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털기·고무줄잣대 등 재도개선 목소리 이어져

지난달 31일 이낙연 국무총리 임명동의안이 상정된 국회 본회의장 모습(사진=최병춘 기자)

2000년 첫 청문 이후 30여명 청문회 낙마

부동산투기·위장전입·코드인사 등 낙마사유

여야 힘겨루기 전락, 신상털기식 청문 비판

본래 취지 강화, 소모적 논란 개선 목소리

[뉴스포스트=최병춘 기자] 문재인 정부도 첫 내각 구성과정에서 인사청문회 진통을 피하지 못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제1야당의 강력한 반발에도 우여곡절 끝에 국회 인준을 받아 임명됐다. 이후 김동연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 후보자를 제외하면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강경화 외교부장관,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등은 인사청문회 대상 모두가 야당의 반발에 부딪혀 임명에 난항을 겪고 있다.

고위공직자에 대한 국민의 알권리 보장과 투명한 검증의 중요성은 거듭 강조되고 있지만 인사청문회를 둘러싼 논쟁과 논란은 매 정권 마다 반복되고 있다. 이번 문재인 정부에서도 야당의 발목잡기식 청문이라는 비판과 함께 정부여당의 무리한 일방적 인사라는 지적이 오가고 있다. 이와 함께 소모적 논란을 해소하기 위한 인사청문회 제도 개선 요구도 또 다시 반복되고 있다.

 

17년차 인사청문회, MB정부 낙마 최다

 

지난 2000년 제16대 국회에서 ‘인사청문회법’이 제정되면서 우리나라에 인사청문회 제도가 도입됐다. 인사청문회는 대통령이 행정부의 고위 공직자를 임명할 때 국회의 검증절차를 거치게해 행정부의 일방적 인사권한을 견제하는 제도적 장치다. 이에 인사청문회에서는 고위 공직에 지명된 사람이 공직 수행을 위해 적합한 업무능력과 인성적·도덕적 자질을 갖췄는지를 국회에서 검증하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 6월 이한동 당시 국무총리 후보자를 상대로 한 청문회가 첫 시작이었다. 노무현정부 출범 직전인 2003년 1월에 법개정을 통해 국가정보원장과 검찰총장, 국세청장, 경찰청장 등 이른바 ‘4대 권력기관장’을 인사청문 대상에 포함됐다. 이어 2005년에는 각 부처 장관 등 국무위원과 헌법재판소 재판관, 중앙선거관리위원장, 2012년 2월에는 공정거래위원장, 금융위원장, 국가인권위원장, 한국은행 총재 등이 국회 인사청문 대상으로 추가 확대됐다. 현행 인사청문회 대상이 되는 고위공직은 61개다.

하지만 인사청문회가 실시된 이후 대상 범위가 확대되면서 공직후보자에 대해 국회 검증 과정에서 드러난 비리 의혹 등은 논란으로 이어졌고 정치 쟁점화됐다. 또 국회동의 대상이 아니면 부적격 시비에 휘말려도 대통령이 강행하면서 야당 또 낙마와 그 사유의 경중에 따라 정권별 ‘인사참사’라는 오명을 안기도 했다.

최근 바른사회시민회의가 발행한 ‘인사청문회 도입 이후 낙마사례와 유형보고서’에 따르면 역대 정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낙마한 인사는 약 30명에 달한다.

정권별로 보면 낙마한 공직 후보자는 이명박 정부가 12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박근혜 정부 10명, 노무현 정부 6명, 김대중 정부 2명이었다.

인사청문회 제도가 처음 도입됐던 김대중 정부에서는 청문 대상이 상대적으로 제한적이었지만 국회의 검증 벽은 높았다.

지난달 24일 당시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가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참석한 모습(사진=최병춘 기자)

인사청문 제도를 거치지 않았음에도 야당의 반발로 6개월 가량 김종필 국무총리 임명에 어려움을 겪었던 김대중 정부는 이후 장상과 장대환 두 국무총리 후보자가 청문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낙마했다. 김대중 정부 임기 말인 2002년 7월 첫 여성 총리 후보로 지명됐던 장상 전 이화여대 총장은 청문회 과정에서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아들의 이중국적 의혹 등으로 집중 공세를 받았다. 결국 임명동의안은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 의원 244명 중 찬성 100표, 반대 142표, 기권 1표, 무효 1표로 부결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어 장대환 매일경제 회장을 총리 후보로 다시 임명했지만 장 회장 역시 부동산 투기 의혹과 자녀의 강남 위장전입 의혹 등으로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 의원 266명 중 찬성 112표, 반대 151표, 기권 3표로 과반 찬성을 얻지 못하고 낙마했다.

