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노재웅 기자]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애인 없는 솔로들을 대상으로 누리꾼들이 직접 기획한 게릴라 단체미팅 ‘솔로대첩’이 뜨거운 관심을 불러 모았던 당초 기대와 달리 허무하게 끝이 났다. 영하 10도를 넘나드는 강추위 속에서도 여의도 공원을 꽉 채운 인파는 가히 장관이었다. 그러나 남녀 성비가 문제였다. 일각에선 육군 훈련소를 다시 온 것 같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 눈을 돌리면 경찰과 남자들, 그리고 비둘기가 제일 많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곳곳에선 커플 탄생을 알리는 환성소리도 들려왔다. 연말 가장 핫한 키워드였던 ‘솔로대첩’의 현장으로 직접 들어가 보았다.


여의도공원 꽉 채운 대규모 인파, 남녀 성비 9대1 불균형 해프닝
정신없는 진행 속 허무했던 ‘솔로들’… 극소수 커플 탄생 ‘눈길’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오후 3시. 영하 10도를 넘나드는 매서운 한파 속에도 서울 여의도 공원에는 젊은 청년들이 속속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바로 애인 없는 솔로들을 대상으로 누리꾼들이 직접 기획한 게릴라 단체미팅 ‘솔로대첩’이 열리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여자는 안보이고
비둘기와 남자뿐

이날 여의도 광장은 어디서도 구경하기 힘든 대규모 젊은 인파로 웅성거렸다. 옆구리 시린 솔로들은 다음날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낼 연인을 찾기 위해 기대 반, 걱정 반 얼굴을 하고 공원 한 가운데로 모여들었다.

당초 주최 측은 남성은 흰색 계열의 옷, 여성은 빨간색 계열의 옷을 입고 오라고 공지했지만, 이날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각양각색의 옷차림으로 공원을 찾았다. 대신 목도리나 장갑, 모자 등으로 색깔을 표시하는 ‘센스’를 발휘한 이들이 몇몇 눈에 띄었다.

행사 시작 10분 전, ‘솔로대첩’ 주최자 유태형 씨가 등장했다.

그는 "얼굴과 능력을 보는 것이 아닌, 일단 한 번 만나서 차 한 잔 하며 감성적인 대화를 해보자는 것"이라고 행사의 취지를 밝혔다.

위·아래를 화이트 컬러로 맞추고 "저도 참가자입니다"라고 외친 그는 "3시 24분으로 알람을 맞춰 달라. 알람이 울리면 남녀가 같이 마주 본 상태에서 서로에게 가는 것이다"라고 방법을 설명했다. 여의도공원 측의 사전 반대로 인해 행사를 플래시몹 형태로 변경한 것.

조금 뒤 행사 전 SNS를 통해 MC를 자청했던 개그맨 유민상도 등장했다. 그러나 공원 측의 불허로 인해 마이크와 스피커 사용이 불가능해지면서 진행은 엉망이 됐다.

약속했던 3시 24분이 됐지만 참가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몰랐고, 갈 길을 잃은 현장은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행사 자원봉사단들이 돌아다니면서 쪽지로 된 메시지를 건넸지만 이를 받아본 이는 극히 드물었다. 또한 차라리 육성으로라도 크게 퍼트렸으면 메시지가 전달됐겠지만, 자원봉사단들은 서로 팔짱을 끼고 주변을 서성이거나 우후죽순 몰려다니며 작은 목소리로 수줍은 듯 시작을 알릴뿐이었다.

젊은 남녀들은 답답한 진행과 환경 속에 용기를 내지 못했고, 결국 수백명에 달하는 취재진과 경찰 인력이 더 열성인 해프닝이 발생하고야 말았다.


용기 있는 자는
미인을 얻었다

커플 탄생이 어려웠던 건 답답한 진행 탓만은 아니었다.

예상 참가자의 반도 모이지 않은데다가 참가자의 9분의 1이 남자인 ‘남초현상’도 문제였다. 간간히 보이는 여성들은 대부분 애인과 함께 동행 해 온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일각에선 육군 훈련소를 다시 온 것 같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 눈을 돌리면 경찰과 남자들, 그리고 비둘기가 제일 많이 보였다.

주변에선 “지금 하고 있긴 한 거야?”, “뭐야 남자밖에 없어” 등의 남자 솔로들의 목 멘 원성이 끊이질 않았다.

더불어 당초 참가키로 했던 레이싱모델 이예빈, 개그맨 박지선 등 연예인들이 안전상의 이유 등으로 대거 불참하면서 허탈감을 더했다.

솔로대첩의 식전 행사에서 공연할 예정이던 가수 길미와 장희영 역시 해당 행사가 취소되면서 자연스럽게 빠지게 됐다.

여기에 솔로대첩에 모이는 인파를 노리고 ‘한몫’ 해보려고 찾아든 기업들과 장사꾼들은 지켜보는 이들과 참가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공원 바닥에는 광고 전단지가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었고, 기업명이 새겨진 옷을 입은 모델들은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붙잡고 자체 이벤트를 진행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렇게 어수선한 와중에도 커플은 탄생했다. 기자가 현장에서 확인했던 커플은 총 2쌍.

이날 현장에서 만난 한 커플은 남성의 용기 있는 고백으로 성사될 수 있었다. 젊은 패기의 20대 남성이 미모의 30대 여성을 휘어잡은 것.

25살의 익명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성은 “함께 사진을 찍자고 말을 건넸다”면서 “돌아다니면서 인증샷도 찍고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 생각해보겠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짤막한 인터뷰를 마치고 공원 밖으로 사이좋게 빠져나갔다. 주변에는 부러운 눈치를 한 이들이 가득했다. 남자뿐인 행사였지만 용기 있는 자는 스스로 미인을 얻은 것이다.

한편 이처럼 가뭄에 콩 나듯 맺어진 특수한 몇 명을 제외한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행사 시작 1시간여 만에 쓸쓸히 공원을 빠져나갔다. 다행히도 경찰이 우려했던 불미스런 사고는 없었지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말처럼 행사는 허무함만 남친 채 끝을 맺었다. 솔로대첩을 찾은 대부분의 솔로들에게 남은 건 추위에 꽁꽁 얼어붙은 몸과 마음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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