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격호에서 신동빈까지 롯데 창사 최대고비

▲ 사진=뉴시스

검찰 칼 끝 정조준, 총수일가 전원 사법처리 위기
신동빈 회장 신병 오리무중, 지배구조 마저 흔들
‘뉴 롯데’ 추진 제동, 그룹 동력 상실 우려 확산

[뉴스포스트=최병춘 기자] 롯데 비리 수사의 정점으로 지목된 신동빈 회장의 수사가 마무리됐지만 신 회장의 신병은 아직까지 오리무중이다. 사실상 사법처리 구속 여부는 아직까지 답이 내려지지 않고 있다. 3개월이라는 장기간에 걸친 전방위 수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신 회장에 다다르면서 검찰이 돌연 고민에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순탄치 않은 수사과정과 이에 따른 부담이 커지면서 당연한 수순으로 보였던 신 회장의 구속영장 카드를 쉽게 꺼낼 수 없는 상황에 봉착했다. 사정당국의 고민에 빠지면서 지금의 재계5위 롯데를 일군 총수일가의 명운도 함께 선택지에 놓이게 됐다.

신(辛)씨일가와 롯데, 사상 최대위기

롯데그룹은 연 90조원에 육박하는 매출과 90여개가 넘는 재계 5위권 대형기업이다. 지금의 롯데그룹은 1967년 4월 2년전 이뤄진 한일 국교 정상화를 계기로 2년 뒤 재일교포였던 창업주 신격호 회장이 한국에 롯데제과를 세우면서 출발했다. 롯데제과는 껌, 과자, 빙과류를 제조판매하는 회사다. 사명 롯데는 대문호 괴테가 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여주인공 ‘샤롯데’에서 애칭인 ‘롯데’를 따와 지은 것으로 유명하다.

롯데의 시작은 일본이었다. 1922년 10월 4일 울산 울주군 삼남면 둔기리에서 태어난 신 회장은 1941년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고등공업학교(현, 와세다대학 이학부) 화학과를 나온 뒤, 1946년 5월 도쿄에 ‘히카리특수화학연구소’라는 사업장을 열고 커팅오일을 응용한 비누와 포마드, 크림 등을 만들면서 사업을 시작했다. 이 당시 신 회장은 이런 화학기술을 바탕으로 일본에서 ‘껌’을 만들어 크게 성공했고 2년 뒤인 1948년 6월 일본에서 ‘롯데’를 세웠다. 그리고 20년 후인 1967년 국내로 귀국해 세운 것이 롯데제과다.

이후 1970년대부터 롯데는 국내 최대 식품기업으로 발전했고 유통 및 관광사업의 기반을 마련하며 지금의 롯데그룹으로 성장했다.

창업자인 신격호 총괄회장은 아흔이 넘는 나이에도 몇해전까지만해도 기업 경영을 도맡아 온 것으로 알려질 만큼 롯데 뿐 아니라 우리 경제에 영향력을 미쳐온 인물이다. 지난 정권에서는 숙원사업이었던 ‘제2롯데월드’ 건설의 꿈도 이뤘다.

하지만 두 아들간의 경영권 분쟁 끝에 사실상 불명예 퇴진의 길을 걷게 됐고 급기야 법의 처벌을 받을 수도 있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신격호 총괄회장의 차남인 신동빈 회장은 다소 거친 과정을 거치며 롯데그룹의 리더로 자리를 올라섰다.

일본에서 나고 자란 신 회장은 1981년 노무라 증권에서 일을 시작한 후 1988년 일본 롯데상사에 입사하며 롯데에 첫 입성했다. 이후 1990년에 호남석유화학(현재의 롯데케미칼) 상무로 취임하면서 한국 롯데 경영 일선에 나섰다. 이후 1995년 롯데그룹 기획조정실 부사장을 거쳐 1997년 롯데그룹 부회장에 오르면서 사실상 후계 자리를 굳혔다. 2004년부터 정책본부장을 겸임했고, 이 때부터 케이피케미칼, 한화마트, 우리홈쇼핑, 하이마트 등을 인수하며 롯데그룹을 성장시켜 나갔다. 2011년 2월에 롯데그룹의 회장에 취임했다.

신 회장은 최근 10여년동안 ‘승부사’ 스타일의 경영 감각으로 긴 불황 속에서도 잇따라 대형 M&A를 성사시켜 롯데 그룹을 급성장시켜왔다. 그 결과 최근 롯데는 자산 규모 기준으로 LG와의 격차를 크게 좁히며 재계 4위 자리까지 넘보는 상황이다.

하지만 최근 형 신동주 일본 롯데홀딩스 전 부회장과의 경영권을 둘러싼 다툼이 불거졌다. 이 과정에서 베일에 가려졌던 롯데일가의 지배구조가 속속 노출됐고 그동안 묶혀있던 각종 의혹 등도 수면위로 떠오르게 됐다.

