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장 아르바이트생 유명 전시기획자로 우뚝 서다 ‘Follow your dreams’

미술계 견고한 진입장벽 타파한 ‘최요한만의 것’
예술계 재능 셀러브리티 작가 데뷔 일등 공신
미스터 브레인워시展 성공적 운영 총감독 면모
사업 실패…데이비드 라샤펠 전시로 재기 성공
문화 발전, 기부문화 활성화·전시 기획자 노고 인정 풍토 조성으로 가능

▲ 서울 종로구 아라모던아트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미스터 브레인워시展을 총 감독한 최요한 예술감독이 지난 22일 작품 '하우스(THE HOUSE)' 앞에서 포즈를 취한 모습.(사진=뉴스포스트 안옥희 기자)

[뉴스포스트=안옥희 기자] 해외를 분주하게 오가며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초대형 작가를 섭외해 전시의 모든 것을 책임지는 사람, 아트 디렉터 최요한. 그는 최근 서울 종로구 아라모던아트뮤지엄에서 열린 스트리트 아티스트 미스터 브레인워시 전시를 성황리에 오픈했다.

전시 기획자로서 취향과 관심사가 특정 장르에 편중되는 것을 지양하는 터라 그가 전시 작가를 선택하는 기준은 ‘와!’ 감탄사가 나오며, ‘한국에 이 전시를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작가다. 패션사진 작가로만 알려져 있던 데이비드 라샤펠 작품을 예술의 전당에 걸어 그 존재를 각인시키고 아트토이의 창시자 마이클라우 전시를 열어 당시 국내에서 오타쿠 정도로 치부되던 아트토이에 대한 인식을 ‘예술’로 격상시키는 데 기여했다.

공연장 아르바이트생이 대형전시 기획자가 되는 ‘꿈을 이룬 사람’ 최요한 예술감독을 만나 ‘희로애락’(喜怒哀樂)으로 점철된 그의 삶에 대해 들어봤다.

프롤로그

학부 시절 사회체육을 전공하며, 체육학 교수를 꿈꾸던 최요한 감독이 예술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제대 후 학비를 벌기 위해 당시 전 세계 소녀들의 마음을 훔쳐간 원조 아이돌 ‘뉴 키즈 온 더 블록’(New Kids On The Block)의 1992년 내한공연에서 아르바이트한 것을 계기로 공연기획계에 발을 들이게 됐다.

이후 1999년 영원한 팝 아이콘 마이클 잭슨의 내한공연 ‘마이클 잭슨과 친구들’(Michael Jackson & Friends)에서 운영팀장까지 맡게 됐다. 전설적인 팝가수의 내한공연을 준비하며, 어마어마한 업무 강도에 시달려 무대 뒤에서 일에 회의감을 느끼던 찰나 마이클 잭슨이 무대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고막이 찢어질 듯한 관중의 환호성에 그는 자신도 모르게 팔을 치켜드는 리액션을 취했다. 그때 헤드셋을 끼고 일사불란하게 큐사인을 주고 받는 스태프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 느낀 전율은 그의 진로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바꿔놓는 계기가 되었다.

기쁨(喜) 미술계 입성

“공연장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광고동아리 활동도 했는데 그런 크리에이티브한 일이 재미있더라고요. 그러다 마이클 잭슨 내한공연 때 관중의 어마어마한 함성을 듣고 ‘이쪽 길로 가야겠다’는 결심을 했어요.”

마이클 잭슨 내한공연 운영팀장을 거친 뒤 본격적으로 공연연출을 시작해 다양한 연출 경력을 쌓고 광고대행사까지 발을 넓혔다. 한 광고대행사에서 이벤트·프로모션 팀장으로 일하면서 연예인들과 친분이 쌓였다. 연예인들은 창의적일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가 곁에서 지켜본 바로는 기획사로부터 디렉션을 많이 받아 제약이 많은 직업인이었다. 그는 그들이 창의적인 활동을 펼칠 기회가 없을까 고민했다. 그런 고민으로 2013년 ‘이미지네이션K(Imagination K)’라는 아티스트 그룹을 만들었다.

