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 장기화 고착, 생산·소비·투자 모두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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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력 상실한 컨트롤타워, 위기대응 무력화
트럼프 등장이 부른 무역전쟁 대응 어쩌나
‘신중론’ 재계, 사정 국면·대미 정책 불안  

[뉴스포스트=최병춘 기자] 한국경제가 안과 밖으로 위기에 봉착했다. 최순실 쓰나미가 휘몰아친데 이어 트럼프 쇼크까지 더해지면서 우리 경제의 위기감은 고조되고 있다.

시급한 경제현안이 산적해 있지만 컨트롤타워로서의 정부 역할에 의문부호가 커지고 있다. 이 같은 불안감은 지역 경제 침체 고착화로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보호무역주의를 내건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대외불확실성은 최고조에 달했다.

이미 벼랑끝 서있는 경제

우리 경제는 지난 3분기까지 네 분기 연속해서 0%대 성장에 머물렀다. 올 초까지만해도 버틸줄 알았던 3%대 경제성장률 전망도 무너진지 오래다. 저성장 장기화 조짐이 현실화되는 분위기다.

지난달 한국은행은 내년 경제성장률을 2.8%로 하향 조정했다. 기존 전망치인 2.9%에서 0.1%포인트 내려잡은 것이다.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기존 수준인 2.7%로 유지했다. 이에 따라 우리 경제는 지난해 2.6%에 이어 내년까지 3년 연속 2%대 성장에 머무르게 됐다. 한은은 현재 구조조정, 삼성과 현대자동차 등 주요 수출기업의 악재 등 한국 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우려요인을 감안했다지만 이마저도 주위에서는 너무 낙관적인 전망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생산, 소비, 투자 3박자 모두 불안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9월 산업활동 동향을 보면 생산 -0.8%, 소비 -4.5%, 투자 -2.1%, 모두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제조업 평균가동률은 71.4%로 1년 전에 비해 3.5%포인트 급락했다. 이는 외환위기 당시 1998년 68.6% 이후 최저치다.

이런가운데 그동안 우리 경제를 떠받쳐왔던 건설투자는 건물건설 선행지표 둔화,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규모 축소 등으로 증가세가 점차 둔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건설수주는 지난해보다 38.6%나 급락했다. 그나마 수출은 세계교역 신장률의 점진적 회복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미국 대통령으로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이마저도 불투명해졌다.

한국 대표 기업으로꼽히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는 대규모 리콜 사태로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고 한때 우리 산업 중추 역할을 했던 조선업과 해운업은 생존을 다투고 있다. 이 과정에서 대규모 실업이 불가피해지면서 고용도 최악의 상황에 봉착했다.

안에서는 최순실 쓰나미

이런 가운데 청와대에서 불어온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는 정치권을 넘어 실물경제에도 위협하고 있다. 국정의 컨트롤타워가 무너지면서 경제정책도 추진 동력도 상실될 위기에 처했다.

당장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커지면서 해법을 제시하더라도 이를 밀고나갈 힘이 부족한 실정이다. 당면한 위기를 단합해 헤쳐나기도 힘이 달릴 판에 이를 진두지휘할 구심점이 없다.

경제팀이 나서 사태를 진정시켜야 하는데 누가 방향키를 잡아야 할지가 모호하다. 청와대는 지난 2일 임종룡 금융위원장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내정자로 임명했지만 야당이 청문회 보이콧 방침을 밝히며 경제사령탑 공백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사실상 경질된 유일호 부총리가 경제팀을 이끌기엔 추진력이 부족하고, 아직 임명이 확정되지도 않은 임 위원장이 앞장 설 수도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이렇다 보니 경제팀이 현안에 집중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부처간 이견이 컸던 조선산업 구조조정, 부동산 규제정책 등의 후속대책이 나와야 하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다. 또 정치권과 협의가 필요한 추진해온 구조개혁도 사실상 올 스톱된 상황이다. 특히 지금은 내년 경제 정책 방향을 결정해야할 중요한 시점이다. 하지만 방향을 제시할 청와대도 이를 실행할 책임자도 모두 사실상 부재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외부의 시선 또한 부정적이다. 최근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기관들은 최근 큰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정치적 사건으로 인해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지만 경제성장률은 위축될 것으로 내다봤다.

씨티그룹은 “실물경제 측면에서 전반적으로 민간심리가 위축되면서 4분기 성장률 둔화 폭이 커지고 경기회복세가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바클레이스 역시 “정치적 불확실성에 따라 당분간 정책의 주안점이 경기안정에 놓일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통화정책 불확실성이 높아지며 내년 1.4분기에 기준금리가 추가 인하될 가능성도 커졌다”고 내다봤다.

밖에서는 트럼프 쇼크

엎친데 덮쳤다. 최순실 사태로 내부가 흔들리고 있는 사이 우려했던 트럼프 쇼크가 밀려들어왔다.

지난 9일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승리한 가운데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대외 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최근의 국내 상황과 결합될 경우 우리 금융시장은 물론 경제 전반에 부정적인 파급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트럼프의 등장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무역의존도가 높은 일본 등 전세계가 우려했던 사건이었다. 트럼프가 대외정책에 있어 현재보다는 보호무역주의 성향과 주요국에 대한 환율 관련 압박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트럼프가 당선됐고 우리 경제의 대외불확실성은 급격히 높아졌다.