신 회장은 롯데호텔의 상장을 비롯한 지배구조 개선 등 ‘뉴롯데’로 상징되는 혁신 추진의지를 내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 불거진 비자금 의혹과 총수일가를 정면으로 겨눈 사정칼날에 롯데 최고경영인으로 첫 사법처리라는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정점에서 고민에 빠진 검찰

롯데 비리 수사를 추진하고 있는 검찰은 수천억원대 횡령과 배임 혐의로 신 회장의 조사를 마쳤지만 신 회장의 신병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검찰은 지난 20일 신 회장을 불러 18시간에 걸쳐 향해 제기했던 혐의에 대해 전방위적인 조사를 진행했다. 신 회장을 상대로 롯데호텔의 제주·부여 리조트 헐값 인수 의혹 등 공격적인 인수합병 (M&A) 과정에서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를 비롯해 이 과정에서 발생한 손실을 그룹 내 다른 계열사에 떠넘기거나 특정 계열사의 자산을 헐값에 다른 계열사로 이전하는 배임 행위에 대해서도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신 회장은 롯데건설 차원에서 조성된 부외자금의 존재를 전혀 알지 못했다고 진술하는 등 혐의 전반을 부인하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룹 계열사간 자산 이전 거래와 관련한 배임 혐의도 경영상 판단에 따른 것이라며 혐의를 부인하는 취지로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지금까지 드러난 롯데그룹과 신 회장의 혐의에 대한 조사가 마무리된 셈이다.

그럼에도 검찰은 아직 신 회장의 영장청구 여부를 섣불리 결정하지 못하고 아직까지도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최근에는 대검찰청과도 협의를 거쳐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최종 결정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이 같은 고민의 표면적인 이유로 검찰은 롯데그룹이 국가경제 미치는 영향 등 수사 외적으로 고려할 요소가 많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3개월간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킨 대형 재벌 수사의 내부적인 요인도 검찰의 고민을 키운 요인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즉 롯데에 대한 비리 수사가 최종단계에 왔음에도 혐의를 입증할 뚜렷한 무기를 확보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시선이다.

특히 그동안 수사과정에서 검찰이 자신했던 허수영 롯데케미칼 사장과 강현구 롯데홈쇼핑 사장 등에 대한 구속영장이 잇따라 기각된 점도 검찰의 자신감을 크게 떨어뜨린 요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자칫 어설픈 행보로 ‘무리한 수사’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검찰의 자세는 신중에 신중을 더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숨죽인 롯데와 총수일가

롯데는 검찰의 고민을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롯데의 창업주를 비롯한 총수일가 전원의 사법처리라는 초유의 사태에 직면했다. 검찰의 결정에 따라 한국과 일본의 롯데 운명도 크게 요동칠 수 있다.

당장 롯데를 일궈온 총수일가의 명운 뿐아니라 한국과 일본 두 롯데를 하나로 묶은 ‘뉴롯데’를 추진했던 신동빈 회장의 행보가 묶이는 등 기업 경영 전반에도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이에 롯데그룹은 경영안정과 지배구조개선을 위해 신 회장이 불구속된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해달라고 호소하며 검찰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신 회장은 22일 서울 소공동 롯데그룹 본사에 출근해 업무를 소화하고 있다. 신 회장은 지난 6월 검찰의 롯데그룹 압수수색이 시작된 이후 이미 출국해 진행중이던 북미 현지 일정과 일본에서의 활동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행사 참석을 취소했다.

그는 멕시코와 미국 일정을 소화한 뒤 귀국하지 않고 곧바로 일본으로 건너갔다. 신 회장은 일본 롯데홀딩스 정기주주총회에 참석, 자신과 경영권을 두고 다투고 있는 형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62)이 제안한 롯데홀딩스 대표 해임안을 부결시켜 경영권을 지켜낸 뒤 출국 26일만인 지난 7월 3일 귀국했다.

귀국 이후 신 회장은 거의 모든 외부 행사 참석을 취소하고 서울 종로구 가회동 자택과 소공동 롯데쇼핑 본사를 오가며 칩거에 가까운 생활을 해왔다.

경영공백, 최악의 시나리오

롯데가 이처럼 숨죽이고 있는 까닭은 신 회장 경영 공백에 따른 후폭풍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당장 이번 검찰의 고강도 수사와 신 회장의 신병이 불확실해지면서 시장 가치가 추락하고 있다.

2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6월 9일부터 이달 21일까지 롯데그룹 8개 상장계열사(롯데손해보험, 롯데푸드, 롯데제과, 롯데칠성, 롯데케미칼, 롯데쇼핑, 롯데하이마트, 롯데정밀화학)의 전체 시총은 25조424억원에서 23조5278억원으로 쪼그라든 것으로 집계됐다.

검찰의 압수수사가 시작된 지난 6월 10일부터 100일간 시총이 7.38%(1조8747억원)나 줄어든 것이다.

