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 찬성과 5% 반대, 숨은 진실은?

민주노총 “이석채 회장 막후 진두지휘” 주장
KT민주동지회 “·부정투표 있었다” 의혹 제기


지난주 11일 ‘KT-KTF 합병출범식’이 있었다. KT노조가 지난달 17일 임시조합원 총회에서 95% 압도적인 지지로 민주노총 탈퇴를 선언한 후 단일 노조로서의 새출발을 공식 선언한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김구현 KT노동조합 위원장은 민주노총 탈퇴와 관련해 “시대적 요구를 반영하지 못하고 가능성을 제시하지 못하는 비민주적 방식으로 인해 탈퇴 요구 목소리가 높았다. 앞으로 특정단체에 가입하지 않을 것이며, 3만 여명의 조합원들의 힘을 바탕으로 자체적으로 이끌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를 보도하는 언론들은 두 가지 태도를 취하고 있다. KT의 탈퇴를 환영하며 “노동계의 변화를 시사하는 것”이라는 보수언론과 “민주노총을 흔들려는 압박”이라는 진보진영의 논조가 그렇다. 특히 진보진영은 노조 민노총 탈퇴를 두고 ‘회사 측 사주’ ‘부정 투표’ 등을 근거로 들며 문제제기를 본격화해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이석채 회장 등장 후 ‘노조에 대한 사측 개입’ 문제가 번졌을 때마다 되풀이됐던 것처럼, 이번에도 각자 상반되는 주장을 내놓을 뿐 해결될 실마리는 보이지 않고 있다. 그동안 언론과 접촉하지 않았던 KT노조 또한 출범식 직후 “할 말은 이미 다 했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뉴스포스트>는 KT노조와, 노조 내부의 다른 조직 KT전국민주동지회, 민노총의 입장을 취재했다.


KT 노조와 민주노총이 함께 한 역사는 10년이 넘는다. 1995년 11월. 41만여명의 조합원으로 출발한 민주노총에 약 3만여명을 가진 KT노조가 한국노총을 떠나 이에 합류한 것이다. 이후 KT노조는 민주노총의 다양한 투쟁·집회에 함께했다. 2000년도에는 한국통신 인원감축에 대해 명동성당을 점거하는 등, 민주노총의 강력한 투쟁에 앞장서기도 했다.


하지만 2002년 8월. 한국통신의 이름이 KT로 바뀌면서 민영화되었고, 민영화 직후인 2003년 1월 있었던 위원장 선거에서 ‘선(先)교섭, 후(後)투쟁’ 노선을 내세웠던 당시 지재식 후보가 당선되면서 KT노조의 성격이 달라졌다. 정부 차원의 대규모 인력감축에 시달리지 않아도 됐기 때문에 강경대응을 하기 보다는 사측과 대화를 통해 논의하고 협의하는 풍토가 자리 잡은 것이다.


당시 지재식 후보가 당선된 지지율은 60%. 그러나 민주노총과 KT노조 내부의 다른 현장조직 KT민주동지회 소속 노조원들은 ‘어용 노조’라는 이유로 지 후보를 지지하지 않았다.


그 후 2006년 9대 위원장 선거에서 지재식 후보가 재선되었다. 이때도 선거에 사측이 개입됐다는 의혹이 있었다. 지 후보와 함께 후보에 등록한 민주동지회 소속 조정택 후보 측의 주장이었다. 내용은 선거를 앞두고 사측이 인사고과를 목적으로 직원 면담을 진행했고, “회사에 비우호적인 후보를 추천하면 불이익이 따를 것”이라 방해하는 등 선거에 개입했다는 것. 하지만 그때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각 측의 주장만 있었을 뿐 시원히 해결되는 것은 없었다.