“제가 전시를 기획했던 셀러브리티들 중 배우 조달환 씨는 캘리그라피, 김혜진 씨는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과 출신으로 미술을 계속 해왔던 분이에요. 강예원 씨는 그림 그리는 것을 무척 좋아했는데 전시는 한 번도 해본 적 없어서 제가 그분들께 전시회를 열어드린 거예요. 아이돌 가수 출신 심은진 씨는 자신 내면의 고독을 크로키·에세이·사진으로 풀어내는 재능이 뛰어나요.”

이처럼 화려함 속에 감춰진 연예인들 내면의 창의성과 예술성, 다양한 감정을 꺼내 브라운관·스크린에서 볼 수 없던 새로운 감성을 보여준 그의 전시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노여움(怒) 미술계 견고한 진입 장벽

▲ 지난 20일 '미스터 브레인워시展'의 본격적인 개막에 앞서 진행된 기자간담회 현장에서 최요한 예술감독(왼쪽)과 미스터 브레인워시(중간), 리앤초이 이동규 대표(오른쪽)의 모습.(사진=뉴스포스트 안옥희 기자)

“홍보대행사 일을 하면서 공부를 정말 많이 했어요. 미술계가 워낙 폐쇄적이어서 비 전공자가 진입하려면 제가 노력하는 방법밖에 없었으니까요.”

최 감독은 그 어느 분야보다 학연·지연이 견고하다고 알려진 미술계에서 ‘비전공자’라는 핸디캡을 장점으로 승화시킨 매우 드문 사례다. 그는 ‘비전공자’ 수식어 덕분에 미술계 병폐로 지적돼 온 파벌싸움, 학연·지연 등에서 그 누구보다 자유로울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주위에서는 오히려 ‘네가 미술 전공이 아니어서 이런 일을 더 잘할 수 있는 것 같다’고 해요. 선·후배 관계를 신경 쓸 일 없으니 제가 원하는 바를 자유롭게 시도하죠. 지금은 홍익대학교에서 문화예술경영을 전공하고 있어요. 해외에 나가면 제가 과거에 무엇을 했는지 전혀 궁금해하지 않고 지금 현재 무엇을 하느냐를 중요하게 여기는 데 반해 국내는 그렇지 않은 점이 안타까워요.”

그는 과거 비전공자임을 콤플렉스로 여겼지만, 지금은 오히려 다행이라고 말한다. 그가 생각하는 전시기획자의 미덕은 ‘편협한 생각을 갖지 않는 것’이다.

“어떤 전공으로 학습된 사람은 그것을 벗어나는 순간, 가령 ‘미술은 이렇게 하는 건데 그렇게 하면 미술이 아니다’라고 하는 상황이 발생해요. 그런 틀에 갇힌 사고가 제게는 존재하지 않아요.”

일정한 틀에 갇히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기 때문일까. 그에게는 “최요한은 늘 독특한 것만 가져온다”라는 말이 꼬리표처럼 따라붙는다. 그가 최근 기획하고 오픈한 국내 최초의 스트리트 아트 전시 ‘미스터 브레인워시’ 전에는 보통 미술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 없다. 관람객과 작품 사이 일정한 거리를 두게 하는 장치인 바리케이드·유리관, 읽다 지치게 하는 장황한 작품 설명, 전시 운영 스태프들의 정장 유니폼 등을 모두 없앴다.

“작품이 담고 있는 위트와 유머를 작품 설명으로 ‘정의’하면 그것이 과연 재미있을까요? 그런 의문으로 이번 전시에서 작품 설명을 없애버렸죠. 같은 작품을 보고도 누군가는 재미있게, 또 누군가는 슬프게 느낄 수 있어요. 그런 감상은 철저히 개인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종종 특별 도슨트를 할 때도 작품 설명은 지양하고 비하인드 스토리, 전시 과정과 구성의 의미 등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도 그 때문이에요.”

