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평론가로 27년 여전히 ‘촉과 날’ 갈고닦아

평론가, 매력보다 고통...감각 떨어지는 것 경계

“한국 음악평론 계보, 황문평·서병후·이백천 거쳐
현재의 강헌(가요), 임진모(팝음악)로 이어져”

“2000년 이후 명곡이 몇 곡이나 있을까요?
김광석, 이문세, 들국화, 산울림은 영원할 것”

▲ 임진모 음악평론가.(사진=뉴스포스트 안옥희 기자)

[뉴스포스트=인터뷰진행 이완재.안옥희 기자] 음악평론가 임진모(58)는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중 하나다. 그의 존재는 90년대 혜성처럼 등장한 ‘서태지와 아이들’ 못지않은 한국 대중음악사의 큰 수확으로 평가된다. 대중에게 ‘음악평론가’라는 직업이 생소하던 시절 오직 음악에 대한 열정 하나로 다니던 직장을 박차고 나와 전문 영역을 구축한 그다. 음악 평론가로서 평론·방송·라디오·강연 등 종횡무진하며 왕성한 활동을 펼쳐온 지 어느덧 27년째다. 

그사이 대중과 가까이 호흡하는 음악평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물리적 나이를 무시할 수 없으므로 평론가에게 필요한 감각인 ‘촉과 날’을 유지하기 위해 현재 부단히 노력중이다. 그는 이 시대 기성세대에게 과거의 영광만 좇는 ‘꼰대’의 편협함을 버리고, 요즘 음악을 통해 젊은 세대가 추구하는 다양함을 느껴보라고 조언했다. 지난 2일 늦은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지하카페에서 그를 만나 한국 대중음악사, 팝 음악의 궤적과 함께한 그의 음악평론 인생을 들어봤다.

 

기자 경력 통해 ‘단문의 미학’ 터득
늘 물리적 나이 한계 극복위한 노력중

-신문기자 생활을 거쳐 음악평론가의 길을 걷고 있다. 음악평론가로 살게 된 계기나 이유가 있다면?

“1984년 경향신문 27기 공채로 입사해 기자생활을 시작했고 이후 1989년 내외경제신문에서 일하다 1991년에 퇴사했어요. 6년 7개월여간 재직하면서 머릿속엔 오직 ‘음악 쪽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지요. 비판과 독설을 제일 싫어했던 터라 기자가 적성에 맞지 않았죠. 음악평론가가 되고자 했던 이유는 비판과 독설을 하기 위함이 아니라 음악의 아름다움을 많은 사람에게 전달하고 싶어서예요. 확실히 저는 ‘비평가’라기 보다 ‘해설가’ 내지 ‘평론가’인 것 같아요.

-기자 생활이 음악평론에 도움이 됐나?

“지나고 보니 기자생활로 터득한 게 꽤 있더라고요. 스트레이트 글을 통한 ‘단문의 미학’이랄까요? 한 문장으로 어떤 상황에 대한 묘사를 압축해서 전달하는 스트레이트 글만의 강점이 분명 있거든요. 길지 않아도 풍부한 내용을 전달할 수 있는 이런 저널리즘(journalism) 글이 아닌 크리티시즘(criticism) 글을 숭배하고 그것에 길든 사람들은 사실 스트레이트 글을 잘 못 쓰죠. 다른 사람들은 17~18매 쓸 것을 저는 7~8매로 압축해서 쓸 수 있어요. 이게 기자 생활하며 얻은 장점이 아니었나 싶어요.”

-국내 음악평론가의 시작, ‘효시’는 누구인지 궁금하다?

“근대적 의미의 평론가들이 옛날 트로트 시대 1930~1940년대 해방 이후, 6·25전쟁 이후에도 분명 있었을 거예요. 당시 음악평론가로 인식되던 분들로 황문평, 이백천 선생이 계시죠. ‘빨간 마후라’를 만든 황문평 선생은 작곡가이자 평론가였고, 이백천 선생도 KBS PD와 평론을 겸하셨던 것을 보면 이때 당시 아직 평론가가 전업의 가능성이 희박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음악평론가 계보가 있을 것 같은데 그 가운데 임진모 평론가의 위치는?

