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사진=뉴시스)

법률기술자·공작달인 오명 속 승승장구

초원복집·탄핵 등 위기에도 건재 과시

말바꾼 김 실장, 특검 진실게임 본격화

[뉴스포스트=최병춘 기자] 최순실 사태로 정국이 급변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에 몰리면서 다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이름이 수면위로 올라왔다. 최순실 국정농단의 실체 파악에 나선 국회 청문회 위원들도 길이 막혔다. 대통령을 대상으로 수사를 펼칠 특별검사도 가장 어려운 수사로 꼽았다. 일각에선 그의 정치적 명석함과 법 전문가로서의 위기관리 능력이 이번에도 발휘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여러번의 위기에도 아직까지 무너진 적 없던 김기춘 전 실장이 쏟아지는 집중포화에서 이번에도 빗겨갈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난 7일 국회에서 열린 3차 최순실 국정농단 청문회. 국정조사특위 위원들의 질문이 한 노신사에 쏟아졌다. 불과 얼마전까지 청와대에서 ‘왕실장’으로 불렸던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다. 이날 김 실장에 그동안 제기된 의혹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지만 대답은 ‘아니다’와 ‘모른다’로 모아졌다.

국정농단 사태 몸통 의혹, ‘모르쇠’ 일관

일각에서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김 전 실장이 ‘몸통’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은 “김 전 실장을 통해 최순실씨를 알게 됐다”고 진술했고 차은택씨는 “송성각 전 한국콘텐츠진흥원장을 김 전 실장에게 소개했다”고 말했다. 또 2014년 권오준 포스코그룹 회장 선임에 개입한 것은 물론 최순실 사업에 걸림돌로 우려된 문체부 1급 인사 조치에도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최근 보도된 고(故)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비망록이 공개되면서 언론과 시민단체를 이용한 여론조작과 정윤회 문건 유출사건 축소·은폐,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 사법부 길들이기 등 김 전 실장이 국정농단 사태에 전방위적인 개입을 했다는 의혹이 짙어지고 있다.

하지만 김 전 실장의 대응은 일관 됐다. 비선실세 최순실씨와 인연도 “알지 못한다”고 전면 부인했고 박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의 진실에 대해서도 “나는 모른다”고 일축했다. 최근 김영한 전 민정수석이 남긴 비방록에 담긴 김 전 실장의 언론 통제와 여론 조작, 인사권 남용이 의심되는 내용에 대해서도 전면 부인했다.

하지만 태도는 이전과 많이 달랐다. 발언의 내용은 일관된 ‘부인’이었지만 자세는 낮췄다. 과거 ‘왕실장’ ‘기춘대원군’ 등으로 불릴 만큼 위세가 당당했던 모습과는 다른 생경한 풍경이 펼쳐졌다.

김 전 실장은 국조위원들의 질타에 “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라는 입장을 되풀이하면서도 “죄송합니다”라고 자세를 낮추는 것을 잊지 않았다.

여권에서는 이날 청문회 발언과 행동으로만 보면 김 전 실장의 발언은 ‘거짓말’이거나 ‘무능’을 증명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국민의당은 청문회 바로 다음날인 8일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전날 국조특위 청문회에서 ‘모른다’는 대답으로 일관한 것과 관련해 “김 전 실장은 사법처리를 피하기 위해 바보멍청이의 길을 택했다”고 힐난했다.

손금주 국민의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지난 40년간 자행한 공작정치로 역사의 죄인이 됐다”며 “지켜야할 명예가 있을 리 없으니 자존심도 없이 자기안위만 생각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김 전 실장은 ‘청와대 왕실장’이라 불리면서 권력을 휘둘러왔다. 그런데 이제 와서 김 전 실장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은 확실한 위증이다. 특검은 반드시 김 전 실장의 혐의를 밝혀야 한다”며 “김 전 실장은 역사의 죄인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고 위증을 하는 파렴치범”이라고 규정했다.

박완주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도 같은 날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국정농단에 시종일관 모르쇠로 일관하며 본인이 무능한 비서실정이었다고 코스프레를 했다”고 김 전 비서실장을 비난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도 김 전 실장의 청와대 발언에 대해 “김 전 실장은 유리한 사실을 철저히 기억하고 불리한 일은 잊는 초능력을 가진 것 같다. 그래서 40년 해온 일에 최소한의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 것 같다”며 “법률 미꾸라지답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일은 모른다거나 그런 사실이 없다고 했다”고 김 전 실장을 비난했다.

사실상 여권에서는 김 전 실장의 이 같은 태도에 대해 검찰 수사에 대비한 ‘계산된 무능 전략’이라는 해석을 내놓은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우)과 김기춘 전 비서실장(사진=뉴시스 제공)

사정기관 검은 손, 공작정치 달인

당초 김 전 실장에 쏟아진 의혹을 규명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김 전 시장은 강력한 사법기관 장악력을 보여온 행정가이자 법률 전문가인 동시에 우리 현대사의 큰 변곡점에서 이른바 공작정치의 달인이라는 비판적 평가를 받아 온 인물이다.

또 박정희 전 대통령부터 시작된 박씨 정권의 오랜 인연도 김 전 실장을 설명하는 주요한 축이다.

김기춘 전 실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인 박정희 정권 시절 잘 나가는 공안 검사로 먼저 이름을 알렸다.

1960년 서울대 법대 3학년생으로 사법시험에 합격한 김 전 실장은 대학 졸업후 정수장학회의 전신인 5.16 장학회의 장학생으로 박씨 정권과 인연을 시작했다.

당시 정권의 핵심 인물이었던 신직수 전 법무장관의 인연도 박정희 정권과 더욱 가까워지는 계기가 됐다.

