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 3000여 그루 넘는 은행나무가 자라고 있어

한 해 열리는 은행양 100톤 '은행 털어 대박 난 은행마을’
품위 느껴지는 연륜 있는 집과 나무가 어우러진 풍경
맛난 주전부리 되어주는 은행과 고구마, 밤

[뉴스포스트=최유희 기자] 가을은 하늘에서 시작해서 땅에서 끝난다.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하늘을 바라보며 가을이 왔음을 실감한다. 공중을 울긋불긋 화려하게 물들이는 단풍을 바라보며 가을이 한창임을 느낀다. 그리고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이 카펫처럼 깔리는 땅을 바라보며 곧 가을이 떠난다는 사실을 직감한다. 가을이 공중에서 땅을 향해 달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만끽하기 위해 선택한 곳은 충남 보령시의 청라 은행마을이다.

우리나라 최대 은행나무 군락지

▲ 성미 급하게 벌써부터 잎을 털어내는 은행나무가 있는가 하면, 느긋하게 아직도 초록빛을 띠는 나무도 있다.

보령시 청라면 오서산 자락에 위치한 청라 은행마을에 들어선다. 11월 초임에도 이곳엔 가을이 한창이다. 성미가 급해 이미 은행잎을 떨구기 시작한 은행나무도 있지만 아직도 느긋하게 초록빛을 머금은 은행나무가 많다.

'올해는 더위랑 가뭄 때문인지 은행나무 단풍 시기가 여느 해보다 일주일 정도 더딘 것 같다'고 동네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그만큼 올해는 조금 더 늦게까지 청라 은행마을의 노란 물결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 국내 최대 은행나무 군락지답게 마을 어디에서나 은행나무를 만날 수 있다.

청라 은행마을은 국내 최대 은행나무 군락지다운 면모를 보인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어디로 눈을 향하든 은행나무가 들어온다. 마을에 3000여 그루가 넘는 은행나무가 자라고 있다는 말이 과장은 아닌 듯하다. 어떻게 이곳에 은행나무가 서식하게 된 걸까.

마을에 얽힌 전설이 전해진다. 옛날부터 장현마을(청라 은행마을) 뒷산은 까마귀가 많아 오서산이라고 불렀다. 산 아래 작은 못 옆에는 누런 구렁이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구렁이는 천 년 동안 매일같이 용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천년이 되던 날, 구렁이는 마침내 황룡이 되어 여의주를 물고 승천했다. 오서산 일대의 까마귀들이 이 장면을 지켜봤다. 이후 까마귀들은 먹이를 찾아다니다 노란색 은행을 발견하고는 황룡이 물고 있던 여의주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을로 고이 가져와 정성껏 키우면서 장현마을에 은행나무가 서식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 마을을 걷다보면 은행을 말리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 가을에는 마을에서 은행도 살 수 있다.

전설과는 별개로, 청라 은행마을의 근원을 알려주는 실체도 있다. 바로 신경섭가옥(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91호) 앞의 수령 500여년 된 수은행나무다. 청라 은행마을의 은행나무들은 거의 암나무다. 마을 한 바퀴를 돌고나면 신발 끝에서 풍겨오는 냄새가 이를 증명한다. 500년 된 수은행나무는 청라 은행마을의 수많은 암나무들이 열매를 맺도록 제 역할을 해왔다.

도시에서 미관상 식재하는 은행나무는 열매를 맺지 않는 수나무가 많다지만, 농촌에서는 생업이 목적이기에 열매를 맺는 암나무를 많이 심는다. 한때 마을 사람들은 은행나무를 '대학나무'라고 불렀다. 은행 시세가 좋았을 때는 나무 몇 그루만 있으면 자녀의 대학 등록금을 마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은행의 가치가 그 정도는 아니지만 여전히 청라 은행마을 주민들의 고마운 수입원이다. 청라 은행마을에서 한 해 열리는 은행양만 해도 100톤이 족히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은행 털어 대박 난 은행마을'이라는 애칭이 우스개 얘기만은 아니다.

'사부작사부작' 은행마을 한 바퀴~

▲ 은행마을 둘레길 안내판 폐교된 장현초등학교가 은행마을 녹색농촌체험장으로 변신했다.

청라 은행마을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둘러볼까, 크게 고민할 필요가 없다. 마을 둘레길을 따라 사부작사부작 걸으면 그만이다. 논밭을 따라, 개울을 따라, 흙집을 따라 은행나무들이 툭툭 서 있다. 인위적인 느낌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자연 그대로, '날 것' 그대로의 느낌이다.