“제가 평론 활동 시작했을 때도 이백천 선생은 계속 활동하고 계셨고 황문평 선생은 작고하신 상태였어요. 서울대 출신에 1981년부터 약 15년간 빌보드 한국 특파원을 지낸 서병후 선생도 계셨죠. 황문평, 이백천 선생과는 달리 팝 평론을 하셨고 ‘음악세계’를 창간했어요. 타이거JK(본명·서정권)의 부친으로 잘 알려져 있죠. 그 이후 세대가 1980년대 중반 방송을 중심으로 활동한 재즈와 팝 분야의 평론가들인데 재즈 분야로는 김진목 선생이 계셨고 이원복, 조상만, 강인중, 백선엽, 백승호 선생이 있어요. 이분들이 굉장히 고감도 감수성을 지녀서 좋은 가요를 많이 소개해주셨어요. ‘평론가’라는 타이틀을 붙일 수는 없지만, 음악에 대해 ‘평론적 행위’를 하셨던 분들이죠. 이후 1990년대 ‘서태지와 아이들’이 활동했고 대중문화가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던 시대에 등장해 대중적 지명도를 획득한 평론가로 저와 강헌이 있어요. 저는 팝 분야, 강헌은 한국 대중음악으로 어느 정도 업무분담이 돼 있었어요. 저희에게 1세대 평론가, 심지어 원로평론가라고 하는 분들이 있는데 사실 틀린 말이죠. 중요한 건 저희가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고 순전히 평론활동만 했다는 거예요.”

-평론가로서 전업적 위치에 오른 것은 언제쯤?

“지금은 그냥 먹고 살 수 있는 정도? 평론을 시작할 때부터 돈을 20만 원 벌건 30만 원 벌건 무조건 전업으로 생각했어요. 이미 아이 둘을 낳고 평론을 시작해서 생활이 어려웠지만, 지명도가 생기고 40대 중반 이후부터는 괜찮아졌죠. 지금 수입의 65% 정도는 다 강의에서 나오는 거예요. 경험과 이력이 있으니까 강의 시장에서 아직 버림받지 않은 것 같아요.”

 

복고 유행…디지털 문화 한계 봉착 의미
요즘 음악 소비·소모적 분명한 ‘유통기한’
K팝 정체 대안…해외 유수 뮤지션과 콜라보레이션·장르 다양성 확보

▲ 임진모 음악평론가(왼쪽)와 뉴스포스트 이완재 편집국장(오른쪽)의 대담 모습.(사진=뉴스포스트 안옥희 기자)

-평소 음악을 듣는 매체와 경로는?

“불과 2~3년 전만 해도 음악을 CD와 MP3 각 7:3 비중으로 들었어요. 지금은 완전히 역전됐죠. 팝, 록, 인디음악은 아직도 CD가 많아서 가끔 사고 싶은 CD도 생기지만, 옛날보다 확실히 찾는 빈도가 떨어지고 있죠. CD는 확실히 저물어가는 매체라 할 수 있고 LP는 향수로 돌아가는 레트로적 분위기가 있죠. 저도 LP를 소장하고 있지만, 잘 듣지는 않아요. LP는 이제 마니아용으로 보시면 돼요. 20대 초중반 젊은이들이 몇 달치 용돈을 모아서 LP 사는 걸 보면 참 대견해요. 이렇게 최근 LP 수집 붐이 일어나는 것이 그만큼 우리 대중문화 역사가 쌓였다는 방증인 것 같아요.”

-카세트테이프·LP·CD로 음악 듣던 아날로그 세대인데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누리는 디지털시대를 살고 있다. 과거와 현재를 비교할 때 차이점 혹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기성세대가 걸그룹이나 아이돌 댄스그룹을 통해 얻지 못하는 게 청각적 감동이거든요. 트와이스 쯔위, AOA 설현 등 시각적으로 볼 때 예쁜 가수들이 많지만, 그들의 음악은 청각적으로 기성세대가 들어온 스타일은 아니에요. 사실 음악이라는 것은 청각적 감동이 있어야 저장이 되는 거예요. 지금 음악은 소비되고 소모되고 있는 뜻이에요. 그러니 기성세대들이 요즘 음악을 듣기보다 자신이 청각적 감동을 느꼈던 1970년대, 80년대, 90년대 초반으로 내달리는 거죠. ‘토토가’ 열풍으로 지금으로부터 얼마 되지 않은 2000년대 전후 음악들이 ‘추억의 이름’으로 다시 돌아왔는데 지금의 고도로 조직화하고 계획적으로 짜인 음악에 대한 반동으로 자꾸만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 하고 온기를 느끼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이렇게 볼 때 지금 복고는 당연한 흐름이 될 수밖에 없는 거죠.”

