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스팅 보트’ 소액주주들 표로 완승한 형제
분쟁 끝, 화해·내부통합 시작…갈 길 먼 한미

[뉴스포스트=오진실 기자] 한미-OCI그룹과 통합을 두고 일어났던 모녀 대 형제간 경영권 분쟁이 막을 내렸다. 고 임성기 한미약품 창업주의 장·차남이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에 선임되며 통합을 반대하는 측이 이사회 과반을 차지하게 됐다. 

(사진=한미약품)
(사진=한미약품)

29일 한미약품그룹에 따르면 지난 28일 화성시 수원과학대 신텍스에서 열린 한미사이언스 주주총회이 개최됐다. 이 자리에서 한미약품그룹과 OCI그룹 통합에 반대하는 장·차남 측이 추천한 이사진 5명의 선임안건이 모두 통과됐다.

임종윤·종훈 형제는 둘 다 52% 내외 찬성표를 얻으며 출석 의결권 수 과반의 찬성표를 받아 사내이사 선임에 성공했다. 이들 형제가 추천한 권규찬 디엑스앤브이엑스 대표이사와 배보경 고려대 경영대 교수도 51.8%의 찬성표를 얻어 기타비상무이사에 이름을 올렸다. 사봉관 변호사는 52.2%의 찬성표를 사외이사가 됐다.

반면, 통합에 찬성한 한미약품그룹 송영숙 회장과 임주현 부회장 측이 제안한 6명의 후보의 이사 선임 안건은 모두 부결됐다. 한미사이언스 이사진 9명 중 통합 반대 측 인사가 5명이 되며 과반을 차지하게 됐다. 형제의 이사회 진입에 따라 OCI그룹 통합은 무산됐다.

이날 승부는 소액주주들이 갈랐다. 주총을 앞두고 통합 찬성(42.66%)과 반대(40.57%) 측 우호지분 차이는 2.1%포인트였다. 최대주주인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은 임종윤·종훈 전 사장 측에 섰고, 국민연금이 송 회장과 임 부회장 편에 섰다. 결국 ‘캐스팅 보트’는 16.77%의 소액주주였다. 양측은 표를 얻기 위해 총력전을 펼쳤다.

주총 결과에 임종윤 전 사장은 “주주들에게 감사하다”며 “한미약품을 정상화하는 데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OCI홀딩스 측도 입장문을 통해 “주주분들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통합 절차는 중단된다”며 “앞으로 한미약품그룹의 발전을 바라겠다”고 밝혔다.

분쟁 끝, 내부 통합은 시작

주총 당일까지 치열했던 분쟁이 모두 끝났으나 가족 간의 갈등 봉합과 사내 분위기 통합은 과제로 남았다. 기존 이사회에 송 회장과 임 부회장의 임기가 남아있는 만큼 형제 측의 이사회와의 원만한 조율이 필요한 상황이다.

한미약품 임종윤, 임종훈 사장 기자간담회 (사진=뉴시스)
한미약품 임종윤, 임종훈 사장 기자간담회 (사진=뉴시스)

주총 직후 임종윤 전 사장은 “어머니와 여동생은 이번 계기로 크게 실망하셨을 수도 있지만, 저는 같이 가기를 원한다”며 갈등 봉합의 의지를 내비쳤다.

임 부회장도 지난 25일 한미약품 본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번 딜을 진행하며 가족 간 화해와 봉합도 내가 이뤄내야 하는 책임이라고 느꼈다”며 “(형제 측과) 화해를 시도하겠다”고 말했다.

송 회장은 29일 그룹사 게시판에 “지난 두 달여간 소란스러웠던 회사 안팎을 묵묵히 지켜보며 맡은 바 소임을 다해준 임직원께 감사한다”며 “다수의 새 이사진이 합류할 예정이어서 임직원 여러분이 다소 혼란스러워 할 것이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어 “한미 임직원과 대주주 가족 모두 합심하고 협력하는 모습을 꼭 만들어 가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한미약품을 떠난 주요 임원들의 복귀 여부에도 관심이 쏠린다. 형제가 이사회에 진입한 만큼 보직 복귀 후 적극적인 리더십으로 통솔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고 임성기 회장의 타계 후 사모펀드 운용사 라데팡스파트너스가 경영자문을 시작한 2022년 8월부터 23명 이상의 주요 인력들이 회사를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임종윤 사장은 경영권을 확보할 경우 한미약품의 성장을 이끌었던 임원들을 다시 불러 모으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한편 당초 이번 분쟁은 막대한 상속세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됐다는 중론이다. 지난 2020년 8월 선대회장의 타계 후 배우자 송 회장과 자녀 3명이 1조원 규모의 주식을 상속받았다. 이때 5400억원의 상속세를 부과받았다.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한미그룹은 지난해 사모펀드 운용사 라데팡스파트너스와 한미사이언스 지분 11.8%를 약 3200억원에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으나, 함께 참여하기로 한 새마을금고가 뱅크런을 겪으며 투자를 철회했다. 이어 지난 1일 OCI그룹과 7703억원 규모의 통합계약으로 수천억원에 이르는 상속세 납부를 위한 재원을 마련할 예정이었으나 이번 주총으로 백지화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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