그는 미스터 브레인워시와 “작품 보호는 하되, 스트리트 아트 특성에 걸맞게 미술관 운영을 하겠다”고 협의했다고 말했다. 그가 미스터 브레인워시와 전시를 추진하며, 내민 콘셉트는 페인트 통에서 흘러나온 페인트가 모든 공간을 작품으로 채운다는 것 하나였다. 나머지는 온전히 아티스트의 상상력에 맡겼다. 스트리트 아트 자체가 자유로운 표현을 기반으로 하는 탓도 있지만, 그 연출력 덕분에 여느 미술관에서 보기 힘든 전시장 벽면까지 페인팅하는 등의 파격적인 연출과 운영 방식이 화제가 됐다.

“일반적으로 미술관이 하는 일을 하지 않으니 독특하다는 말이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저는 제가 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미술관은 작품 보호 의무가 있지만, 작품과 관람객의 접점을 찾아주는 게 더 큰 임무라고 생각한다.
“국내 미술관들은 지나치게 ‘룰’에 입각해서 움직이고 있고 그 ‘규칙의 빡빡함’이 예술을 담기에는 부족한 공간으로 만들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미술관을 아티스트에게 맞게 확 변화시키고 싶었어요.”

다른 미술관들도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는 추세지만, 바닥보호․벽면보호․조명이슈․작품컨디션 등 제약들을 많이 두기 때문에 그는 미스터 브레인워시가 옛날 창고에서 작업하듯 상상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게 도왔다. 자유분방한 거리 예술 스트리트 아트를 미술관 안으로 소환하면서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조율하는 힘든 컨트롤 과정을 총괄하며, 그 작품들이 미술관 안에서 돋보일 수 있게 접점을 찾는 데 많은 노력을 쏟았다.

슬픔(哀) 사업 실패와 재기

아트 디렉터로 성공한 현재의 모습 때문에 인생에서 실패를 겪지 않았을 것 같은 그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공연기획·연출, 홍보대행사 등을 거쳐 한국관광공사 한류 프로젝트 디렉터로 일하면서 직접 콘텐츠를 가져와서 기획을 해보자는 결심을 마침내 하게 돼 2008년부터 작가 접촉에 들어갔으나 사업은 뜻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회사가 쫄딱 망해서 빚더미에 앉게 됐어요. 당시 컨택하던 작가가 데이비드 라샤펠이었는데 지금 돈도 없고 회사가 망해서 당신과 일할 수 없게 됐다고 전했죠. 그런데 그가 “너는 지금 살아있잖아, 그러면 할 수 있는 것 아니야?”라고 이야기해줘서 울컥했어요. 한국은 실패한 사람에게 절대 기회를 안 주거든요.”

사업 실패로 빚더미에 앉았지만, 데이비드 라샤펠과의 전시 계약이 성사돼 이 전시를 통해 그는 재기에 성공했다.

“데이비드 라샤펠 전시를 기획하면서 가장 걱정했던 점은 당시 국내 포털에 검색해보면 아예 페이지가 없었고 정보 검색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인지도가 없었죠. 광고대행사 쪽이나 패션 전공자들한테는 이미 전설적인 인물이었지만요.”

세계적인 사진작가이자 팝아트 작가인 데이비드 라샤펠이었지만, 국내에서는 인지도가 낮고 작품 중 누드가 많아서 당시 국내 미술관에서는 손사래를 쳤다고 한다. 그러나 사업실패 시련 속에서도 그는 도전정신을 잃지 않고 엄청난 모험을 감행했고 예술의전당 대관에 성공해 전시를 펼칠 수 있었다.