국무위원 등으로 청문대상이 확대된 노무현 정부에서는 총리 낙마 사례는 없었다. 하지만 낙마 사례는 크게 늘면서 인사청문회가 본격적으로 쟁점화된 시기이기도 하다.

당시 강동석 건교부 장관 후보자를 비롯해 김병준, 이기준 두 교육부총리 후보자, 윤성식 감사원장 후보자, 이헌재 경제부총리 후보자, 전효숙 헌법재파소장 후보자 등이 부동산 투기, 위장전입부터 코드인사 논란, 자녀 병역면탈, 세금탈루 등 다양한 이유로 고배를 마셨다.

참여정부 당시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은 야당의 반대로 국회에서 청문보고서 채택을 받지 못했지만 노 전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당시에는 가장 많은 낙마자가 발생했다. 당시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는 재산축소신고, 관용차 사용, 도청직원 가사도우미 활용, 박연차게이트 연루 의혹에 거짓해명을 이유로 낙마했다. 이밖에 김병화 대법관 후보자, 남주홍 통일부 장관 후보자, 박은경 환경부 장관 후보자,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이춘호 여성부장관 후보자, 이재훈 지식경제부장관 후보자, 조용한 헌법재판관 후보자,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 청선관 검찰총장 후보자 등이 2개 이상의 문제과 논란으로 낙마했다.

박근혜 정부는 전 정권인 이명박 정부보다 낙마자 수는 좀 줄었지만 ‘인사참사’라 불릴 만큼 파장은 컸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 낙마를 시작으로 장·차관급 고위공직자 후보들이 청문회 장에 서지도 못한 채 줄지어 사퇴했다.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와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황철주 중소기업청장 내정자, 김학의 법무부 차관 내정자 등이 박 전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13년 3월 줄줄이 낙마했다.

청문회 비극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다음해 안대희·문창극 총리 후보자 낙마로 이어졌다. 청문회 문턱을 넘겻지만 윤진숙 전 해양수산부 장관은 자질 부족 논란 끝에 결국 사퇴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인사수석실을 신설하는 등 청와대의 인사검증시스템을 개선했지만 이후에도 크고 작은 인사 사고에서 벗어나진 못했다.

 

7일 국회에서 열린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사진=최병춘 기자)

정권·후보자마다 다른 인사기준 ‘고무줄 잣대’ 논란

 

특히 검증 잣대 낙마사유를 유형별로 보면 부동산 투기가 14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위장전입(8건) ▲세금탈루 등 재산 부당 축재(8건) ▲논문표절(5건) ▲병역면탈(4건) ▲경력논란(3건) ▲거짓해명(3건) 등의 순으로 조사됐다. 코드 편중인사, 전관 예우 논란, 쌀 직불금 부당수령, 연구비 유용, 저작권법 위반, 음주운전, 부인 관용차 사용 등도 낙마 사유로 꼽혔다.

낙마 사유 유형으로 가장 흔한 부동산투기, 세금탈루, 위장전입, 논문표절, 병역면탈 등 5가지는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시절부터 고위공직자 배제 원칙으로 꼽은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같은 기준은 정권별 또는 후보에 따라 상대적으로 적용됐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어떤 후보는 위장전입과 같은 현행법 위반이 아니더라도 과거에 했던 발언이나 코드 인사라는 이유로 낙마했고, 현행법을 위반했더라도 임명된 경우가 있었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 시절이던 2009년 현인택 전 통일부 장관의 경우 부친 재산의 편법증여, 배우자의 국민연금 미납, 논문 중복 게재, 자녀 위장전입 등의 논란이 있었지만 장관에 취임했다. 반면 남주홍(통일부)·이춘호(여성부)·박은경(환경부) 등 장관 후보자들은 부동산 투기와 위장 전입 등의 이유로 하차했다. 신재민(문화체육관광부)·이재훈(지식경제부) 후보자 등도 비슷한 사유로 도덕성 논란이 불거지면서 낙마했다.

인사검증 과정에서 인사 검증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의혹의 정도가 상대적인 경우가 많아 정권마다 운 좋게 임명되거나 또는 반대로 불행하게 낙마하는 사례도 나오면서 ‘고무줄 잣대’ 라는 비판이 뒤따랐다.

특히 최근 문 대통령이 제시한 인사원칙 논란과 야당의 반발이 맞물리면서 이 같은 논란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

이에 바른사회는 보고서를 통해 “문 대통령 스스로 5대 비리 인사 배제원칙을 천명한 만큼 고위 공직 후보자 누구에게나 객관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인사 검증 기준을 제정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도 지난달 29일 인사청문 기준 논란이 일자 “준비 과정을 거칠 여유가 없었던 데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에 대해 야당 의원들과 국민들께 양해를 당부드린다”며 고위공직 후보자들의 잇따른 위장전입 논란과 관련해 구체적인 인사기준 마련을 지시하기도 했다.

