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기획/ ‘글로벌 포스코’의 현주소 진단

1968년 4월 1일, 잡초로 무성한 영일만 황무지에 포항제철주식회사가 설립된다. 첫 삽을 든 주인공은 박태준 포철 사장. 이후 그는 세계 철강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이룬다. ‘제철보국’을 향한 박태준의 리더십은 40년이 지난 지금도, 신일본제철 등에서 견학을 올 정도로 성공한 기업의 주춧돌 역할을 하고 있다. 일본 뿐 아니라 미국 하버드 스탠퍼드대 등 유명 대학에서도 포스코의 성공 요인을 연구분석해 유용한 경영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세계적 철강 전문 분석기관인 WSD도 80년대 중반 후 지금까지 포스코를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철강기업으로 선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포스코는 앞으로도 계속 탄탄대로를 달릴 것인가. 해외 철강업계 사정에 정통한 전문가의 대답은 “솔직히 낙관하기 어렵다”는 쪽이다. 이유는 나름대로 분명하다. 이구택 회장이 추진해온 ‘글로벌 포스코’ 전략이 최근 들어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구택 포스코’는 전 세계적으로 급등하고 있는 원자재가에 대한 사전 대처도 소홀했다. 최근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은 모 경제지와의 인터뷰에서 “가격이 오르기 전에 최대한 철강석을 확보하라고 그렇게 충고했는데 (경영진이) 이 문제를 소홀했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 충고를 한지는 꽤 오래됐다고 한다. 그 뒤 포스코는 호주 등지에서 철광석 지분을 사들이기는 했다. 하지만 이미 가격이 오를만큼 오른 상태. 그렇다면 이렇듯 앞을 내다본 박태준 명예회장의 충고는 왜 제때 받아들여지지 않았을까.
<뉴스포스트>는 ‘영일만 신화’를 이룬 박태준 리더십과 이구택 리더십의 비교를 통해 ‘글로벌 포스코’의 현주소를 진단한다.


 

 

삼성그룹 고 이병철 회장은 그의 호암자전에서 “창업보다는 수성”이라고 갈파하고 기업의 수명을 ‘50년이 최대 고비’라고 적시했다. 기업이 50년을 넘기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다.
포스코는 올해 창립 40주년을 맞았다. 고 이병철 회장이 언급한 기업 사활 주기에서 정확히 10년 남은 것이다. 그렇다면 포스코는 10년 후에도 건재할 수 있을 것인가.
포스코는 지금까지는 눈부신 성장가도를 달려왔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포스코가 지난 40년간 생산한 철강재는 후판 6925만톤, 열연 2억1376만톤, 냉연 1억 3384만톤, 선재 3936만톤, 스테인리스 1941만톤 등 총 5억 5085만톤으로 중형차를 기준으로 환산하면 약 5억 8000여만대를 생산할 수 있는 양이다.


포스코는 또 정부가 출자한 2205억원도 2000년 민영화 될 때까지 총 3조 8899억원을 갚았다. 1988년에는 국민주 1호로 주식을 공개했고, 1994년에는 국내 최초로 뉴욕 증시에 주식을 상장했다. 이후 95년에는 런던 증시, 2005년에는 도쿄증시 등 세계 3대 주식시장에 상장됐다. 회사 창립 당시 16억원에 불과했던 자산 규모는 지난해 약 30조 5천억으로 늘었으며 매출액만 해도 22조원이 넘는다. 조강능력은 세계 4위다.

 

인도 진출 3년 지나도록 착공조차 못해

 

이렇듯 외형상으로만 보면 포스코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향후 사정은 달라질 수 있다. 최근 세계 철강업계의 상황이 큰 틀에서 지각변동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철강업계는 지난 수년간 철강업체들간에 몸집 불리기를 위한 치열한 인수 합병 전쟁이 벌였다. 이 과정에서 인도의 철강왕 락시미. N. 미탈 회장은 세계 2위의 아르셀로를 인수합병하는데 성공, 세계 최강의 철강업체로 발돋움한다. 이전까지 미탈 회장은 크고 작은 철강업체들을 M&A해오며 끊임없이 몸집을 불려왔다.

