안 가입을 해지하지 않는 조건으로 휴대전화 단말기 보조금을 지급하는 제도를 말한다. KTF의 경우 신규가입자가 24개월동안 해지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최대 18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한다.

 

단말기 보조금을 이연 회계처리할 수 있다는 주장은, 단말기 보조금은 당기에 수익을 얻기 위한 지출이 아니라, 향후 고객 유지를 통해 미래의 초과이익을 발생시킬 수 있는 수익인 만큼 ‘수익과 비용 대응의 원칙’에 따라 수익을 얻게 되는 기간에 걸쳐 비용을 배분해야 한다는 논리가 깔려 있다.

 

KTF에 따르면 자사 의무약정 가입자는 지난 4월 현재 약 20만명으로, 이로 인해 KTF가 지급한 보조금은 최대 360억 원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는 이렇게 지급한 돈을 해당 월의 마케팅 비용으로 처리했으나, 앞으로는 약정기간으로 나누어 인식하겠다는 게 KTF의 계획이다.

 

KTF가 회계처리 방식을 바꾸려는 것은 손익계산서 등 재무제표에 나타나는 영업비용을 일시적으로나마 줄여보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예컨대 지난달 실제 지급한 돈이 360억원이라면 변경된 회계처리 방식으로는 관련 영업비용으로 15억원(360억원/24개월)만 기록하면 된다.

 

                                 전액 ‘비용처리’에서 분할처리로 기준변경

                   ‘조삼모사식’ 변경에 업계 및  투자자 반발

 

 

회사 입장에서는 공격적으로 가입자를 유치하는 바람에 과도한 마케팅 비용 지출이 있을 경우 투자자 등 외부의 우려나 불만을 다소 누그러뜨릴 수 있다는 효과를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해당 월에 반영되지 않은 비용은 여러 기간에 걸쳐 전액 비용으로 처리된다. 때론 가입자가 많이 늘지 않은 시기임에도 회계상으로 영업비용이 크게 늘어날 수도 있다. 한꺼번에 비용으로 반영하던 것을 여러 기간으로 나눈 것에 불과해 나중에 그 부담이 고스란히 전가되는 것이다.

 

결국 일시적으로나마 재무제표상의 과도한 마케팅 비용을 줄여보려는 ‘고육지책’인 셈이다.

KTF가 마케팅 비용 회계원칙을 변경하려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업계는 크게 반발하고 있다.

 

SKT은 “금감원이 1999년에는 단말기 보조금의 자산성을 인정하지 않고 발생시 비용으로 처리하는 결론을 내렸다”면서 “시장 상황에 큰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KTF가 회계기준을 변경하고 금감원이 이를 승인한다면 금감원 스스로 자신이 정했던 회계기준을 위반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또 KTF의 보조금 이연처리를 금감원이 인정할 경우, 업계의 영업실적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게 된다는 점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SKT와 LGT가 기존의 회계처리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KTF만 기준을 변경할 경우 일시적으로나마 KFT의 영업이익이 상당부문 증가할 것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통신업계에 대한 투자자들의 혼란을 초래할 것이란 게 다른 통신사들의 주장이다. 실제 한 회계사는 “일단 KTF가 회계기준을 변경하게 되면, 다른 통신사와의 공정한 실적 비교가 어려워져 투자시장에 혼란을 줄 수 있다”면서 “일시적으로 KTF의 이익은 증가하겠지만, 분할 처리하는 만큼 미래 현금흐름에 대한 정확성이 부족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현재 SKT와 LGT는 의무약정 기간에 관계없이 휴대폰 보조금 지급시기에 전액을 비용으로 처리하고 있다. 반면 KTF는 회계법인의 최종검토를 거쳐 2분기 결산부터 변경된 회계기준을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금감원 결정에 판가름 날 듯


결국 KTF로 촉발된 통신업계의 회계기준 논란은 이달 말 금감원의 유권해석 결과에 판가름 날 전망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99년 당시와 지금은 계약조건과 거래의 실질적인 모습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비교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는 금감원이 회계정책의 일관성보다 거래조건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에 앞서 금감원은 1999년 8월 이동통신 사업자의 단말기 보조금 회계처리와 관련해 당해연도의 비용으로 전액 처리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유권해석을 내린 바 있다. 다만 99년에는 의무약정 기간이 없었고, 위약금 등에 대한 규정도 허술해 시장 상황이 현재와 동일하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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