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도하가'는 한국 최초의 고대 시로 알려졌다. '공후인'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4구로 된 4행시 형태다.

연극연출가 이윤택은 한발 더 나아간다. '공무도하가'와 '공후인'이라는 제목에서 유추해 여기에 노래와 악기 연주가 곁들여졌다고 여긴다.

강을 건너는 백수광부와 이를 슬퍼하는 아내 사이의 극적 구성으로 고대 드라마의 형태를 갖췄다는 점을 근거로 '공무도하가'를 한국 공연 예술의 '원류'라고 본다.

국립국악원(원장 김해숙)이 올해 신규 브랜드 공연으로 선보이는 음악극 '공무도하'의 연출을 맡은 이윤택(62) 연출은 "한국 최초의 서정시라는 이름으로 문학사에만 있고 왜 연극사로 편입하지 않느냐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고 밝혔다.

특히 백수광부는 서구 신화에 등장하는 주신(酒神)이자 예술의 신 '디오니소스'와 비교된다면서 한국 공연 예술사의 신화적 존재로 간주할 수 있다고 했다.

"제가 2007년 '우리 시대 예술가'를 강의할 때 한국 연극사가 100년이 아니라 5000년이라고 했어요. 100년은 서구 연극 이식사가 아니냐는 거죠. 우리 나라가 연극이 없는 민족이었느냐, 그렇지 않았다는 겁니다. 고대극부터 중세극까지가 실종된 거죠. 그나마 신재효가 판소리를 정리하기 이전까지는 (기록이)없는 형태로 공연했죠. 왜 공연사가 이렇게 비어있냐면서 그 때 공무도하가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강을 건너려는 자와 건너지 말라고 하는 자의 드라마틱한 갈등이 있고, 노래가 있고, '가(歌)'라면 연주도 됐다는 이야기이거든요. 그러면 공연도 됐죠."

이윤택은 극적인 서사 외에 노래만 남아 있는 '공무도하가'를 열린 구조의 이야기로 확장한다. 강을 건널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사실적인 동시대의 서사로 재창조한 것이다.

연출가이기 전에 작가이기도 한 이윤택 연출은 '공무도하'가 자신의 작가 경력에도 중요한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제가 시를 쓰는데 쓰다보면 우리말이 아니에요. 영어 번역투죠. 우리말을 찾아야겠다고 결심하고 1994년 세운 것이 우리극 연구소입니다. 이 작품은 어차피 한번은 짚고넘어가야 할 숙제예요. 우리(나라)는 글쓰기가 습관이 안 돼서 대본으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구전으로 남아있죠. '공무도하가'에 '저 물을 건너지 마시오'라고 나오는데 백수광부는 기어코 건너가요. 희랍극으로 따지면, 운명을 거슬러가는 거죠. 감히 말씀 드리자면 이 부분에 우리 극의 사상이 있어요. 강을 건너가야 하는 이유가 있는데 이상향 때문인 거죠. '왜 건너니'라고 묻는 것에서 우리 극의 태동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음악극 '공무도하'는 총 세 개의 이야기로 구성된다. 새로 이사간 아파트의 동, 호수를 잃어버린 샐러리맨이 2000년 전 자신의 전생을 찾아가는 이야기, 북한에서 운명적인 사랑을 만나 두만강을 헤엄치는 남쪽 작가의 도강기(渡江記), 밤마다 전생과 후생을 넘나드는 늙은 몽유병자의 이야기로 나뉜다.

이윤택 연출과 소설가 김하기의 실화에 바탕을 뒀다. 1980년대 말 부산의 대단지 아파트로 이사간 이윤택 연출가는 새집의 동, 호수를 기억하지 못해 강 건너편 포장마차에서 술을 기울이던 경험을 떠올렸다. 1996년 소설가 김하기가 연길시의 북한식당 여종업원이 소개해 준 택시 운전사와 함께 두만강의 얕은 곳을 찾아 헤엄쳐 건넜으나 다음 날, 북한군에 인도된 후 북경 주재 한국총영사관에 신병이 넘겨져 귀국이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감된 일화도 녹였다.

두만강을 헤엄치는 남쪽 작가의 이야기에는 통일에 대한 소망도 담았다. "통일이 되든지 자유 왕래가 되든지 조화를 이뤄야 하지요. '공무도하'를 통해서 분단을 넘어서 가자고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특정 국악 장르를 중심으로 하는 '소리극'이 아닌 다양한 전통 음악과 춤이 결합된 '음악극'을 표방하는 점이 눈길을 끈다. 판소리를 현실적 언어로 설정해 극적 서사의 중심에 놓고, 정가와 서도소리, 경기민요, 구음, 범패 등 다양한 한국의 전통 소리체계를 음악극의 코러스와 아리아로 배치했다.

즉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언어는 판소리, 공간을 여는 소리는 정가, 비현실적인 분위기의 연출에는 서도소리, 극적인 감정을 이끌어 낼 때는 가사 없이 소리로만 노래하는 구음,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레퀴엠으로는 범패를 활용하는 것이다. 극의 주제를 담아 류형선 음악감독이 새롭게 작곡한 창작음악도 삽입한다.

"제가 하는 건 대중극, 음악극입니다. 음악극이 맞다고 고집하는 이유는 아시다시피 바그너의 음악극 역시 연극이 함께 했기 때문이죠. '공무도하'는 창극이 아니고 말과 음악이 교차되는 연극이에요. 음악극인데 움직임은 연극적이죠. 구조를 더 넓게 표현하면 오페라의 현대화라고 할 수 있죠. 기존 창극은 판소리가 텍스트입니다. '공무도하'는 제 개인 창작이 바탕이라는 점도 다르죠."

이윤택 연출은 음악극 '공무도하'로 공연 예술 장르의 경계를 허물고 싶어한다. "연극인들은 연극, 국악인들은 국악으로 보시는데 이번 작품의 목적은 우리 극을 찾는 거예요. 연극이라는 말 자체가 서구어죠. 우리 공연 문화 스타일의 원형을 찾는 대상이 바로 '공무도하가'입니다. 경계 구별 없이 우리 것, 우리 극 차원에서 관심을 쏟고 있어요."

작창을 맡은 안숙선 민속악단 예술감독은 "한국 전통 연희를 현대의 예술로 재창조하면서 결국 우리의 것을 찾는 작업에 흥분하고 있다"면서 "잘 돼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판소리가 살아날 수 있는 극이 됐으면 한다"고 기대했다.

김해숙 국립국악원 원장은 "올해 초 취임 간담회에서 국악의 대중화에 대한 질문을 받았는데 바로 답을 드리지 않았다. 좋은 작품을 만들어서 대중이 즐거워하면 그것이 대중화로의 발걸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면서 "전통을 소재로 한국 연극을 만들자는 것이 목적이었다. 보편성과 현대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국악을 국악 안에만 머무르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게 목표였다"고 알렸다.

11월 21일부터 30일까지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볼 수 있다. 안숙선 명창은 을녀로도 나온다. 을녀 유미리, 갑남 정민영·손재영, 김작가 김봉영·안이호, 순나 박진희·방수미. 무용감독 한명옥 무용단 예술감독. 1만~5만원. 국립국악원. 02-580-3300 (뉴스제공=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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