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노재웅 기자] 롯데 양승호 감독이 결국 사령탑에서 물러났다. 자진사퇴라고 포장했지만 사실상의 경질이다. 감독이 성적에 책임을 지고 용단을 내렸다는 구단 측의 입장은 표면적으로는 그럴싸해 보이나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야구팬들은 거의 없다. 구단과의 갈등설부터 ‘2년 우승 공약’ 실패에 따른 철퇴라는 주장에 이르기까지 양 감독 퇴진을 둘러싼 추측은 다양하다. 올 초부터 불거진 사퇴 논란에서부터 실제 사퇴에 이르기까지 양 감독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떠나는 순간까지 롯데 구단에 싫은 소리 한마디 하지 않았던 양승호 감독의 사퇴 내막을 들춰봤다.
 

2년 연속 PO 진출에도 불구 ‘20년 숙원’ 우승 풀지 못해 사실상 경질
우승 압박·선수기용 간섭 등 독이 든 성배 “누가 마실까” 질타 이어져

롯데 자이언츠 양승호(52) 감독이 결국 사령탑에서 물러났다. 롯데는 30일 양승호 감독과 결별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롯데 구단은 “양 감독이 24일 장병수 사장과 만나 사퇴 의사를 드러냈고, 이에 구단이 30일 최종 결정했다”고 밝혔다. 22일 SK 와이번스와의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패한 뒤 8일 만이다.


자진사퇴로 포장 했지만…

이로써 2010년 11월 1일 롯데 자이언츠 14대 감독으로 취임했던 양 감독은 2년 연속 롯데를 플레이오프(PO)로 이끌었지만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한 것에 책임을 지고 3년 계약 가운데 2년만 채우고 낙마하게 됐다. 사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경질이나 다름없다는 시선이 상당하다. 최근 불거진 사퇴 논란에서부터 실제 사퇴에 이르기까지 양승호 감독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양 감독은 22일 SK와의 PO 5차전서 패한 후 한 차례 사퇴 논란에 휩싸였다. 경기 후 "모든 책임은 내가 지겠다"며 자진 사퇴 뉘앙스를 내비친 것이 발단이었다.

양 감독의 발언이 사퇴 논란으로 이어지자 곧바로 본인이 직접 “사퇴 선언은 아니었다”라고 선을 그어 논란을 일단락 시켰다. 이후 23일 배재후 단장, 24일 장병수 사장과 연이어 만난 후 구단 측에서 “사퇴는 없을 것”이라며 “내년 시즌 코칭스태프 인선 등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고 발표함으로써 사퇴 논란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러나 양 감독을 신임하는 듯하게 보였던 구단의 입장이 뒤바뀌는 덴 고작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았다. 롯데는 정확히 6일 뒤 양 감독이 사퇴를 선택했다고 발표했다. 구단 측에 따르면 장 사장은 양 감독의 사퇴를 거듭 만류했지만 양 감독이 자신의 입장을 바꾸지 않아 끝내 받아들이게 됐다.

감독이 성적에 책임을 지고 용단을 내렸다는 구단 측의 입장은 표면적으로는 그럴싸해 보이나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야구팬들은 거의 없다.

올 시즌 초반부터 롯데가 우승하지 못할 경우 양 감독이 경질될 것이라는 소문은 공공연히 떠돌았다. 공식 계약기간은 3년이지만 사실상 ‘2+1’년 계약이라는 얘기도 기정사실화 됐다. 2년 내에 우승하지 못하면 나머지 1년 계약은 없다는 뜻이다. 지난달 30일 롯데가 배포한 보도자료에도 "양 감독은 2010년 10월 감독계약 당시 향후 2시즌 이내에 한국시리즈에 반드시 진출시키겠다고 약속했다"고 명시해 성적에 따른 경질에 가까운 뉘앙스를 풍겨 이를 뒷받침했다.

사퇴 논란 이후 6일이라는 시간도 사실상 롯데가 양 감독 경질 카드를 꺼내기 위한 기다림의 시간이었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신동빈 롯데 그룹 회장의 최종 결정이 내려지기까지 형식적인 절차로써 사퇴 논란을 일단락 시키는 발언을 했던 것이다. 상하 보고체계가 철저한 것으로 잘 알려진 롯데 그룹의 특성상 곧바로 경질 카드를 내밀기는 힘들었다는 것.