당장 우려하고 있는 대목은 신 회장의 경영권 존립이다. 신 회장이 구속되게 되면 지난해 7월 형제간 분쟁을 거쳐 장악한 한·일 롯데 통합 경영권을 잃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당장 일본 주주들의 신뢰를 잃어 일본인 전문경영인이 이끄는 일본 롯데에 계열사 대표 중심의 한국 롯데가 종속될 가능성마저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신 회장을 대신할 인물이 현재 마땅치 않다는 점이 가장 큰 고민이다. 신씨 총수일가 대부분이 사법처리 대상에 포함돼 대체 경영인으로 부적합하다.

95세 고령의 창업주 신격호 총괄회장의 경우 지난달 말 한국 가정법원으로부터 후견인(법정대리인)이 지정될 만큼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고, 장남 신동주 전 부회장은 2015년 1월 8일 일본 홀딩스 주총을 통해 이사직에서 한 차례 해임된 바 있기 때문에 복귀 가능성이 희박하다.

따라서 일본 롯데는 곧바로 신동빈 회장을 경영진에서 배제하고 일본인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할 가능성이 크다.

일본 경영 관례상 비리로 구속된 임원은 즉시 해임 절차를 밟기 때는다. 이 경우 현재 신 회장과 홀딩스 공동 대표를 맡은 쓰쿠다 다카유키(佃孝之) 사장의 단독 대표 체제가 가장 유력한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신 회장의 대표직을 바로 뺏지 않고 향후 한국 법원의 최종 판결까지 기다려준다 해도, 당분간 일본인 전문경영인 중심의 비상 경영 체제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국 롯데도 신 회장을 대체할 만한 인물이 뚜렷하지 않다. 그룹 2인자였던 고(故) 이인원 부회장은 검찰 소환을 앞두고 이달 초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이 부회장의 뒤를 이을 후진 그룹인 소진세 정책본부 대외협력단장(사장), 노병용 롯데물산 사장, 황각규 정책본부 운영실장(사장)도 모두 비자금 수사와 가습기 살균제 사망 피해 사건 등으로 줄줄이 구속되거나 검찰에 소환되는 처지다. 이에 한국 롯데는 당분간 각 계열사 대표 중심의 경영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롯데 측은 경영 공백으로 결국 신동빈 회장이 주도해온 인수·합병(M&A), 상장 등을 통한 그룹 성장 전략도 제동이 걸릴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지난 6월 롯데에 대한 검찰의 대대적 수사가 시작된 이후, 롯데의 M&A 행진은 완전히 멈춰섰다. 미국 화학회사 ‘액시올’ 인수를 추진하던 롯데케미칼은 6월 10일 인수 의향서를 제출한 지 사흘만에 ‘철회’를 선언했다.

호텔롯데도 해외 면세점 인수 협상을 벌이다가 사정 당국의 수사와 그에 따른 호텔롯데 상장 불발 이후 실무 작업을 접었다.

투명한 지배구조로의 개혁 핵심으로 당초 지난 6월말 목표로 추진됐던 호텔롯데 상장 작업도 사실상 중단된 상황이다. 호텔롯데 상장이 무산되면 롯데는 수조원의 상장 공모 자금 손실 뿐 아니라 ‘일본 기업’이라는 꼬리표도 뗄 수 없게 된다.

이 같은 가정은 그룹 개혁과 신성장동력 비전 및 발전 전략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우려로 이어진다.

롯데그룹 및 재계 등에 따르면 롯데는 당초 식품기업으로 시작해 유통사업으로 기업을 다각화했으며, 현재 그룹의 캐시카우(Cash Cow) 역할을 하고 있는 유통에 관광·레저를 접목시켜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시키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특히 국내 사업뿐 아니라 대형 인수·합병(M&A)을 통한 해외 영토 확장에 초점을 맞췄다. 그룹의 성장을 도모하는 것과 동시에 내수 위주의 기업이라는 꼬리표를 떼어내면서 롯데에 대한 비난 여론도 불식시키려는 계기로 삼겠다는 계획도 쉽지 않아졌다.

롯데그룹의 또 하나의 날개로 자리잡은 석유·화학 분야의 성장도 올스톱됐다. 신 회장은 앞서 지난 5월 우즈베키스탄 수르길 화학단지 완공식에서는 “향후 석유·화학을 유통과 같은 비중으로 키우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특히 지난해 경영권 분쟁 속에서도 삼성 화학 계열사 3곳(현 롯데 정밀화학·BP화학·첨단소재)을 인수해 석유화학부문 수직 계열화를 완성했다. 하지만 검찰의 수사 여파로 롯데케미칼은 성장의 계기가 될 수 있었던 미국 석유화학 회사인 엑시올사 인수 제안을 자진 철회하며 동력이 꺼져버렸다.

재계 관계자는 “‘신격호의 롯데’가 식품·유통이 양대 축이었다면 ‘신동빈의 뉴(New) 롯데’는 트래블리테일(유통+관광)·화학이 양 날개”라면서 “그룹 컨트롤타워 부재시 굵직한 M&A 등에 대한 결단은 유보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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