금융과 무역 모두 불투명하다. 트럼프는 금융위기 이후 강화돼온 금융규제도 완화하고 대형은행 분할도 반대하는 입장이다. 일각에서는 트럼프의 금융정책이 다소 급진적인 성향으로 진단하고 있다.

특히 금리인상 여부가 주목된다. 트럼프는 금리인상을 반대하면서 옐런 연준 의장 교체까지 거론하고 있다. 금리를 올려 달러화 강세로 가면 자국 기업에 불리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미국의 금리가 인상될 경우 우리의 금리 인상도 불가피하다. 우리 가계부채 부담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

시장의 불안으로 인한 투자위축과 이에 따른 증시 혼란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금융시장만큼 혼란에 빠진 곳은 무역이다. 자국 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보호무역주의를 내세운 트럼프는 무역전쟁까지 선포한 인물이다.

따라서 당장 FTA 파기 등 급진적인 선택을 하기는 힘들지언정 장기적으로는 무역장벽을 높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결국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로서는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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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뜩이나 어려운 한국 수출은 더 힘들어질 수 있다. 세계무역기구(WTO)는 2017년 글로벌 교역증가율이 3.6%에서 1.8%까지 낮아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은 중국에 이어 두번째로 수출시장이다. 우리나라 수출의 약 14%를 차지한다. 게다가 트럼프 당선으로 멕시코 등 중남미 시장(5.2%) 위축 등에 따른 추가 여파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가 인프라 투자를 주장하면서 철강이나 건설, 에너지 업종이 수혜를 받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자국 경제 강화를 핵심으로 내세운 만큼 우리 경제에 얼만큼 영향을 미칠지 미지수다.

반면 우리 주력 수출 업종은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가장 우려되는 산업으로 수출 효자 품목인 전자와 자동차가 꼽히고 있다.

코트라(KOTRA)는 “트럼프 후보 당선으로 공공인프라, 전통에너지, 의료 등과 관련된 국내 산업의 대미 수출기회는 확대되고 철강, 섬유, 자동차, 신재생에너지 산업의 전망은 불투명할 것”으로 진단했다.

우려가 커지자 정부의 움직임도 바빠졌다. 정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후보의 당선과 관련, 한국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범정부적 대응체제를 마련키로 했다.

정부도 트럼프 후보의 당선이 미국 경제정책에 대한 불확실성 확대로 이어져 글로벌 금융시장과 실물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정부는 부총리가 주재하는 경제현안점검회의를 중심으로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등 범정부 대응체제를 가동한다.

정부는 트럼프 당선자 공약에 대한 심층분석을 토대로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예상, 대응방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구체적으로 통상·무역과 관련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인식 제고를 위해 미국 의회와 업계 등을 대상으로 네트워크 강화를 추진한다.

또, 주요 20개국(G20), 세계무역기구(WTO) 등과의 국제공조를 병행해 보호무역 확산 저지에 공을 들일 계획이다. 하지만 최순실 게이트로 현재 경제 컨트롤타워는 흔들리고 있어 제대로 추진될지 불안하다.

불안한 재계

최순실과 트럼프가 몰고온 현재 상황에 경제 주체인 기업들의 불안감은 그어느때 보다 높다.

최순실 게이트의 파장으로 혼란스런 상황에 처한 재계는 트럼프 당선과 관련, 미국 정책 향배와 글로벌 경제 동향 파악에 온 신경을 곧추세우고 있다.

재계는 최순실 게이트에 따른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삼성그룹에 대한 압수수색에다 주요 그룹의 임직원들 소환이 잇따르면서 어수선한 분위기다.

재단 출연금과 특혜의혹으로 재계는 또 다시 사정 국면에 접어들었다. 검찰이 최순실 의혹과 관련해 참고인 신분으로 한진그룹, 현대자동차그룹, LG그룹, CJ그룹, 롯데그룹, 한화그룹, SK그룹 등이 조사 대상에 오르고 있다.

특히 지난해 7월 박 대통령과 총수가 독대를 한 것으로 알려진 7개 대기업 총수에 대한 소환 조사 이후 검찰 수사 방향이 어떻게 이동할지도 주목하고 있다. 검찰이 포괄적 뇌물수수를 적용하게 된다면 피해자 위치에 있던 기업이 다시 처벌대상으로 바뀔수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이라는 또하나의 큰 ‘불확실성’에 직면, 안팎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수출의존도가 높은 국내 기업들의 경우 트럼프의 정책 분석과 행보 파악에 전력을 쏟고 있다.

트럼프가 당선소감을 통해 국제사회에 “공정하게 대할 것”이라고 밝히는 등 후보시절보다는 다소 중립적 자세를 취하면서 불안감이 다소 줄어들긴 했지만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 모습이다. 재계에서는 일단 지켜보자라는 ‘신중론’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재계 한 관계자는 “당장에 대통령이 됐다고 대응책이 바로 바뀌는 건 아니다”라며 “지속적으로 경영활동을 하는 거고 큰 틀의 정책들은 나왔지만 실제로 적용이 되려면 취임한 후 자세한 게 나와야 구체적인 안을 세울 수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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