롯데 감독 자리라는 독이 든 성배를 감당하지 못한 양 감독의 자진 사퇴라는 이견도 있다. 로이스터 전 롯데 감독은 3년 연속 가을야구에 롯데를 보냈지만 큰 경기에서 약하다는 이유로 재계약에 실패했다. 또한 열정적인 일부 롯데 팬들은 성적이 안 좋을 때 양 감독의 가족 번호까지 알아내 협박을 일삼았다. 심지어 올해 준 플레이오프 때는 양 감독이 묵고 있는 호텔에 전화를 거는 일까지 있었다. 이러한 압박적인 요소들이 양 감독을 위축시켰다는 관측이다.


구단주 대행과의 갈등?
우승시키지 못한 책임?

일각에선 신동인 롯데 구단주 대행과의 마찰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양 감독이 선수기용 등에 대해 간섭하는 신 구단주 대행에 스트레스를 적잖이 받아왔으며, 둘 간의 갈등이 상당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지배적이다.

구단이 선수기용에 개입하는 일은 팀이 와해되는 첫 번째 지름길이라는 것이 야구계 정설이다. 2000년대 초·중반 롯데의 성적이 안 좋았던 것도 두 명의 사공이 배를 끌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이를 신경 쓴 듯 양 감독 역시 취임 당시 “2년 간 구단에서 선수기용에 대해 일절 간섭하지 말아 달라”고 요구한 바 있다.

그렇다면 사실상 경질에 가깝다는 지적이 일고 있는 양 감독의 사퇴는 왜 지금 이뤄진 것일까. 2012아시아시리즈(11월 8~11일·부산)가 그 이유일 가능성이 높다. 내부적으로 양 감독의 경질이 결정된 상태에서 아시아시리즈 지휘봉을 양 감독에게 맡긴다는 자체가 넌센스이기 때문이다. 만약 롯데가 우승이라도 차지한다면 구단으로선 더욱 양 감독을 내칠 명분이 없어지기 때문에 급한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양 감독의 사퇴로 인해 롯데 선수들 역시 큰 충격에 빠졌다. 선수들은 29일부터 아시아시리즈에 대비한 훈련에 들어갔지만 양 감독의 사퇴 소식에 훈련까지 중단됐다. 이른바 ‘멘붕’ 상태인 것.

양 감독은 선수들과의 소통을 통해 선수들의 능력치를 최대한 끌어냈던 것으로 유명하다. 친근한 이미지로 선수단이 편하게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해줬다. 전력손실에도 불구하고 투·타에서 짜임새 있는 팀을 만들며 구단 최초의 정규리그 2위를 달성하고, 2년 연속 PO행 티켓을 따냈다. 이대호의 일본 진출과 장원준의 군입대로 투타에 구멍이 뚫렸지만 기존 전력들을 조합해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다. 이대호의 공백은 박종윤을 중용하며 그 공백을 최소화했고, 백업포수 장성우의 빈자리는 두산에서 용덕한을 영입하며 효과적으로 메웠다.

또한 양 감독은 2년이란 시간 동안 롯데에 자신의 흔적을 꽤 남겼다. 지난 겨울 프리에이전트(FA) 시장에 나온 정대현과 이승호를 잡았고, 2차 드래프트를 통해 김성배를 영입하며 강한 불펜진을 구축했다. 풍부한 불펜진을 자랑하며 '양떼야구'라는 신조어도 만들어내기도 했다.
 

양 감독이 롯데에 남긴 것

나름 족적을 남기고 떠난 양승호 감독을 대신해 롯데의 지휘봉을 잡게 될 후임 감독은 누가 될 것 인가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후보는 많다. 올해 사령탑들의 대이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로썬 김시진 전 넥센 감독, 조범현 전 KIA 감독이 유력하다. 박정태 1군 타격코치, 권두조 1군 수석코치의 내부 승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윤학길 2군 감독과 윤형배 2군 투수코치와는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한편 롯데를 떠나는 양승호 감독은 “부산 팬들에게 너무 죄송하다. 무한책임을 느낀다”며 계약기간 1년을 남기고 사실상 경질된 심정을 전했다. 양 감독은 떠나는 순간까지 롯데 구단에 싫은 소리 한마디 하지 않았고, 구단이 발표한 사퇴 보도자료와 다른 말은 거의 하지 않았다. 양 감독은 11월 초까지 부산에서의 생활을 정리한다. 이후 서울로 올라와 친척이 있는 미국 시애틀로 건너가 바람을 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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