-최근 가요가 과거와 달리 지나치게 퍼포먼스 위주로 흐르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그 점은 젊은 세대도 인정해요. 지금 세대는 저장하는 ‘콜렉트’(collect)가 아니라 ‘딜리트’(delete) 세대, 즉 삭제세대인 거예요. 다운로드 받아놓더라도 곧 있으면 용량 넘쳐서 삭제 해야하니까요. 가령 투애니원 ‘파이어’(fire), ‘아이 돈 케어’(I don’t care) 같은 곡 좋다는 건 다들 기억해요. 그런데 그걸 명곡으로 듣는다는 건 쉽지 않아요. 이미 자신도 모르게 소비를 한 거예요. 그래서 소비하기 이전에 저장했던 세대의 음악으로 돌아가는 흐름이라고 봐요. 김광석, 이문세, 들국화, 산울림 음악이 어떻게 소모가 되겠어요? 저장을 겨냥한 이런 음악들은 이미 저장됐죠. 소비·소모를 겨냥한 지금의 음악은 유통기한이 끝나면 다시 찾지 않게 되는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2000년대 나온 음악 중 대중과 화학적 작용을 해서 시대를 견인했던 곡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아날로그 문화를 재흡수하고 있는 지금 상황은 디지털 문화에서 우리가 확인하고 있는 어떤 한계가 아닐까요.”

 

비틀스·롤링스톤스·신중현…동시대 살았던 것 ‘행운’
평론가, 음악가에 봉사하는 2차직업…‘겸손과 잔혹’ 갖춰야

- 요즘 K팝 시장에 대한 생각은? 전문가로서 아쉬움은 없는지?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빌보드 차트 2위에 7주간 랭크되고 투애니원, 빅뱅, 샤이니 등의 해외공연에 인파가 몰려든 것 보면 자랑스럽고 대견하죠. 베이비붐 세대에게 물어보세요. 우리나라 음악이 해외에서 팔리고 인기 끌 것으로 상상할 수 있었는지요. 케이팝(K-pop) 시장이 많은 것을 일군 건 사실이에요. 그런데 문제는 지금 거의 정체성에 한계가 왔다는 점이죠. 장르적 한계에 매몰된 이 상태에서 빨리 벗어나기 위해 세계시장을 움직이는 미국과 영국 쪽 유수의 프로듀서, 팝스타들과 콜라보레이션을 많이 해서 케이팝이 다양한 스타일로 바뀌어야 한다고 봐요.”

 

▲ 한국 대중음악사, 팝 음악의 궤적과 함께한 자신의 음악평론 인생을 이야기 하는 임진모 음악평론가.(사진=뉴스포스트 안옥희 기자)

-유년기·청소년기 어떤 음악을 듣고 성장했는지?

“중3 겨울방학 때부터 라디오를 많이 들었어요. 그때가 비틀스 해산 이후였는데 폴 매카트니, 비틀스, 롤링스톤스, 카펜터스, 핑크플로이드, 레드 제플린, 이장희, 어니언스, 신중현 같은 음악을 라디오에서 듣고 ‘와!’ 하고 놀란 거예요. 그때 음악 평론할 생각을 하게 됐죠. 대학 들어가서 본격적으로 음악 듣기를 시작해서 77년부터 14~15년간 열심히 들었어요. 당시 제게 가장 중요한 뮤지션은 비틀스, 롤링스톤스, 국내에서는 신중현, 조용필, 산울림, 들국화, 서태지…이렇게 나가는 것 같아요. 이런 음악들을 경험하면서 특히 80년대 말에 이르러 우리 대중음악 장르가 굉장히 풍요로워지거든요. 그때를 살았던 게 제가 큰 행운이었던 것 같아요.”

 

자신의 발전위해 “스스로 낯설게하기기” 중요
비판과 독설 피해 기자생활 접고 평론가 길로
지금 음악, 청각적 감동없고 소비·소모적 아쉬워

-‘음악평론가’라는 직업의 가장 큰 매력을 꼽는다면.