그도 그럴 것이 청라 은행마을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은행나무를 식재하고 꾸민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이 은행나무를 많이 심고 키우다보니 단풍 명소로 입소문이 나고 자연스레 여행객들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 고택과 고목이 어우러지는 신경섭가옥은 은행마을의 백미

인위적으로 조성한 관광지가 아닌 지라 대형 주차장이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현재 은행마을 녹색농촌체험장으로 활용되는 옛 장현초등학교나 정촌유기농원 쪽에 차를 세우고 마을 산책을 시작한다. 별다를 것 없는 시골마을 풍광이나, 여기저기 흩뿌려진 은행나무가 가을날의 별다른 풍경을 완성한다.

은행마을의 포인트가 되어주는 곳은 신경섭가옥과 정촌유기농원이다. 그중에도 신경섭가옥이 은행마을의 백미다. 신경섭가옥은 조선후기 한옥으로, 팔작지붕으로 된 사랑채와 안채로 이뤄진다. 고택 주변으로는 수령 100여 년이 넘은 은행나무들이 자리한다. 연륜 있는 집과 나무가 어우러진 풍경에서 품위가 느껴진다.

한눈에 확 담기가 아까워 먼저 담장 너머로 살짝 훔쳐본다. 한 치 밖에서 갈증 나게 바라보는 재미가 있다. 온전한 풍경에 대한 갈증이 극에 달할 때, 마당에 살포시 발을 내딛는다. 마치 한 폭의 단아한 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다. 담장 밖에서 갈증 나게 쳐다보는 풍경도, 마당에서 시원하게 바라보는 풍광도 모두 매력적이다.

▲ 아름드리 은행나무로 둘러싸인 정촌유기농원 마당은 가을날 편안한 휴식처가 되어준다.
▲ 정촌유기농원 마당에는 아기자기한 가을 소품이 가득하다.

정촌유기농원은 또 다른 운치를 선사한다. 너른 마당을 중심으로 작은 생태공원과 한옥펜션, 농촌 힐링 카페 등의 시설이 갖춰져 있다. 아름드리 은행나무들이 폭 감싸 안은 마당은 가을을 느끼기에 그만이다. 나무에 가득 실린 은행잎들이 바람에 살랑거리다 하나둘 떨어지곤 한다.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드는 가을 동안에는 카페에서 간단한 먹을거리를 판매하고 마당에는 작은 농산물 판매장도 마련된다. 정촌유기농원에서 수확한 은행과 고구마, 밤이 가을철 맛난 주전부리가 되어주기도 한다.

▲ 소박한 시골마을이 가을이면 은행나무와 함께 특별해진다.

해마다 10월 말에서 11월 초 무렵 청라 은행마을축제가 열린다. 축제 기간 동안 주행사장인 옛 장현초등학교를 중심으로 다채로운 체험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올해 축제는 10월 29일과 30일에 열렸다. 이미 축제는 끝났지만 아쉬워 할 필요는 없다. 올해 은행 단풍 시기가 늦어지는 바람에 단풍 절정은 지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오히려 11월 첫 주말부터 둘째 주 초 정도가 청라 은행마을의 노란 물결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다는 게 마을사람들의 조언이다.

청라 은행마을을 단풍 절정기에 방문하면 더없이 좋겠지만, 조금 일러도 조금 늦어도 상관없다. 아름드리 은행나무의 무성한 잎들이 샛노란 빛을 띠는 절정의 찰나도 아름답지만, 풋풋한 초록빛에서 노란빛으로 넘어가는 오묘한 순간도, 노란 잎을 바닥에 마구 떨구는 순간도 모두 황홀하기 때문이다.

사진 및 자료제공 한국관광공사

*여행정보

청라 은행마을
주소 : 충청남도 보령시 청라면 오서산길 150-65
문의 : 070-7845-5060

주변 음식점
멍석 : 닭볶음탕 / 청라면 오서산길 149 / 041-934-6457
삼대냉면(그린회관) : 냉면 / 청라면 냉풍욕장길 6 / 041-932-8280
석화촌 : 석화촌정식 / 주포면 밖강술길 15 / 041-932-7003

숙소
은행마을녹색농촌체험 : 청라면 오서산길 150-65 / 070-7845-5060
정촌유기농원 한옥펜션 : 청라면 오서산길 150-32 / 010-5452-8466
웨스토피아 : 보령시 옥마벚길 10 / 041-939-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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