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심(李心)에 고개숙인 남자들

홍준표 원내대표 등 일부 의원 청와대에 반발
청와대, ‘先 진상규명론’ 내세워 반발 무력화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부터 티격태격 해온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또 부딪쳤다. 이번엔 철거민 농성 진압과정에서 발생한 ‘용산 참사’의 수습책에 대한 견해 차이 때문이다.


 갈등의 핵심은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의 거취 문제다. 청와대는 은근히 ‘내정 철회 불가’ 입장을 밝히고 있다. 반면, 한나라당에선 부분적으로 이견이 있지만 대체적인 기류는 ‘내정 철회 불가피’ 쪽으로 흐르고 있다.

 


 용산참사 해법을 놓고 당·청이 갈등을 겪는 것은 서로 입장이 다르고 근원적인 인식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용산 사건의 책임을 지워 김 내정자의 옷을 벗길 경우 경찰 조직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이명박 대통령의 용인술에도 흠집이 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정당한(?) 공권력 행사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이고, 경찰 측에서도 희생자가 나왔기 때문에 김 내정자에게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논리다.


 물론 청와대가 김 내정자를 감싸는 이유를 다른 곳에서 찾는 분석도 있다. 경찰청장 인사 때부터 논란을 일으킨 대로 김 내정자가 정권 실세들과 친분이 두텁기 때문에 청와대가 ‘김석기 구하기’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는 견해다.


 김 내정자는 이명박 대통령과 같은 경북 포항 출신으로 현 정부 실세인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의 대구 대륜고등학교 후배다. 이 때문에 인선 과정에서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이 개입했다고 해서 ‘형님 인사’ 시비가 일어났었다.


 청와대는 현재 “용산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 결과를 지켜본 뒤 김 내정자의 진퇴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검찰 수사 결과는 이번 주 중 발표될 예정이다. 하지만 청와대가 이미 ‘김석기 경찰청장 임명 강행’ 방침을 세웠다는 징후는 곳곳에서 감지된다.


 특히 1월29일 어청수 경찰청장이 공식 퇴임하자마자 곧바로 치안정감급 인사를 발표한 것은 ‘김석기 청장 체제’를 굳히기 위한 수순이란 해석이 가능하다.

 

 김 내정자가 사퇴할 경우 경찰청장 후보가 될 수 있는 임재식 경찰청 차장과 한진희 경찰대학장, 김도식 경기경찰청장 등 치안정감 3명을 모두 명예퇴직시킴으로써 아예  ‘대안’을 없애버렸다.


 보기에 따라선 신임 치안정감들이 대안이 될 수 있지만 이 경우 치안감이 불과 며칠 사이에 두 계급을 건너 뛰어 치안총감이 돼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적지 않다.


 청와대는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경찰의 강경진압보다 철거민의 극렬 저항이 더 문제라고 응답한 결과가 많았다는 점도 은근히 부각시키고 있다.

 

 청와대에 따르면, 언론사와 여론조사 전문기관 7곳 중 6곳의 여론조사에서 그런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경찰의 강경진압이 문제라는 응답이 많은 것은 MBC의 100분 토론 조사(60%) 뿐이었다.


 청와대의 김 내정자 감싸기에는 ‘이심(李心·이명박 대통령의 의중)’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 대통령은 어청수 전 청장이 조계종 총무원장 차량 검문으로 불교계의 사퇴 압박을 받았을 때도 그를 보호한 것으로 알려진다.


 당시 이 대통령은 측근들에게 “촛불시위 주동자 검거라는 정당한 법 집행을 하는 경찰청장을 사퇴시키면 어떻게 공직자들에게 일하라고 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는 후문이다.

 

 이번에도 정당한 공권력 행사 과정에서 나타난 불상사이기 때문에 경찰총수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인식을 가졌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한나라당의 공식 당론도 ‘선(先)진상규명, 후(後)책임추궁’으로 모아진 상태다.

 

특히 청와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박희태 대표가 앞장서서 김석기 내정자 구하기에 가세하고 있다.

 

박 대표는 “사건이 날 때마다 지휘자의 목을 떼어놓고 조사한다는 식의 처리가 옳은지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는 논리를 폈다.


 그러나 당 일각의 입장과 시각은 완전히 다르다.

 

 용산 참사 직후 일부 시민사회단체가 도심에서 규탄 시위를 벌였을 때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잘못 하면 제2의 촛불시위 사태가 발생할 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왔다. 여론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정당의 속성을 그대로 반영한다.


 ‘조기 문책론자’ 중에서도 2월 임시국회에서의 ‘2차 입법전쟁’을 진두지휘 해야 하는 부담을 안은 홍준표 원내대표의 경우 청와대의 ‘선(先) 진상규명론’을 강하게 반박하면서 “먼저 책임지는 사람이 있어야 여론이 숙여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홍 원내대표의 발언 수위가 자꾸 높아지자 1월29일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원내대표 발언 순서가 되자 박 대표가 “홍 원내대표는 말을 아끼겠다고 했으니, 다음은 누가 발언을 하겠느냐”며 발언 기회를 차단해 버리기도 했다.


 당내 소장파의 리더인 남경필 의원도 라디오 인터뷰에서 “가장 좋은 것은 김 내정자가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면 안 되겠다는 판단 하에 정치적 책임을 다하고 자진 사퇴하는 것”이라며 “대통령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심지어 ‘친이’ 계열 초선인 김성태 의원조차 라디오에 출연해 “적어도 현 시점에서 시민과 경찰이 6명이나 사망한 안타까운 사건에 대한 경찰조직의 수장으로서 관리 책임은 져야 한다고”며 ‘선 문책론’을 제기했다. 그는 특히 이명박 대통령의 직접 사과 필요성에 대해서도 “어떤 경우라도 정부나 국민을 대표하는 입장에서 참사에 대해서 무조건 국민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김 의원은 여당 내에서 보기 드문 노동전문가이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할 수 있겠지만 그만큼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청와대의 국민감정을 배제한 일 처리에 불만이 팽배하다.


 이런 상황에서 당·청이 여러모로 얼마나 엇박자를 내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해프닝이 1월30일 발생했다.

 

 이날 오전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행정안전부 장관 인선과 관련, “정치인 입각 문제를 놓고 혼선이 있는 것 같고 자천타천형 보도도 난무하고 있는데 이번에 정치인 입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같은 날 오후 박희태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에게 당 최고의원들의 일치된 의견으로 이달곤 의원을 행안부 장관으로 추천했다”고 밝혔고, 이 대변인은 그 직후 이달곤 행안부 장관 내정 사실을 발표했다.


 머쓱해진 이 대변인이 내놓은 해명은 궁색하게만 들렸다.

 

  “이 의원은 신분만 국회의원이지 평생을 학자로 사신 분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행정전문가로, 국회의원 신분을 갖고 있지만 전문가의 성격이 워낙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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