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법무부 공조에 또 허점… 살인범 5일간 도주
전자발찌 도입 5년째, 철저한 관리 및 운영 필요

[뉴스포스트=권정두 기자] 최근 영주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은 전자발찌를 착용한 남성이 저지른 끔찍한 범죄였다. 하지만 경찰과 법무부는 공조에 허점을 노출하며 조기 검거 기회를 허무하게 날렸다. 피의자는 무려 5일간 도주행각을 벌였다. 다행히 또 다른 범죄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아찔한 순간이었다. 전자발찌 제도는 어느덧 도입 5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그동안 재범률을 낮추는 제 역할은 충분히 했지만, 관리 부실 등 허점을 노출한 것도 사실이다. 최근에는 전자발찌 착용자의 재범률도 높아지고 있어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14일 밤 경북 영주경찰서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전자발찌를 찬 남성이 사람을 죽인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한 시간 반이 지나서야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이튿날 새벽 3시20분쯤 경북 영주시 영주동 김모(50) 씨의 집 보일러실에서 A씨(여·47)의 시신을 발견했다. A씨는 손발이 묶인 채 흉기에 찔려 숨져있었다.

경찰은 김씨의 행적을 추적했지만 이미 그는 전자발찌를 끊고 도주한 상태였다. 이후 김씨의 행방은 묘연해졌고, 경찰은 수배전단을 돌리는 등 공개수사로 전환했다. 결국 김씨는 도주 닷새만인 지난 20일 영주의 한 야산에서 검거됐다.

경찰 조사에서 그는 한 달 전부터 동거를 해 온 A씨가 자신을 무시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김씨는 특수강간죄로 복역하고 지난 2월 출소한 상태였다. 출소한 지 불과 6개월 만에 또 다시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경찰과 법무부의 ‘엇박자’
피의자는 유유히 도주

경찰과 법무부는 이번 사건에서 또 다시 허점을 드러냈다. 원활한 공조가 이뤄지지 않아 조기 검거 기회를 놓친 것이다.

경찰이 뒤늦게 법무부 중앙관제센터로부터 김씨의 소재를 확인한 것은 지난 15일 0시50분쯤이었다.

이후 중앙관제센터는 1시15분쯤 김씨가 출입제한지역인 어린이보호구역에 들어간 것을 확인하고 김씨와 통화를 했다. 당시 김씨는 “전자발찌 발신기 충전기를 찾고 있다”며 태연하게 거짓말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중앙관제센터는 이 같은 내용을 경찰에 통보하지 않았다. 그 사이 김씨는 인근에 전자발찌를 버리고 유유히 사라졌고, 5일 동안이나 도주행각을 벌였다. 다행히 추가범죄는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지만, 인근 주민들은 물론 국민 모두가 불안에 떨어야 했다.

경찰과 법무부의 ‘엇박자’는 처음이 아니다. 지난 5월 수원에서는 경찰이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하고도 성폭행을 방관해 큰 지탄을 받았는데, 이때도 법무부와의 공조 실패가 원인이었다.

당시 경찰은 “손님 집에 들어간 출장 마사지 여성의 연락이 끊겼다”는 신고를 받고 즉시 현장에 출동했다. 하지만 창문 틈으로 확인한 두 사람의 모습이 자연스러웠다는 이유로 검거에 나서지 않고 있다가 피해 여성이 밖으로 나와 “성폭행을 당했다”고 말한 뒤에야 피의자를 검거했다.

심지어 경찰은 피의자 임모(25) 씨를 검거한 뒤에야 그가 전자발찌를 착용한 사실을 확인했다. 게다가 임씨는 보호관찰 대상자의 준수 의무를 상습적으로 위반한 ‘우범 대상’이었다. 만약 경찰이 임씨의 성범죄기록을 미리 조회했다면, 조기에 피의자를 검거하고 피해도 줄일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후 경찰과 법무부는 지난 6월부터 전자발찌 관리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해왔다. 성범죄를 비롯한 각종 범죄 발생 시 초동대응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늘어만 가는 ‘전자발찌 범죄’

하지만 이번에 영주에서 또 다시 경찰과 법무부의 허술한 공조가 드러나자 거센 비판과 함께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2008년 9년 도입된 전자발찌 제도는 처음엔 성범죄자만을 대상으로 했지만, 이후 살인범이나 미성년자 유괴범 등으로 확대됐다. 현재 전자발찌 착용자의 수는 1,000여명가량이다.

전자발찌 제도의 주목적은 재범률을 낮추는 데 있다. 통계를 통해서도 전자발찌를 착용한 이들의 재범률은 일반 전과자에 비해 훨씬 낮게 나타난다. 제 역할은 충분히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전자발찌 착용자의 범죄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고, 이에 대한 대응이 적절히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자발찌 착용자의 재범률은 2008년 0.5%, 2010년 0.9%에서 2011년과 2012년에는 각각 1.6%와 2.1%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실제로 영주와 수원에서 발생한 사건 외에도 최근 전자발찌 착용자의 범죄는 잇따르고 있다.

태안에서는 전자발찌를 착용한 황모(42) 씨가 이웃주민 2명을 흉기로 위협해 성폭행 하려다 주민들에 의해 붙잡히는 일이 지난 17일 발생했다.

지난 21일 헤어진 여자친구를 스토킹하며 협박과 폭력을 일삼다 경찰에 붙잡힌 강모(38) 씨 역시 전자발찌를 착용하고 있었다.

또한, 지난해 많은 국민들을 분노케 했던 ‘중곡동 살인사건’의 서모(42) 씨도 전자발찌를 착용한 채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불안한 국민들…
대책마련 촉구 목소리 커져

물론 전자발찌가 모든 재범을 근절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작 제도를 도입해놓고도 허술한 운영으로 효과를 누리지 못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현재 전자발찌 착용자를 관리하는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때문에 전자발찌 착용자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관리를 따돌리고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상황이다.

또한 경찰과 법무부의 공조체제도 아직 원활하지 못하다. 적어도 전자발찌 착용자가 범행을 저질렀을 경우 신속하게 소재를 파악하고 검거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 경찰과 법무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공조 강화 등의 대책을 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잇따라 전자발찌 착용자의 범죄가 발생한 것은 물론 공조의 허점마저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관계당국은 전자발찌 착용자의 범죄 징후를 사전에 알려주는 ‘지능형 전자발찌 시스템’을 오는 2016년까지 도입할 방침이다. 이 시스템은 전자발찌 착용자의 범행수법과 이동경로 등을 분석해 범죄 발생을 사전에 차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국민들은 여전히 불안에 떨고 있다. 아무리 좋은 제도와 시스템을 도입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원활하게 운영하지 못한다면 ‘무용지물’이라는 지적이다.

더불어 전자발찌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재범을 막을 수 있는 다양한 방안과 제도들이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전자발찌는 절대로 ‘액세서리’가 아니다. 적지 않은 비용과 인력으로 운영되는 만큼 철저한 관리를 통해 100%의 효과를 누려야 할 것이다. 특히,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되는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관계당국의 신속한 대책마련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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