 

 문제는 상대는 이렇게 몸집을 불리고 있었으나 포스코는 M&A 통한 성장 동력 확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세계 철강업계는 미탈 회장이 좌지우지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현재 아르셀로 미탈그룹의 조강 능력은 1억 1644만톤으로 신일본제철 JFE(일본제철) 포스코를 합친 것보다 많다.


이구택 회장은 여느 재벌 총수와 똑같이 ‘글로벌 경영’을 화두로 주창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해외 경영과 관련해 뚜렷하게 내세울만한 성과가 없다. 오히려 인도 및 베트남 해외공장 건설의 경우, 암초를 만나 낙관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태다.

 

 

박태준 명예회장 “스톡옵션 밝히는 임원 나가라” 질책
원자재가 폭등 속 세계철강업계 패러다임 빠르게 변화

 


인도의 경우, 진출 3년이 지났지만 아직 착공조차 못한 상태다. 포스코가 공장부지로 선정한 우리사주 고빈드푸르 마을에서 제철소 건설 찬반이 엇갈려 주민간 충돌로 1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건은 이구택 회장이 추진해온 인도 포스코 사업의 험난한 앞날을 예고한다. 가장 큰 문제는 용지 매입으로, 국유지 매입은 여태까지 인도 당국의 허가가 나지 않은 상태이며 민간 용지도 주민 저항이 워낙 거세 매입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포스코 측은 “오리사주 철광석 광구 채굴 허가가 이르면 올래 말, 늦어도 내년에는 날 것이다. 이에 따라 올해 내 항만과 기반시설 조성 등 1차 착공을 할 계획이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계획대로 될지는 미지수다.


배트남 사업 역시 포스코가 글로벌 전략의 일환으로 적극 추진 중이나 여의치 않다. 투자를 약속한 국영기업이 국내 경제상황을 이유로 발을 빼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구택 회장의 글로벌 전략이 계속해서 차질을 빚을 경우, 외국계가 주요 주주들인 포스코의 지분 분포상, 이 회장에 대한 지지가 질책으로 바뀔 수 있다.
한편 노무현 정권과 달리 새정부 들어서면서 ‘이구택 포스코’ 체제에 비판적인 시각도 나오는 젓도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새정부 들어 청와대 및 경제부처 인사들 가운데는 앞서 해외 경영 부진 등의 이유를 들어 이구택 회장의 경영 능력에 대해 비판적인 이도 적지 않다. 이구택 회장에 대해 회의적인 여권 인사들 중에는 이 회장의 ‘친노적 성향’을 거론하기도 한다. 노무현 정권 시절, 이구택 회장은 권력 핵심부의 인사들과 원만한 관계를 맺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일례로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 등 노정권 실세와 이 회장은 서로 가까운 사이라는 소문이 재계 및 포스코 주변에서 흘러나왔다.

 

 


물론 이런 소문은 확인되지 않은 루머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정부 들어서면서 이구택 리더십에 대해 일부 회의적인 시각이 언론 등에 비치는 것은 사실이다. 지난해 연임에는 성공했지만 2년 후 이구택 회장의 미래는 알 수 없다는 말이 나도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올 1월에 행한 박태준 명예회장의 발언도 포스코 경영진을 긴장시켰다. 박 명예회장은 지난 1월 모 경제지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포스코의 스톡옵션제로 떼돈을 번 임원은 당장 사라져야 한다. 아직도 스톡옵션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임원이 있다면 당장 자기 발로 그만둬야 할 것이고, 또 그런 자가 눈에 띈다면 가만두지 않겠다.“
포스코 스톡옵션의 가장 큰 수혜자는 이구택회장이다. 따라서 박 명예회장의 이 날 발언은 이구택회장을 겨냥한 경고성 발언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포스코 측은 “포스코는 이제 민영화된 기업이며 박태준 명예회장의 개인 기업은 더더욱 아니다”며 평가 절하했다. 외국 유명기업의 사례를 봐도 성공한 CEO가 회사에 큰 이익을 달성시켜 스톡옵션을 받는 건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여기에는 CEO관의 차이도 있다. 박 명예회장은 포스코=국가중추기업으로 여기며 개인의 이익보다는 국가 발전과 맥락을 같이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이구택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은 ‘글로벌화하는 CEO'로서 전혀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포스코가 외국인 주주에게 막대한 배당금을 주는 것에 대해서도 갑론을박이 있다. ▶이구택 회장이 지금처럼 많은 이익을 내 외국인 투자자들을 계속 유치하는 것이 옳다. ▶매년 포스코를 통해 막대한 외화가 빠져나간다. 지금처럼 경제가 어려운 때 배당금을 국내 투자금으로 돌려 국민기업으로서의 소임을 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등이 논란의 핵심이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주주총회를 의식해야 하는 이구택회장으로서는 외국인 대주주를 무시할 수 없는 형편이다. 실제로 외국인 주주들은 이 회장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으며 이 덕택에 이 회장은 포스코의 내부 장악력을 높일 수 있었다.

