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원식 현대증권 지점장

우리 인간은 여타 동물들과 달리 스스로 대단히 합리적이며 이성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사실 우리의 착각이고 환상일 뿐이다. 인간의 기억력만 해도 지극히 편협하고 주관적이다. 이성에 바탕했다고 자부하는 판단력 역시 지극히 취약하고 외부의 영향에 쉽게 휘둘리는 빈약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기억력이 마치 컴퓨터의 그것처럼 특정 주소에 저장되어 있다가 필요할 경우 즉각 호출되는 줄로 알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아서 뇌 한구석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방치되어 있기가 십상이다. 방금까지도 사용한 물건을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하지 못해 허둥대거나 자동차 뒷자리에 깜빡 아이를 놓아두고 쇼핑에 몰두하는 엄마도 있고 심한 경우 비행기의 랜딩기어를 내리지도 않고 착륙을 시도하는 비행사까지도 있는 형편이다. 인간의 기억력은 그다지 신뢰할만하지 않다.

명징한 판단이라고 자부하는 것도 심리학자들이 이미 과학적 실험을 통하여 입증했듯 확증편향 같은 불합리한 토대 위에 놓여있는 결함 많은 것일 뿐이다. 확증편향은 스스로 좋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불리한 증거가 나타나도 무시하고 유리한 증거가 나타나면 더욱 확대해서 수용하는 경향이다. 이러한 불합리하고 미흡한 우리의 사고체계 때문에 군인들은 명령을 복창하고 비행사는 점검표를 들고 있으며 사소한 일들은 체계화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투자에 임할 때도 우리는 우리가 인간으로서의 가진 약점 특히 기억력과 판단력에 대한 스스로의 한계를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기억은 자기 편리한 쪽으로 왜곡되어 보관되어 있으며 우리의 판단은 자신도 모르게 자기 유리한 쪽으로 편향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왜곡된 기억과 편향된 판단은 우리가 인간이기에 갖고 있는 어쩔 도리없는 불합리한 점이다.

주식투자는 끊임없는 선택과 결정의 과정이다. 매수와 매도를 결정해야 하고 적절한 시점을 판단해야 하는 과정인 것이다. 그 선택과 결정의 결과는 전적으로 자신의 책임이며 스스로 감당해야만 하는 몫인 것이다. 그런데 그 선택과 결정을 뒷받침할 우리의 기억력과 판단력은 온통 불합리하고 어리숙한 것이다. 세상에 이처럼 황당한 일이 없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시스템 트레이딩 같은 기계적 기법을 활용해보기도 하지만 실제 수익달성은 사실 요원하다. 이론적으로는 시스템 트레이딩은 반박의 여지없이 완벽하다. 적정 수익률에 도달한 즉시 매도하고 수익률이 답보할 경우에는 과감하게 손절하는 기계적인 투자법은 훌륭해 보인다. 하지만 달리는 말에 올라타라는 격언처럼 모멘텀 국면에서 더욱 많은 수익을 달성할 수 있을 때 시스템 트레이딩은 매도로 일관한다. 또한 하락 시 주식은 공포심리가 끼어들어 실제 가치보다 더욱 하락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때 매매포인트를 놓치기 십상이다. 요컨대 시스템 트레이딩은 적게 벌고 많이 까먹는 방법일 뿐이며 한동안 기세를 떨치던 시스템 트레이딩이 이제 좀 잠잠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주식투자의 왕도는 없다. 다만 우리의 기억력과 판단력이 그다지 신뢰할만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기억보다는 자료에 의하여 그리고 편향되지 않는 겸손한 자세로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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