연맹차원의 집회·파업에 적극 동참하지 않는 KT노조에 불만을 품었던 민주노총과, 조합원이 원하지 않는 집회·파업을 강요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던 KT노조. 결국 그들은 2005년 민주노총 대의원회의 때 마찰을 빚었다. 민주노총 대의원들이 KT노조 대의원들의 회의장 입장을 가로막았던 것. 그리고 4년이 지난 현재 KT노조는 ‘민주노총 탈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민주노총 “반대세력 음모” 주장

 

몇 언론사에서는 이 결과를 두고 ‘민노총의 위기’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그렇지 않다”는 입장이다. “5년 전부터 탈퇴 노래를 부르던 KT노조가 드디어 민주노총을 탈퇴했다”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KT의 민주노총 탈퇴는 이석채 회장 등장과 함께 예견되어 있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올해 초 낙하산 논란과 함께 취임한 이석채 회장은 KT 경쟁사 SK C&C 사외이사로 재직 중에 있었다. 하지만 ‘2년 이내 경쟁업체나 그 관계사 임직원으로 재직한 경우 이사로 선임할 수 없다’는 KT 정관 개정 후 이 회장이 취임하면서 구설수에 올랐다.”라며 정당성을 평가절하했다.


이관계자는 또 “민주노총의 정치파업에 지쳤다”고 발언한 KT노조를 “수많은 노동자를 모욕하는 행위”라고도 전했다. 민주노총의 정치파업에 한 번도 동참한 일이 없고, 자신들의 내부문제에 대해서도 침묵했던 집단이 할 말이 아니라는 것. 때문에 “그동안 노동운동노선을 포기했던 KT노조는 이념 때문에 탈퇴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민주노총은 그로 인해 충격 받을 일도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KT노조의 탈퇴를 두고 ‘새로운 노동운동의 계기’라 보도하는 언론에도 반감을 표했다. “그렇다면 모든 노조가 KT처럼 되라는 얘기인데, 그건 민주노총이 완전히 죽기를 바라는 마음”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가입·탈퇴가 자유로운 조합이라 KT 탈퇴 여부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지만, 그 배후에 사측의 부당개입 또는 민주노총을 흔들려는 세력의 개입이 있었다면, KT노조 탈퇴를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도전’으로 알고 대응할 것”이라는 게 민주노총의 주장이다.


민노총의 한 간부는 “노동조합의 생명은 자주성과 민주성이다. 이것이 통제된 채 진행된 투표는 노조의 의사결정과정이라고 보기 어렵다. 앞서 제기된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 민주노총은 이를 ‘KT 노동자들의 민주적인 상급단체 결정’이 아니라 ‘사측을 비롯한 민주노조운동 반대 세력의 민주노총 흠집내기’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 방안은 중앙집권위원회 등 의사결정 과정을 통해 결정할 것이다. 실효성은 없겠지만 문제제기 차원에서 KT불매운동과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법적 대응 등이 포함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KT민주동지회 “부정투표 제보 받아”


이 같은 민주노총의 주장 저변에는 KT노조 내에서 조태욱 씨가 의장으로 있는 현장조직 ‘KT민주동지회’의 의문 제기가 반영돼 있다. 이른바 ‘좌파’ ‘진보’ 진영으로 분류되는 조합원들의 모임이다. 민주노총 탈퇴에 찬성한 조합원이 95%라면, 이에 반대한 5% 조합원이 이 조직의 일원인 셈이다.


<뉴스포스트>가 접촉한 민주동지회 한 관계자는 제일먼저 “KT 내부의 비민주성과 불법성·내부비리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며, 하나의 고리를 이루고 있다”고 밝혔다. 사측과 노조 등이 긴밀히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95% 찬성표는 투개표 참관인도 없이 진행되었다. 이것은 사측 개입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제보 받은 이야기라며 말을 이었다.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조합원에게 지사장이 직접 전화해 6시까지 들어오지 말 것을 지시했습니다. 들어오게 되면 사전에 전화를 해달라고도 했고요.” 이 외에도 팀별 줄투표, 찬성 구석 찍기 등를 강요해 조합원 한 사람 한사람을 감시·통제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전국적으로 가장 많이 발생된 부정행위는 투표용지 바꿔치기였다며, 여러차례 제보 받은 사실을 털어놨다. “홍제·신촌지부의 경우 식별이 가능하도록 반대에 기표한 투표용지가 개표 시 사라진 사례도 있었다.. 목포하당지부에서는 반대 기표를 한 조합원 수와 반대투표용지 수가 10여장 정도 차이 난다는 제보를 받았으며 관악지부에서는 접지 않은 10여장의 찬성 투표용지가 뭉치로 발견되기도 했다.”


