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웅의 ‘나는 박열이다’, 일왕 폭살을 꾀한 어느 아나키스트의 치열한 삶의 연대기

[뉴스포스트=신현지 기자] 친일반민족사 연구가로 현재 신흥무관 학교 기념사업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김삼웅 저자에 의해 독립운동가 박열의 삶이 책으로 엮어졌다. 책의 서두에서 저자는 아래와 같이 묻는 것으로 서문을 열었다.

‘일왕과 그의 아들은 왜 죽어야 하는가?’

지금으로부터 90여 년 전인 1926년 도쿄 한복판에서 이상한 재판이 벌어졌다. 한 조선 청년이 조선의 임금 옷을 입고 피고석에 선 것이었다. 청년의 죄목은 ‘대역죄’ 일본의 왕과 왕세자를 폭살하여 했다는 혐의였다. 당시 일본에서 대역죄는 무조건 사형이었다. 그런데 ‘대역죄’로 피고석에 선 청년은 당당하게 말했다.“나는 피고가 아니다. 나는 조선을 대표하여 여기에 있는 것이다."

김삼웅의 『나는 박열이다』는 일본 역사상 가장 기이했던 재판 풍경을 중심으로 독립운동가 박열의 일대기를 담담하게 기록한 책이다.

연인이자 평생 동지인 가네코 후미코와 함께 일왕부자를 폭살시키려 했다는 죄목으로 재판정에 선 박열, 그의 치열했던 삶을 저자 김삼웅이 당시 신문보도와 심문조서 등 자료를 토대로 복원해냈다.

사형수에서 무기징역의 22년여의 길고 혹독한 감옥살이를 견뎌낸 의지의 혁명가이며 불운의 사나이 박열, 그런데도 정작 그가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지워진 이유에 저자는 우리 현대사의 ‘흑역사’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분단과 반공 이데올로기가 박열을 역사 속에서 지워낸 것이라고. 아나키스트였던 그가 한국전쟁 때 북으로 끌려가 24년 만에 들려준 소식은 그의 부음이었으니.

이런 사실이 안타까워 저자는 이 책을 펴내게 되었다며 이렇게 말한다.

“대학생 몇 명에게 그의 이름을 댔다. 지적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도 그의 이름을 아느냐고 물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를 안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는 역사교육과 독립운동사 기술에 책임이 없지 않다.

경직된 반공 이데올로기의 교육에도 책임의 일단이 있을 것이며 비슷하게 경직된 지성 풍토에도 문제가 있을 것이다. 단지 아나키스트라는 이유로 한국전쟁 때 납북되어 북한에서 활동했다는 이유로 그는 우리 머릿속에서 지워진 기피 인물이 되었다.”

애국의 의지를 불태우다 불운한 혁명가로 사라져버린 박열이 일왕을 노린 이유에 저자는 또 이렇게 풀어 놓는다.

박열사건은 정작 폭탄 한 개도 없는 말하자면 증거 없는 재판을 할 수 밖에 없는 사건이었다. 오로지 피고의 증언에 의해 죄가 성립되는 불안한 재판을 박열은 전략적으로 적극 활용하기 위한 것이었을 뿐. 즉, 제국주의 심장부인 도쿄의 법정에서 자신의 사상을 어필하고 조선의 족립의지를 만방에 알리는 법정전투를 벌인 것이다.

“나는 일본의 천황 황태자 개인에 대해서는 어떤 원한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일본의 황실, 특히 천황 황태자를 대상으로 삼은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일본국민에게 있어서 일본의 황실이 얼마나 일본 국민에게서 고혈을 갈취하는 권력자의 간판 격이고 또 일본 국민들이 미신처럼 믿고 있고 신성시하는 것 신격화하는 것의 정체가 사악한 귀신과 같은 존재임을 알리고 일본 황실의 진상을 밝혀서 떨어뜨리기 위함이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조선 민족에 있어서 일반적으로 일본 황실은 모든 것의 실권자이며 민족의 증오의 대상이기 때문에 이 왕실을 무너뜨려서 조선 민족에게 혁명적이고 독립적인 열정을 자극하기 위해서였다.”

...박열의 심문조서 (10회)중에서

한편, 이 책의 저자 김삼웅은 독립운동사 및 친일반민족사 연구가로 현재 신흥무관 학교 기념사업회 공동대표를 맡으며 ‘대한매일신보와 서울신문의 주필을 거쳐 성균관대학교에서 정치문화론을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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