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지주 저축은행 인수 속사정

[뉴스포스트=도기천 기자] 삼화저축은행 사태로 촉발된 주요 금융지주회사들의 저축은행 인수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서민금융으로 대표되는 저축은행이 제1금융권으로 넘어갈 경우 금융권 전반에 지각변동이 불가피하다. 저축은행 인수 이면에는 현 정부의 금융정책과 맞물린 말못할 정치적 배경도 회자되고 있다. 한편에서는 부실자산이 쌓인 저축은행 인수에 나섰다가 수익성이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과연 제1금융권의 저축은행 떠안기가 ‘노른자위’ 서민금융사업 진출의 청신호가 될지, 또다른 부실을 불러올 ‘폭탄돌리기’가 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그 속으로 들어가 봤다.

부실덩어리 저축은행 ‘브랜드 가치’로 정상화?

주요 금융지주회사들의 저축은행 인수 움직임은 삼화저축은행 사태가 터지기 전부터 예견돼 왔다. 연초에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금융기관 신년인사회에서 “저축은행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 처리 방향에 대해 결심이 서 있다”며 “취임 후 금융권 인사들과 만나 의견을 나눴다”고 말했다.

이에 화답하듯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며칠 뒤 “저축은행 1~2곳을 인수하겠다”고 밝혔다. 정부 지분이 절반 이상인 우리금융에서 이같은 입장을 밝힌 것은 사전에 당국과 교감이 있었다는 분석이다.

신한금융지주와 하나금융 역시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해 조건이 맞는 곳이 있으면 인수를 검토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전에도 금융지주회사들은 저축은행 인수에 관심을 보였으나 제2금융권까지 넘본다는 부정적인 시각에다 국제 금융위기까지 겹치면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는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취임하면서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진 것.

주요 금융지주회사들이 저축은행 인수에 나선 배경에 대해 은행권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입김이 작용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저축은행이) 은행과 고객층이 다르기 때문에 시너지 효과가 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인수 배경 ‘말못할 사정’ 있다?

우선 저축은행 인수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우리금융지주. 우리금융은 여러 지역 지점을 둔 자산 1조원대 규모의 저축은행을 인수, 올해 안에 전국 네트워크를 갖춘다는 계획이다. 올 상반기 중에는 삼화저축은행을 포함, 부실저축은행 1~2곳의 인수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우리금융 관계자는 “저축은행 문제가 국내 금융시장 안정에 중요한 과제인만큼 책임감을 갖고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는 중”이라고 전했다.

신한금융과 하나금융도 삼화저축은행 등 부실 저축은행 인수전에 본격적으로 뛰어 들었다.
우리금융을 비롯, 신한금융과 하나금융은 25일 예금보험공사(예보)에 인수의향서(LOI)를 제출, 삼화저축은행 입찰에 참여했다. 다만 KB금융지주는 이번 인수전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금융지주사들이 부실덩어리 저축은행을 인수하려는 데는 ‘말못할 배경’을 차지하고서라도 예금과 대출 사이에서 발생하는 예대 마진의 유혹을 떨쳐버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

현재 제1금융권의 예대마진은 주로 주택담보대출에 의존하고 있는데, 예금이자율이 3~4%인 상황을 감안할 때, 주택담보 대출금리가 5~6%로 예대마진이 2% 안팎에 불과한 실정.

정부가 부동산 활성화방안의 일환으로 저금리 정책기조를 유지하면서, CD연동 대출금리를 인위적으로 조정하고 있기 때문에 대출이윤으로는 남는 게 없다는 것이 금융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따라서 사실상 적자 상태에 놓인 예대마진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현재 예대마진이 5%를 넘는 저축은행으로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다는 것. 실제로 현재 금융지주사 중 유일하게 저축은행을 자회사로 둔 SC금융지주(SC저축은행)는 신용등급, 선순위담보 등의 이유로 대출이 어려운 고객을 SC저축은행으로 유도, 짭짤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또 금융지주사들은 자구책으로 캐피탈사를 통한 제2금융권 저신용자 대출을 시도하고 있지만, 중간수수료 부담 및 캐피탈사를 끼고 있다는 부정적 이미지 등을 고려할 때, 차라리 저축은행 인수로 직접 서민금융사업에 나서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이다. 여기에 대출이자가 연10% 초반에 육박하는 새희망홀씨대출, 미소금융 등 저신용자 대출시장도 무시하기 힘든 유혹이다.

우리금융 관계자는 “부실 저축은행을 프리미엄없이 싸게 사서 경영을 정상화시킨다면 수익 창출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브랜드, 체계적 리스크 관리 노하우, 우수한 보유 인력을 통해 저축은행을 잘만 경영하면 시너지 효과가 클 것”이라고 분석했다.

‘혹’ 떼려다 ‘혹’ 붙일수도

하지만 일각에서는 대형 금융지주회사 계열의 저축은행들이 낮은 금리로 대출을 해줄 경우 서민들에게는 도움이 되겠지만 기존 저축은행의 경쟁력을 더욱 약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또 공적자금 투입을 둘러싼 논란도 일고 있다. 지주사들은 당국에게 공적자금 투입을 통해 부실 자산 매입을 요구하고 있다. 실제로 예보는 저축은행 인수의 방향타가 될 삼화저축은행의 순자산부족분에 대해 예보기금을 투입할 예정이다. 예보는 입찰을 받은 후, '최소비용 원칙'에 따라 예금보험기금 출연금 투입 비용이 가장 적게 들어가는 인수제안서를 낸 후보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할 계획이다.

하지만 금융지주사들이 큰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부실 저축은행을 떠안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결국 국민 세금으로 부실자산을 털어낸 저축은행을 시중금융지주사들이 싸게 사들이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인수주체인 금융지주사들의 출혈로 인해 자칫 금융시장 전체의 체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금융지주 모두 저축은행 인수로 인한 신용등급 저하를 막기 위해, 저축은행 인수 후 자회사로서 키우기 위한 추가 자본투입이 예상된다. 자칫 막대한 자본을 투자해놓고도 저축은행이 정상화되지 않는다면 ‘혹 떼려다 혹 붙인 격’이 된다.

여기에다 저축은행 업계가 처한 부실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문제도 당분간 쉽게 해결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많은 상황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노조도 인수를 반대하고 있고 무디스 등 신용평가사들도 우려하고 있어, 시중은행들은 장기적인 크레딧에 영향을 어떻게 줄지를 고민할 수 밖에 없고 인수 물건도 이 같은 틀에서 고를 수 밖에 없다”며 “보다 근본적인 저축은행 업계의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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