이어 그는 “조합원이 투개표 전과정을 지켜본 지부에서는 반대표가 30%까지 증가하는 결과도 나타났다”며 이번 투표에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또한 “KT노조와 보수언론이 노동계를 비방하며 새로운 노동운동의 길 모색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내부 조합원 입장에서 볼 때 우스운 일”이라며, KT노조를 ‘사측의 꼭두각시’로 표현하는 등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그는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고용안정이다. 민주노총에서 탈퇴하는 순간 KT노조는 노골적으로 사측의 손과 발이 되어 일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KT노조 “민주노총이 자처한 일”


그러나 KT노조의 입장은 다르다. “지재식 후보 시절부터 이미 노조원들은 무리한 정치적 관심과 과격한 거리투쟁에 지쳐 있었”기 때문에 95% 지지율은 당연한 결과라고 밝혔다.


“KT는 이미 오래전부터 민주노총 내에서 파벌에 가담하지 않는 중립적·합리주의적 노조로 활동해 왔다. 그래서 조직 내에서 늘 ‘어용’이라 불리며 욕을 먹으면서도 우리 나름대로 원칙을 지켜왔다..”
정리하자면 수년 전부터 KT노조 조합원들은 과격한 정치적 투쟁보다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노동운동 방법이 변화되기를 바래왔다는 것이다. 또한 그런 마음들이 모여 민주노총 탈퇴가 가결되었다는 것.


KT노조 관계자는 95%라는 앞도적인 지지율을 얻을 수 있었던 또 한 가지 이유로, 투표 전까지 계속된 민주노총의 태도를 들기도 했다. “민주노총은 지금까지도 KT노조에 대해 보수단체와 사측의 지배 개입설 및 정체성과 자주성을 무시하는 발언을 하고 있어요. 게다가 투표 전날에는 성명서까지 내면서 KT 불매운동 등을 언급 했고요. 그런 민주노총 태도를 보면서 조합원들이 분노한 결과이다.”라고 전했다.


이어 민주노총과 KT민주동지회가 제기하는 회사 등 외부세력의 투표개입에 대해서는 전면 부정했다. 또한 “무조건적인 갈등이 아닌 선 교섭 후 투쟁이라는 노선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라고 전했다.

 

 


 

KT, 제3의 노동단체 결성하나
민주노총 위기론 속 내년 복수노조 허용시 가능성

 

한편 KT의 민주노총 탈퇴와 함께 일각에서는 민주노총 위기론이 대두되고 있다. 올해만 해도 인천지하철, 인천국제공항공사 등 공공부문 노조가 줄줄이 민주노총을 탈퇴하고 있기 때문이다. 5,900여명의 조합원이 가입돼 있는 서울도시철도공사와 9,000여명의 조합원이 가입된 서울메트로도 민주노총 탈퇴에 대한 찬반투표를 진행할 예정인 것으로도 알려졌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문제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가운데, 민주노총의 미래를 바라보는 사회 각계각층의 해석도 다양하다.


KT노조 부위원장을 지냈지만 지난 2006년 노조로부터 제명된 이해관 씨는 지난주, 기고를 통해 “민주노총은 KT노조 탈퇴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보는 자신감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어 ‘“노동자가 늘 진보적이라면 노동운동은 불필요할지 모른다. 그 누구도 지금의 한국 정규직 노동자들의 상대적 보수화를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에 기반을 둔 모든 노조가 어용화된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반면에 민주노총이 새로운 노동운동 방식을 택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이장원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본부장은 “민주노총이 과거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운동방향이 현장 중심보다 정치투쟁 노선이다 보니 현실 적합성이 떨어지고 있다”며 “무조건 밀어붙이기 식 요구가 아니라 타협 가능한 노선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내년부터는 1997년 노동법 개정 당시 도입됐지만 노사 양측의 반발로 13년간 유예됐던 복수노조가 허용될 예정이다. 그렇게 노조는 민주노총, 한국노총 등 기존의 상급 단체와 갈라서지 않고도 새로운 상급단체에 가입할 수 있게 된다. 이에 따라 “특정 세력에 기대지 않고 자체의 힘과 의지로 개척해나갈 것”이라고 밝힌 KT노조가 제3노동단체를 결성할 수도 있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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