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주가뭄 극심 잔고 부족 우려 확산, 생존 위한 구조조정 가속화

[뉴스포스트=최병춘 기자] 조선업계 드리운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다. 한 때 국가 경제 성장에 중추적 역할을 해온 중공업 산업 중에서도 막대한 비중을 차지했던 조선업이 불과 몇 년사이 최고의 골치덩이로 추락했다. 저유가 현상이 장기화되고 조선 시장에서 중국이 급성장 하면서 뒷걸음질 쳐온 우리 조선산업은 막대한 재무 부실까지 겹치면서 구조조정 1순위로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수주가뭄 극심, 줄어드는 일감에 발만 동동

국내 조선업체들은 지난해 나란히 조(兆) 단위 적자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 기대했던 수주 소식까지 들려오지 않으면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더군다나 오랜 부진으로 곳간이 비어가면서 유동성 위기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같은 상황이 이어질 경우 저가 수주에 나서거나 대규모 구조조정에 나서야하는 절박한 상황에 몰린 셈이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국내 조선업계가 올 들어 수주한 선박은 총 6척뿐이다.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은 몇 달째 단 한건의 수주도 따내지 못했다.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은 각각 지난해 10월 말과 11월 초 수주를 따낸 게 마지막이었다.

그나마 빅3중 하나인 현대중공업이 5척, 현대미포조선이 소형 유조선 1척의 계약을 따낸게 전부다. 이 또한 금액 기준으로는 약 5억 달러에 불과하다.

현대중공업이 지난 2014년 1분기 총 58척(59억 달러) 수주, 지난해 1분기 13척(17억 달러)의 물량을 확보한 것과는 비교도 안되는 수준이다.

조선업계 이 같은 수주 난은 없었다. 세계 경기 둔화와 저유가 여파는 수주 감소로 이어졌고 국내 조선업의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저유가 환경에서는 석유를 시추해도 이익을 볼 수 없기 때문에 국제 석유사들이 국내 조선사와의 해양플랜트 계약을 취소하거나 인도 연장하는 사례가 잇달았다.

세계 조선·해운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국내 조선업계의 수주잔량은 지난 2월말 현재 2844만CGT(건조난이도를 고려한 가치환산톤수)으로 2004년 8월 말(2924만CGT) 이후 최저 수준이다.

그나마 조선사들이 믿고 있는 것은 아직 남아있는 수주잔고가 많기 때문이다. 국내 대형 조선사의 경우 회사별로 약 2년여 정도의 일감을 확보하고 있다. 당장의 생산이나 매출에는 큰 문제가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수주 부진이 이어진다면 남은 잔고마저 바닥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

가득이나 새로운 수주가 없는 상황에 기존 계약이 취소되는 일도 이어지고 있어 고민은 더 깊어지고 있다.

더 큰 걱정은 수주 부진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아질 기미 없는 정세, 어두운 전망

세계 경기 부진이 여전한 가운데 급성장한 중국 조선업은 국내 조선업에 여전히 큰 위협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지난 17일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NH투자증권에서 ‘글로벌 경기변동성 확대에 따른 국내 주요 산업의 신용위험 방향성’ 세미나를 열고 “중국 조선업의 성장으로 상선 부문에서 불리한 경쟁환경이 계속되고 있다”며 “국내 조선사들의 신용등급이 부정적”이라고 밝혔다.

이영규 책임연구원은 “저유가 기조가 계속되면서, 해양 시추설비 부문에서 조선사에 불리한 시장환경이 계속되고 있어 중단기 실적도 매우 불확실하다”며 “대안으로 선택한 해양플랜트 부문에서도 대규모 손실이 반복되고 있으며 앞으로 실적이 정상화될지도 불확실하다”고 분석했다.

증권가 표정도 어둡다. 지난달 31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이 발표한 3월 말 증권사 3곳 이상이 전망한 추정치를 보면 조선은 신규 수주 부진으로 올 1분기 전망도 어둡다. 한진중공업의 최근 1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는 105억원으로 연초 추정치보다 58%가 낮아졌다. 현대미포조선(-31.3), 현대중공업(-11.8%)도 영업이익 추정치가 크게 낮아졌다.

벼랑 끝에 몰린 조선업을 살리기 위한 해법으로 강력한 구조조정이 강조되고 있다. 조선업 위기가 가시화되기 시작했던 지난해 정부가 주도하는 강력한 구조조정 가능성이 점쳐지기도 했다. 현재는 금융부문을 통해 구조조정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추진 중이다.

거세지는 구조조정 바람   

하지만 불황이 계속되면서 강력하고 신속한 구조조정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조선 빅3 인 삼성중공업·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의 구조조정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한국신용평가는 건조 능력을 축소하는 등 구조조정을 신속하게 진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신평은 앞으로 2~3년 이내에 이들 3사의 수주 물량이 연간 20~30조원 규모로 위축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어 3사가 구조조정을 통해 매출액과 건조 물량을 현재의 40조원 규모에서 적어도 합산 30조원까지, 필요하면 그 이상의 감축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한신평 관계자는 “해양 플랜트 사업의 불확실성이 여전히 있고, 해양시추설비 용선 계약 취소가 증가하는 등 대금회수 리스크가 크게 늘었다”며 “해양플랜트 사업의 공정 차질 정도와 추가 손실 규모, 인도 지연·취소 가능성 등이 중요한 위협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현장에서도 긴축경영과 자발적 구조조정으로 맞대응하고 있다. 업계는 이같은 구조조정 효과에 기대를 걸고 있는 눈치다.