신 전 장관이 법무부 장관, 중앙정보부장 등 제 3공화국의 요직을 거치는 사이 공작정치로 의심받는 사건인 민청학련, 인민혁명당, 장준하 의문사 등을 처리했다. 당시 신 전 장관을 보좌한 인물이 검사로 재직하던 김 전 실장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이 후 김 전 비서실장이 1972년 불과 32살의 나이로 유신헌법 초안 작성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존재를 알리기 시작했다. 김 전 실장은 당시 TV에 출연해 유신헌법 해설까지 맡았다. 그리고 김 전 실장은 이례적으로 4기수를 앞질러 법무부 과장으로 승진한다.

이듬해 중앙정보부로 자리를 옮긴 김 전 실장은 1974년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육영수 여사를 저격한 문세광으로부터 자백을 받아내며 박정희 정권에서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굳히게 된다.

특히 당시 사건은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어머니의 원수를 갚아준 은인이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은 당시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김똘똘’이란 별칭을 붙일 정도로 신임을 보였다. 김 전 실장은 공안검사로 승승장구 했다. 문제는 공작 사건과도 꾸준히 연루됐다는 점이다. 1974년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으로 승진한 김 전 실장은 이듬해 고문을 통한 허위 자백을 받은 조작사건으로 판명된 ‘학원 침투 북괴 간첩단’ 사건을 맡기도 했다.

승승장구하던 김 전 실장은 10.16사건으로 박정희 정권이 막을 내리면서 첫 위기를 맞는다. 국군보안사령부 축소시킨 일로 김 전 실장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눈 밖에 나면서 옷을 벗어야 될 위기를 맞이하지만 당시 정권 실세였던 박철언의 도움을 받아 모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김 전 실장은 노태우 정권이 들어선 1990년 검찰총장을 거쳐 1991년 법무부 장관까지 오르며 승승장구 한다. 그리고 이른바 ‘우리가 남이가’라는 유명한 발언을 남긴 선거여론 조작사건인 ‘초원복집 사건’으로 또 다시 위기에 몰리게 된다.

‘초원복집 사건’은 지난 1992년 제 1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김 전 실장은 부산 지역 기관장들을 모아 김영삼 당시 민자당 후보 당선을 위해 지역감정을 부추기자고 모의한 사건이다. 당시 통일국민당의 정주영 후보측에서 도청으로 세상에 알려지며 당시 김 전 실장도 징역 1년이 구형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리게 된다.

하지만 지난해 불거진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과 비슷한 양상이 벌어지며 김 전 실장이 위기를 넘기는 상황이 벌어진다.

당시 기관장들의 여론조작 보다 불법도청으로 사건의 초점은 옮겨졌다. 이후 자신에게 적용된 ‘표현의 자유와 참정권’을 제한하고 있다며 헌법재판소에 위헌 신청을 제기, 결국 위헌 결정을 받아내며 처벌을 면했다.

이 후 다시 김 전 실장의 이름이 세간에 오르게된 것은 노무현 정권 시절이다. 당시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으로 법사위원장을 맡았던 김 전 실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며 다시 주목받았다.

하지만 탄핵 역풍을 이기지 못하고 2008년 총선에 낙천하면서 역사에서 사라지는 듯했던 김 전 실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손을 잡으면서 다시 부활하게 된다.

2007년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될 당시 김 전 실장은 박 후보의 법률지원단장을 맡아 다시 부상했다. 이후 2012년 대통령선거 때 박 대통령을 지원하는 원로들의 모임인 7인회 멤버의 좌장 역할을 맡았다. 이듬해 2013년 박근혜 정권 두 번째 비서실장에 이름을 올리면서 다시 권력의 정점에 서게됐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사진=뉴시스)

철옹성 같던 방패, 말바꾸기 균열

하지만 순탄히 정치 인생을 마무리 할 것 같던 김 전 실장에게 최순실 사태 최대 위기로 다가왔다.

이번 청문회에서 난공불락처럼 보였던 김 전 실장이 일관한 ‘모르쇠’ 입장도 허점을 보이며 균열의 빌미를 제공했다.

그동안 일관되게 ‘최순실을 모른다’던 김 전 실장이 청문회 막판 제시된 증거에 말을 바꾼 것이다.

지난 7일 청문회에서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정윤회 문건 보고서’에 최순실이 정윤회의 처로 기록돼 있다고 지적하고 최순실 관련 설명이 흘러나오는 2007년 한나라당 후보 검증 청문회 영상을 제시했다.

박 의원은 “"(박근혜 대선캠프의) 법률자문위원이던 김 전 실장이 최순실을 몰랐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하자 김 전 실장은 “최순실이란 이름은 이제 보니까 내가 못 들었다고 말할 순 없다”고 답한 것이다.

최근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진 뒤에야 최순실의 존재를 알게 됐다고 이날 청문회 도중 밝혔다가 약 6시간만에 말을 바꾼 것이다. 김 전 실장은 그러면서도 “그러나 최순실을 알지는 못 한다”며 “최순실이란 사람과 접촉은 없었다”며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하지만 야권에서는 김 전 실장의 발언이 거짓말임을 규명하는데 한발 다가선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또 김 전 실장에게는 특별검사라는 벽도 남아있다. 박영수 특검은 김기춘 전 실장에 대한 수사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앞서 박영수 특검이 “정윤회 문건유출사건을 다시 들여다보겠다”고 밝힌 만큼 김 전 실장이 수사를 피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박 특검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양재식 특검보는 세월호 7시간 의혹을 비롯해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우병우 전 민정수사 수사 등을 살펴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번 국정조사를 눈여겨 본 특검 또한 결국 김 전 실장의 ‘모르쇠’라는 철벽을 어떻게 뚫어내느냐가 수사의 시작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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