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계 자금 대거 이탈시, 제2의 환란 우려

산교타임즈 엄재한 특파원 “유입된 엔 캐리 규모 파악해야”
97년 이후 무분별하게 유입된 외화 자금에서 거품 생겨

 

 

지난 11일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1% 포인트 인하한다고 밝혔다. 금리 인하에 따라 국내에 유입된 외화 자금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최근 ‘3월 위기설’로 거론됐던 일본계 자금의 동향이 궁금하다. 일본계 자금 회수로부터 비롯된다는 ‘3월 위기설’에 대해 정부와 전문가들은 “우려할 만큼 일본 자금에 대한 의존도가 높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위기설이 지속적으로 불거지고 있는 금융시장 전반의 불안감과 일본계 자금의 실체를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성도 제기됐다. 이른 바 ‘엔 캐리 트레이드’로 일컬어지는 일본계 자금의 실체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 과연 엔 캐리 트레이드는 무엇이고, 어떤 문제점을 갖고 있는지 한국주재 일본 특파원 등을 상대로 다각적으로 취재했다.

 

 

1997년경부터 일본의 안정적 자금이 금리가 낮은 본국을 떠나 세계 시장에 투입되기 시작하며 <뉴스포스트>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여 년간 세계에 뿌려진 엔화가 120조 엔에 달하고 있다. 높은 이자율이 보장되는 사회로 흘러 들어가는 엔 캐리 자금의 속성 상 2007년 기준 8%에까지 육박했던 한국에 상당 부분 유입됐을 가능성이 높아 일각에서는 2~30조 엔까지도 추산하고 있다. 엔 캐리 트레이드는 1% 미만의 초저리 엔을 연리 2.5%로 외국계펀드사 등이 대부해 국내시중은행에 살포한 것으로 이 과정에서 달러로 변환돼 그 실체를 파악하기 어렵다. 민간경제연구소는 엔 캐리 자금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수조에서 수십조엔까지 견해차이를 보이고 있으나 실제 엔 캐리 자금의 존재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긍정하고 있는 추세다. 문제는 이 같은 자금의 정확한 규모나 경로가 파악되지 않고 있다는 것.
2006년 자본수지를 보면 직접투자수지 부문이 34.8억 달러, 증권투자수지 부문이 225.4억 달러로 적자 폭을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전체 규모 면에서는 186.1억 달러 흑자 상태임을 알 수 있다. 그 외 투자수지 476.7억 달러가 흑자 규모를 떠받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그 외 투자' 부분을 엔 캐리 자금으로 보고 있다. 만약 이 엔 캐리 자금이 자본유출의 급물살을 타게 되면 한국의 외환 준비고가 현재의 2천억 달러 대에서 800억 달러 대까지 급감할 것이라는 전망도 불거지고 있는 만큼 주의가 요구된다.
최근 다수의 자영업자들이 무담보에 이율이 낮은 (4~5%대) 엔화 대출을 상당량 받아 쓴 점을 미루어 볼 때 자칫 그 규모에 따라서는 자영업 시장의 몰락은 물론 개인 대출자들의 심각한 파탄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하지만 최근 거론된 ‘3월 위기설’ 식의 특정 기간 엔화가 본국으로 소환될 것이라는 판단은 성급한 감이 있다. 근본적으로 높은 금리를 찾아 한국에 들어온 엔화가 한국을 빠져나가는 가장 큰 이유는 ‘더 이상 이전의 수익과 비견할 만한 수익을 낼 수 없는 낮은 금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엔캐리 트레이드 실체 파악해야

 