지난해 사상최대인 5조500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대우조선해양은 구조조정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만큼 올해 흑자전환을 기대하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해 해양플랜트 공정 지연 및 과부하 해소에 장애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900명의 인력을 감축했다. 또 해양플랜트 공정의 안정화와 LNG운반선 건조 등도 이뤄졌다.

이동걸 산은 회장은 “자금 수급 상황을 봤을 때 연말까지는 더 손을 벌릴 일이 없을 것”이라며 “대우조선해양을 구조조정의 성공사례로 만들겠다”고 자신한 바 있다.

STX조선해양은 올해 하반기까지 추가자금 지원 없이 정상적인 운영이 가능한 회사로 거듭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채권단과 협의해 중소형 조선소로 사업규모 축소를 결정했다. STX조선은 해양플랜트와 중대형 컨테이너선, LNG선의 수주를 중단하며 대형 조선소와의 경쟁을 피할 계획이다. 선대도 5개에서 2개로 감소시킬 예정이다.

성동조선 또한 7년간 삼성중공업의 경영정상화 지원을 받아 2020년까지 중형선 세계 1위 조선소로 도약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또 영업력을 강화해 우량고객을 확보하고 원가혁신, 책임경영 등을 바탕으로 2020년 세계 1등 제품 3종을 확보하고 생산성 30% 향상을 목표로 삼았다.

SPP조선은 삼라마이더스(SM)그룹과 매각가격 등 인주조건에 대한 합의를 마무리하는 등 순조로운 매각이 진행되고 있다. 대선조선은 일부 대기업의 관심 속에 영도조선부지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기술력 앞세운 글로벌 시장 공략

궁극적으로는 우리 조선업계 질적 성장이 해법이라는 의식이 높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조선3사가 그동안 연구개발(R&D)를 통해 확보한 기술력을 앞세워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는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최근 세계 최초로 고압의 엔진 배기가스를 정화할 수 있는 친환경 장치 제작에 성공하는 등 친화경·고효율 장비 개발에 힘을 쏟으며 향후 ‘친환경 선박’ 시장 선점에 발 빠르게 나서고 있다.

현대중공업이 자체 개발한 고압용 질소산화물 저감강치(HP SCR)를 현대미포조선에서 건조 중인 2만600㎥급 LPG선에 설치, 올해부터 도입되는 국제해사기구(IMO)의 친환경규제를 만족시키는 원천기술 확보하게 됐다.

또한 현대중공업은 지난 2014년 9월 해양플랜트 기자재 국산화를 위한 TF팀을 구성, 지금까지 총 38종의 해양기자재를 국산화했다.

삼성중공업은 대규모 손실을 발생시켰던 공정 지연을 없애 손실을 최소화해 올해는 반등을 한다는 계획이다.

여기에 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생산·저장·하역 설비(LNG-FPSO, FLNG)에 도전하는 등 그동안 확보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수주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쇄빙선 건조, 방위산업 등 틈세 시장 공략에 적극 나서고 있다.

특히 최근 영국과 노르웨이 해군으로부터 3000톤급 이상 잠수함 건조 주문을 받는 등 여전히 방산 부문에서 강점이 두드러지고 있다.

지난달 24일 대우조선해양은 경남 거제 옥포조선소에서 1400톤급 잠수함 진수식을 가졌다.

잠수함은 지난 2011년 대우조선해양이 인도네시아 국방부로부터 수주한 잠수함 3척 가운데 초도함이다. 국내 첫 방산수출 잠수함으로 계약규모는 약 11억 달러다.

진수한 잠수함은 대우조선해양이 독자 개발한 대한민국 최초의 수출형 잠수함이다. 전장 61m로 40명의 승조원을 태울 수 있다. 또 중간기항 없이 1만해리(1만8520Km)를 운항할 수 있다.

앞서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대우조선해양이 잠수함 건조 등 강점이 있으므로 포트폴리오가 해양플랜트 50%, 선박 10%, 방위산업 10%였다면 앞으로 해양플랜트를 줄이고 강점이 있는 선박의 비중을 50%로 늘리고 방위산업 부문을 키운다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전망키도 했다.

한편, 최근 국제 유가가 반등하는 추세는 반가운 소식이다. 서부텍사스 원유는 올 2월 배럴당 26달러까지 떨어졌다가 최근에는 40달러 선을 회복했다.

국제해사기구(IMO)가 올해부터 선박 배출가스 규제를 한층 더 강화한 상황에서 높은 연료 효율 등을 갖춘 최신 친환경 선박을 찾는 선주도 늘어날 수 있다.

또 지난해 대규모 적자의 주 원흉이던 해양플랜트 프로젝트들의 인도가 대거 이뤄진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은 각각 18기 20기의 해양 잔고를 보유 중이다. 양사 모두 올해 9기를 선주 측에 인도할 계획이다. 아울러 유가가 회복되면 선주 측의 일방적인 계약 취소, 대금 지급 및 인도 거부 등의 리스크도 크게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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