즐거움(樂) “사명을 완수했을 때 괴로움은 영광의 상처로 남는다”

▲ 미스터 브레인워시의 작품 '하우스(THE HOUSE)' 앞에 선 최요한 예술감독.(사진=뉴스포스트 안옥희 기자)

“미스터 브레인워시도 구제 옷을 팔다가 카메라가 좋아서 다큐멘터리 감독이 되려고 했다가 결국 뱅크시를 만나서 아티스트가 됐거든요. 그래서 작품을 통해 ‘꿈을 좇다 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굉장히 좋은 자리에 와 있더라’라고 계속 주장해요. 물론 그 과정은 너무나 험난하고 어렵죠. 하지만 그 말에 전적으로 동감해요. 그래서 강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영화 ‘반지의 제왕’ 주인공 프로도 이야기를 하며 “사명을 완수했을 때 괴로움은 영광의 상처로 남는다”는 이야기를 자주 해요.”

이번 전시에서 미스터 브레인워시가 주는 메시지 ‘Follow your dreams’를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그는 전시 연계프로그램으로 현재 각자의 위치에서 성공을 거둔 ‘꿈을 이룬 사람들’을 섭외해 강연도 진행 중이다. 그들이 지금의 위치에 오르기까지 경험한 우여곡절을 듣고 젊은이들이 각자의 인생에 대입해 ‘생각해볼 계기’가 되기를 바라서다.

에필로그

“우리나라 문화산업이 발전하기 힘든 이유는 기부 활성화가 안 돼 있고 기업들도 소극적이라서 그래요. 전시 기획을 단순히 흥행사업이나 막연하게 산업으로만 보는 것도 문제죠. 전시를 통해 향유할 수 있는 다양한 문화를 보여주고 문화를 어떻게 만들어나갈 것인가 하는 고민이 우선이 돼야 해요.”

대형전시를 기획, 총괄하는 아트 디렉터로 활동하며, 그는 국내에서 가장 아쉬운 점으로 ‘기부문화 비활성화’를 꼽았다. 뉴욕현대미술관(MOMA,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의 경우 연간 수천억 규모의 기업 후원이 들어와 예산에 있어 한계가 거의 없이 운영된다. 전시 진행에는 굉장한 규모의 제작비가 필요한데 정부나 기업은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팔 길이 원칙’(Arm’s length principle)을 무시하고 적게 지원하면서 최대의 이익을 얻으려 한다. 전시가 수익 기반으로만 가다 보니 전시의 모든 것을 총괄하는 기획자보다 제작자 중심 체계로 돌아가게 돼 자극적인 마케팅이 이뤄질 수밖에 없는 폐해가 발생한다고 그는 지적했다.

이어 국내 미술 전시가 기업 후원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운영되는 과정에서 정작 전시를 기획, 큐레이팅하고 작품들을 가져온 사람들의 노고가 배제되는 잘못된 현실을 꼬집기도 했다.

그는 현재 데이비드 라샤펠의 국내 두 번째 전시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하반기 데이비드 라샤펠 전시에서는 공간에 설치미술을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가 최대 고민이에요. 전시와 연계한 강연뿐 아니라 디제잉 파티, 재즈 공연, 무용 워크숍, 영화 시사회 등 미술관 안에서 다양한 시도를 할 계획이에요. 관람객이 다양한 경험을 통해 쉽게 미술을 누리게 하고 문화를 만들어나갈 방법을 찾고 있어요.”

 

 

- 2014~2015 오드리 헵번 ‘뷰티 비욘드 뷰티’
- 서울·부산 전시회 총 감독(서울 동대문DDP·부산 영화의 전당)
- 2014 여의도 IFC 아트프로젝트 예술감독(서울 여의도)
- 2014 KT ‘Klive’ 갤러리 예술감독(서울 중구 롯데 피트인)
- 2013 아트토이 창시자 ‘마이클라우 아트토이 전’ 총 감독(세종문화회관)
- 2011~2012 데이비드 라샤펠 한국 특별전
- 서울·부산 총 감독(서울 예술의 전당·부산 BEXCO)
- 2000~2008 한국관광공사 한류 프로젝트 디렉터, 기업 아트 컬래버레이션 프로젝트 外 

 

 아트디렉터 최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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