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신현지 기자] 영화감독 에브리힘 골레스턴과 이란 여성 시인 포루그 파로흐자드(1935~1967)에 대한 사랑 이야기가 화제다.

지난 반세기 동안 침묵으로 일관하며 영국의 웨스트 서섹스에서 은둔생활을 해온 94세의 남자가 13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50년만에 처음으로 사랑했던 옛 연인에 대해 입을 열었다.

파로흐자드는 1967년 31세의 나이에 사고로 세상을 떠난 시인이다.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라는 시집으로 국내에 처음 소개됐던 그녀는 미국 여성시인 실비아 플래스(1935~1967)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고 또 실비아 플래스와 같이 그녀 역시 30대 초반에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공통점 때문에 '이란의 실비아 플래스'로 불렸다. 현대 페르시아 문학에서 여성시인으로 이란 사회의 가부장적 한계에 도전하는 솔직한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골레스턴은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그녀가 없는 수많은 세월 동안 후회하고 있다. 그것만은 분명하다"며 "우리는 매우 가까웠지만, 내가 얼마나 그녀를 느꼈는지는 측정할 수가 없다.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1950년대 후반 골레스턴은 두 친구가 그에게 일자리를 구하고 있는 파로흐자드를 소개시켜주면서 만나게 되었다. 당시 그는 테헤란 북부의 풍요로운 지역인 다로우스(Darrous)에서 유명한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었고 골레스턴은 파로흐자드가 그곳에서 일할 수 있게 했다. 당시 골레스턴은 이미 결혼한 상태였고 파로흐자드는 16세 때 결혼했다가 4년만에 남편과 헤어진 상태였다.

골레스턴은 당시 자신이 아내와 파로흐자드를 모두 사랑했다고 말했다. 그는 “4명의 자녀가 있다고 상상해봐라. 다른 아이들을 좋아하기 때문에 한 명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지 않나. 그들 모두에게 감정을 느낄 수 있듯이 두 사람(파로흐자드와 그의 아내)에 대해서도 그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파로흐자드는 1967년 2월 13일 지프차를 타고 가던 중 맞은 편에서 오는 스쿨버스를 피하려다가 사망했다. 골레스턴은 파로흐자드가 죽고 몇 년 뒤 팔레비 국왕의 독재를 피해 이란을 떠났다. 이후 그는 1975년부터 영국 웨스트 서섹스에 살면서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이란 학자이며 파로흐자드와 친분이 있었던 파르자네흐 밀라니는 최근 파로흐자드가 골레스톤에게 쓴 그동안 공개되지 않은 편지들을 포함한 책을 출판했다.

파로흐자드가 죽기 1년 전 파로흐자드는 골레스턴을 향한 지극한 사랑을 드러냈다. “당신은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자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이예요. 사랑해요. 당신이 갑자기 사라진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두려워할 정도로 당신을 사랑해요. 나에게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는 텅 빈 우물 같이 되어 버릴 거예요.”

이란의 시인이자 펜실베니아대학의 현대 페르시아 문학 교수인 파테메흐 삼스는 파로흐자드의 시는 반항적이라고 말했다. 또 파로흐자드는 모든 경계를 초월하는 수치심 없는 사랑을 시로 썼다"고 말했다.

작가이자 영화제작자인 골레스턴과의 관계는 파로흐자드가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을 쓴 기간과 일치했다.

파로흐자드에 대해 광범위하게 저술한 메흐디 자미는 “영화 제작자(골렌스턴)는 파로흐자드의 글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면서 “파로흐자드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한 사람의 이름을 밝히기를 원한다면 의심할 여지없이 골렌스턴이다. 그들은 적절한 순간에 서로 만났다”라고 말했다.

골렌스턴은 옛 연인에 대해 "그녀는 스스로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미쳤다"며 "생산적이지 못한 상태에 있는 그녀를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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