“매력은 없고 고통만 있어요. 지금은 어휘선택과 상황에 적절한 언어적 설명을 떠올리는 게 고통스러워요. 이것보다 저를 더 괴롭히는 것은 감각이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에요. 제가 78학번이고 58세인데 이 나이에 요즘 음악들이 귀에 딱 들어올 수는 없죠. 후배들은 어떤 뮤지션 음악을 들으면 어떤 곡이 좋고 어느 곡에 변화를 줬다는 것을 단박에 알아차려요. 그런데 저는 해당 뮤지션 음악을 꾸준히 들었어도 이 시대에 맞는 감각이 제대로 발동하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죠. 이런 고민을 털어놓으면 다들 당연하지 않으냐고 해요. 지금 평론한 지 27년이 됐는데 음악을 꾸준히 듣고 있어도 ‘촉과 날’을 유지하기가 사실 쉽지 않죠. ‘촉과 날’, 제가 제일 좋아하는 표현 중 하나인데 이게 있어야 글에서도 개성적인 면모가 부각되고 차별화할 수 있어요.”

-평소 평론할 때 곡·뮤지션·앨범을 고르는 기준과 자신만의 평론 원칙은?

“‘주관적 객관’을 마련하려고 노력해요. 내 주관에 따라 뽑았는데 객관적인 상태까지 도달한다면 최고죠. 주관적 객관 속에서 어떤 형태의 글, 말로 효과적으로 전달해 대중적 설득력을 가지는 것이 굉장히 중요해요. 또 하나는 ‘겸손과 잔혹’이에요. 40대 중반 이후 ‘평론가란 무엇일까?’ 생각해봤는데 평론가는 작곡가, 연주자, 가수와 같은 음악가들이 없으면 성립되지 않는 ‘2차 직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가령 조용필 같은 뮤지션이 음악을 만들면서 저를 고려할까요? 그들에겐 제가 필요 없지만, 저는 그들이 필요해요. 그래서 ‘평론은 사실 음악가에 대한 봉사구나’ 하는 결론을 내리게 됐죠. 그래서 저는 건방지지 않은 느낌을 주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평론가는 충분히 겸손하지만, 잔혹한 면도 어느 정도 있어야 해요.”

-특별히 친분 있는 뮤지션이나 활발하게 교류하는 음악·방송계 지인을 소개한다면.

“뮤지션 중에는 배철수, 김수철, 한동준 등과 친하고 친한 방송 PD들도 많죠. 배철수 선배와 인연은 꽤 됐고, 제가 라디오 게스트로만 19년째예요. 평론가는 뮤지션에게 봉사해야 하지만, 아주 지나치게 가까울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쉽게 말해 저녁 8시에 ‘나랑 술 한잔하자’고 불러낼 만큼은 아니죠.”

-직접 음악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는지.

“전혀요. 저는 악기들이 만들어내는 그 화려하고 환상적인 음악을 듣고 감동하는 것으로 음악평론의 길을 시작했어요. 그런 좋은 음악들을 더 많은 대중에게 알려주고 싶었으니까요. 음악을 직접 하고 싶은 생각이 없고 그냥 제가 듣고 만족하면 충분해요.”

- 자신에게 ‘음악’이란, ‘평론’이란 어떤 의미인지.

“음악은 저의 전부고 평론은 일부죠.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앞으로 ‘촉과 날’을 유지할 수 있는 감각과 감수성을 잘 지켜내고 제 나이와 이력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잘 찾아 나가야 하겠죠. 지금은 지명도로 활동하고 있지만, 앞으로 방송·강연 등에서 점점 제 지분이 축소될 거예요. 지금 꼭 해야 할 일은 자신을 낯설게 하는 거예요. 제가 자신을 몰라야 발전이 있지 자꾸 자신이 이러이러하다고 생각해버리면 거기서 자꾸 헤매게 돼요. 차라리 나를 자신으로부터 조금은 소외시키고 낯설게 만드는 게 좋은 것 같아요.”

 

▶평론가 임진모는?
- 1959년생(58세), 경기 부천시 출생
-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졸업
- 경향신문 기자, 내외경제신문 기자 역임
- 배철수의 음악캠프 ‘스쿨 오브 락’
- 지금은 라디오시대 ‘오일 팝송’
- 한국저작권위원회 위원
- 영상물등급위원회 공연심의위원
(저서) 팝, 경제를 노래하다(2014), 우리 대중음악의 큰별들(2004) 외 다수

저작권자 © 뉴스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