경제 전문지 <산교타임즈>의 엄재한 기자는 “한화 가치가 하락하면서 빌려 쓴 자금이 터무니없이 불어나 상환 부담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지난 달 무렵 정부 당국에 항의하기도 했다”고 전하며 “하지만 엔 캐리 자금의 경우 국내에서는 정확히 집계가 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엔 캐리 트레이드 현상에 꾸준히 천착해 왔다는 엄 기자는 “당국은 국내에 확인되는 엔 규모가 작고, 피해를 봤다는 사람들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겠지만 실제로 일본에서는 빠져나간 돈이 있고 그 자금이 한국에 얼마나 유입됐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현상은 지난 97년 IMF 위기 이후 외화 유입의 문턱이 낮아져 출처가 불분명한 각종 자금이 유입된 데서부터 비롯되고 있다.
한 외환 전문가는 “소위 좌파정권 10년 간 오히려 외화 유입의 규제가 더욱 낮아졌다”며 “그 사이사이에 낀 거품들이 문제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출처를 파악할 수 없는 자금들이 들고 나기를 반복하며 금융시장의 체감 위기는 증폭되고 있다. 수치상으로 집계되지 않지만 실질적으로는 불안정한 자금이 거듭 유포되는 위기설을 등에 업은 채 실제 위기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전문가는 “현재 경제팀이 이 같은 위기를 인정하고 국민의 신뢰를 획득한 가운데 해법을 찾아야 한다”면서도 “전 정권에 책임을 떠넘긴다는 의혹을 살 수 있고 자칫 공포심이 기정사실화 되면서 금융시장의 패닉상태를 불러올 수 있어 결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리 금융 당국이 세계 경제위기의 시발점인 미국 금융시장의 상황을 주시하면서 여진이 잦아들 시기에 대안을 내놓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이 같은 시나리오는 현재 경제 정책 결정 당국이 엔 캐리 등 국내 유입 해외 자본의 성격과 방향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을 때 가능하다.

 

일본 금융권 자금 회수 땐 파국 올 수도

 

기획재정부는 지난 주 “외국인이 국내 채권에 투자한 총액 90.7조 원 중 일본계 채권 투자자금은 전체 상장채권에 0.9%에 불과하며 주식시장의 경우에도 11월 말 기준으로 전체 시가총액 596조 원 중 3조 4,247억 원으로 0.6%에 그친다”며 “정부 정책에 대한 책임있는 비판과 근거없는 소문의 유포는 구별되어야 한다”고 소문의 확대 재생산을 경계했다.
각종 경제 전문가들 또한 ‘위기설’ 자체에 대해 “언급할 가치를 못 느낀다”고 일축했다. K 경제연구소의 임원은 “위기설이라면 입에 담고 싶지도 않다”며 “도대체 그 위기설의 정체가 무엇이냐”고 되물었다.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의 여경훈 연구원 또한 “특정 시기에 대해 위기를 언급하는 것에 대해 공감하지 않는다”며 “실제 우리나라 자금의 일본 의존율이 높지 않다”고 설명했다.
‘3월 위기설’은 세계 경제 위기의 여파가 몰아닥치기 전에도 자주 거론됐던 문제로 일본 금융권이 3월 결산을 맞춰 자금을 회수할 경우 급격한 외화 이탈로 파국을 불러올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 같은 극단적인 결론은 아직까지 큰 힘을 얻고 있지는 못하다. 국내에 유입된 엔화 자금의 규모나, 향방이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일시적인 ‘위기설’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거시적인 경제 흐름에 주의하면서 시장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이 과정에서 시장과 정부 정책 당국의 신뢰도 회복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도 지적한다. 경제개혁연대 김종수 대표는 최근 가진 라디오 인터뷰에서 “정책결정자들이 위기관리보다는 감세나 규제완화 등 국정 아젠다에 더욱 더 몰두하면서 시장에 안정과 성장이라는 두 가지 상충하는 목표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위기극복을 위한 안정화 정책에 최우선의 정책목표를 준다는 걸 시장에 알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새사연의 여 연구원은  “정부가 지금의 시기가 전반적인 위기 상황에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며 “위기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 어떤 맥락의 신호인지 알아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특히 여 연구원은 “사실상 3월 들어 실물경제 위기는 더욱 악화될 것인데 이에 대한 전반적으로 문제의식을 같이 하는 가운데 논의가 있어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엄재한 기자는 “우리 경제가 펜더멘탈이 강하다는 주장은 외신들의 불신을 키우는 원인이 될 수 있다”며 “펜더멘털즈는 경제 뿐 아니라 정치, 사회 전반을 일컫는 말로 우리처럼 대외의존도가 심하고, 가계부채가 국민총소득의 1/3을 넘고, 남북분단이라는 불안정 요소를 안고 있는 사회가 펜더멘털이 강하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엄 기자는 이어 “현재의 상황을 직시하고 위기를 공감하는 상황에서 해법을 모색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며 “정부가 경제개혁의 의지가 있다는 것을 보이는 가운데 구체적인 방안들을 찾아야 할 것”으로 전망했다.

 

 

저작권자 © 뉴스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