 

박태준 리더십과 이구택 리더십 차이

 

“철은 곧 국가다. 우리는 철강산업을 통해 국가기간산업을 육성시키고 국부를 창출할 수 있다.”
“실패하면 민족사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만큼 우리 모두 오른쪽으로 돌아 영일만에 빠져 죽자”
위의 발언은 박태준 명예회장이 포스코를 건설할 때 마르고 닳도록 한 말이다. 박 회장의 리더십은 한마디로 ‘우향우 정신’과 ‘앞을 내다보는 통찰력’으로 상징된다. 반면 이구택 리더십은 ‘윤리로 무장한 디지털 경영’으로 상징된다.


두 사람 모두 CEO로서 포스코 발전에 크게 기여한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포스코 주변에서는 창업 세대에는 그 당시에 필요한 리더십이 있었고, 지금은 보다 글로벌화된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글로벌화를 강조하는 이들은 아직도 포스코 내에서 만만찮은 박태준계를 의식한 발언일 수 있다.

 

 반면 이구택체제에 비판적인 인사들은 날로 강화되는 이 회장의 조직 장악력을 들어, 장기집권화 될 시 동맥경화 가능성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어쨌거나 향후 이구택 리더십의 성패는  ‘포스코의 글로벌화’를 일궈낼지 여부에 달려 있다. 하지만 결론은 매우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자원 확보만 해도 포스코 측 홍보 논리로 보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지만 미탈 등 세계 철강 강자들과 비교해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구택 회장은 포스코 창립 40주년 기념식에서 “우리가 투자한 광산에서 나오는 원 재료의 비율을 10년 뒤 30%까지 높이는 것이 목표”라고 밝힌 바 있다. 현재 포스코가 해외에 투자한 광산에서 들여오는 철광석 비율은 15%, 유연탄 비율은 22% 정도 된다.


그렇다면 세게 최고 철강 강자인 미탈그룹을 보자. 미탈은 2012년까지 50억 달러를 추자해 원자재 자급률을 현재의 46%에서 70%까지 늘린다는 계획을 세우고 추진 중이다. 포스코와 비교해보면 확연한 차이가 있다. 문제는 이것이 현실화될 경우, 원자재가가 지금처럼 계속해서 폭등하면 수출하는 철강 가격 면에서도 포스코는 경쟁력이 현저히 약화될 것이다. 미탈그룹은 요즘 자신을 철강회사로 부르지 않고 광산그룹으로 불러달라고 요청한다. 세계 철강업계가, 수년 간 벌여온 M&A 전쟁에서 이제는 자원 확보전으로 철강산업의 패러다임이 통째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박태준은 이를 일찌감치 간파했다. 그래서 값이 쌀 때 광산을 사 둬라고 거듭 충고했다.
‘글로벌 포스코’는 구호에 그치고 말 것인가. JFE, 신일본제철을 따라잡고 아르셀로 미탈과 맞먹는 세계 최강의 철강그룹으로 발전할 것인가. 이구택 리더십은 일정부분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아 보인다.   (다음호에 계속)

저작권자 © 뉴스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