 

지난달 3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정세균 국회의장이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을 상정하자 이 후보자 지명 철회를 요구해온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반발하며 회의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사진=최병춘 기자)

'불가피한 검증' '신상털기' 해묵은 과제

 

이와 함께 인사청문회가 무리한 정치공세라는 비판과 불가피한 검증이라는 입장 대립도 반복돼왔다. 국정 시행 능력이나 종합적인 자질보다는 신상털기식, 여론 재판식 여론이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무리한 의혹제기는 물론 후보자 본인은 물론 가족의 신상정보까지 과도하게 공개되면서 과도한 신상털기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9년만에 정권이 교체됐지만 여야 공수 위치만 바뀌었을 뿐 소모적 공방은 여전하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 2014년 잇따른 국무총리 후보자 낙마 사태를 겪자 박 전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국회도 인재들이 나라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데 있어 현행 인사 청문회 제도에 개선할 점이 없는 지를 짚어보고,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제도 개선 방안을 모색해 주시기 바란다”며 ‘신상털기식’ 인사청문 관행을 바꿔달라며 정치권에 요구하기도 했다. 야당이었던 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은 “국민들은 대통령이 인사실패에 대해 사과하고 총리 유임 배경을 설명하기를 기대했지만 대통령은 사과는 커녕 남 이야기하듯 국민과 제도만을 탓하고 있다”며 “인사청문제도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고 대통령의 안목이 문제”라고 비판했다. 지금 정국 상황과 위치만 바뀌었지 매우 비슷한 모습이다.

이에 지난달 28일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는 정부여당이 ‘5대 인사원칙’ 기준 논란으로 청문회 난항을 겪자 “2000년 인사청문회 제도가 도입되면서 공직 후보자의 도덕성과 자질을 한층 높이는 긍정적인 효과가 컸지만 개인 신상털기라는 부작용도 많았다”며 “우리 민주당도 이명박·박근혜 대통령 시절 과하게 공세를 편 것도 살펴보게 됐다”며 자성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목소리만 큰 제도 개선 행보

 

같은 문제가 반복적으로 제기되면서 청문회에 대한 개선 목소리도 이어져왔다. 정치문화 개선 뿐 아니라 본질적으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미국처럼 고위공직자 인선 발표 전 철저한 사전검증을 거쳐 본 청문회에서는 후보자의 정책 검증에 주력해야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이를 위해 사전검증 자료 요청 강화, 인사청문요청안 부속서류 첨부 의무화 등 인사청문제도 강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바른사회는 보고서에서 “‘선지명, 후검증’이라는 인사관행을 타파해야 한다”며 “대통령이 후보를 지명하기 이전 청와대 차원에서 철저한 인사검증이 이루어져야 하고 이 인사 검증 자료는 국회 청문회 요청 시 제출해 기본적인 사항은 지명단계에서 걸러져야 한다”고 인사논란 해소 방안으로 제시했다.

또 신상털기식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도덕성 검증을 비공개로 정책 검증과 분리해 청문회를 실시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국회는 인사청문회와 관련한 법 개정을 꾸준히 추진해왔다. 20대 국회에서 현재 계류중인 인사청문회법 개정안만 13건에 달한다. 올해만 해도 3건 개정안이 국회에 접수돼 있다.

윤한홍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 2월 발의한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은 도덕성과 업무능력 검증을 분리해 청문회를 실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윤 의원은 당시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청문회가 선정적인 사생활 폭로·왜곡에 치우치면서 탁월한 역량을 갖춘 인재가 이로 말미암아 주요 공직을 기피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내실 있는 청문회와 인재의 국가 활용도를 높이고자 법 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보다 앞서 지난 1월 접수된 김영진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공직후보자의 철저한 사전검증을 위해 국회에 임명동의안 등을 제출하기 전 공직후보자에 대한 사전검증절차를 거치도록 하는 개정안을 대표발의 했다. 또 김영진·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각각 지난 1월, 지난해 10월 발의한 개정안은 청문회 전 사전검증 절차를 거쳐 자료제출 논란을 해소하고, 본 청문회에 내실을 기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많은 개정안이 계류중 이지만 제대로 심사조차 하지 않으면서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인사청문회가 논란이 될 때마다 여당과 야당이 각자가 처한 입장에 맞는 개정안을 발의하는 등 관심을 가지다가도 시간이 지나 쟁점에서 멀어지면서 흐지부지 되는 경우가 다반사”라며 “제도 개선을 위해서는 국회와 정부의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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