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국 현안이 법원과 검찰로 쏠리면서 하반기 정세가 불한해지고 있다. (사진=뉴시스 제공)

[뉴스포스트=이인우 기자] 법원과 검찰이 올해 하반기 정국을 좌우하고 있다.

굵직한 사안만 추려도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 연장과 청와대의 세월호 상황보고 조작, MB정부의 블랙리스트 및 화이트리스트 의혹, 여기다 야당의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 뇌물수수 의혹 고발 등이 꼽힌다.

이들 문제는 사안별로 현 정부와 여당, 야당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당장 진행 중인 국정감사의 상임위별 파행의 원인이 되고 있다.

◆ 박근혜 전 대통령 1심 재판 보이콧= 먼저 박근혜 전 대통령은 법원의 추가 구속영장 발부에 반발, 16일 공판에서 자신에 대한 기소를 ‘정치보복’으로 규정하고 사실상 보이콧 행사에 나섰다. 유영하 변호사 등 변호인단이 총사퇴하면서 올해 안에 1심 선고조차 불가능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이날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보복은 제게서 마침표가 찍어졌으면 한다”며 자신을 정치보복의 희생양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발언은 자신의 혐의를 모두 부인하는 한편, 지지층 결집을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날 박 전 대통령이 정치보복 주장까지 내놓자 자유한국당의 친박계가 동요할 우려가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한국당 지도부의 박 전 대통령 출당 움직임에도 일시 제동이 걸릴 수 있다.

한국당의 한 중진 의원은 “박 전 대통령의 입장 표명이 처음 나온 마당에 바로 징계절차를 밟는다는 것은 가혹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박 전 대통령의 재판 보이콧이 ‘제 발등 찍기’라고 보고 있다. 입장표명의 배경에 정치적 판단이 깔려있는데다 전 국가원수로서 사법부를 전면 부인하면서 입지를 더 약화시켰다는 지적이다.

서울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지지층에게 핍박받는 이미지를 알리기 위해 법적 합리성을 무시하는 1차원적인 대응에 불과하다”며 “일부 지지층의 동점을 살 수는 있겠지만 재판부에게 부정적인 인상만 남기게 됐다”고 전했다.

서울지방법원의 A부장판사는 “재판에 흠집 내기를 하면서 여론을 자극하기 위한 정치적 쇼에 불과하다”며 “재판부로서는 심리를 서두르면서 더 엄격한 판결을 내릴 공산이 크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변호인단이 집단 사퇴하면서 국선 변호인 배당이 불가피할 경우 연내 1심 선고조차 불가능할 것이란 전망이다. 국선변호인단이 수만 쪽 분량의 사건 심리에만 상당 기일이 걸리기 때문이다. 판결이 늦어질수록 일부 박 전 대통령 지지세력과 한국당 내 친박 의원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등 정계 혼란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 국정원·블랙리스트·화이트리스트 수사= MB정부의 블랙리스트와 박근혜 정부의 화이트리스트도 ‘국가정보원 개혁위원회 TF’와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검찰은 16일 대기업 자금을 대주고 보수단체를 친정부 시위에 동원했다는 '화이트 리스트' 의혹과 관련, 허현준(49) 전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실 행정관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허 전 행정관은 박근혜 정부 청와대가 전국경제인연합(전경련)을 비롯한 여러 대기업과 접촉해 친정부 시위를 주도하던 보수 성향 단체들에 지원금을 주도록 요구하는 핵심 실행자 역할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날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 내에 설치된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 파견검사에 대한 증인채택 문제를 두고 여야가 충돌했다.

야당은 진상조사위가 자문 역할을 넘어 조사활동까지 벌이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다며 파견검사를 증인으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여당은 이런 증인채택 요구는 블랙리스트 의혹을 '물타기'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고 반발했다.

블랙리스트와 국정원의 댓글공작 혐의는 이명박 전 대통령 직접 수사 가능성으로 번지고 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이날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처음 언급했다.

이미 서울중앙지검이 주도하고 있는 ‘적폐 청산’ 수사을 볼 때 이 전 대통령이 직접 보고를 받았거나 구체적이지 않더라도 불법 행위를 지시한 정황이 드러날 경우 수사는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전 대통령이 수사선상에 오를 경우 한국당 친이계 의원들의 집단 반발이 예상된다.

블랙리스트 논란은 문화계뿐만 아니라 복지계로 번지고 있다.

이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권미혁 의원(더불어민주당)은 보건복지부의 정부출연기관 '보건복지인력개발원'에서 갑자기 강사가 교체되거나 강좌 개설이 중단되는 사례가 잇따른 것으로 확인됐다며 복지계 '블랙리스트' 의혹을 제기했다.

블랙리스트 의혹은 박근혜 정부로 이어지면서 화이트리스트로 영역을 넓혔다. 정축숙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식약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식약처는 '불량 식품 근절 교육 사업' 명목으로 총 1억6000만원을 친정부 단체에 수의 계약해 몰아줬다.

또 이 단체에 소속된 40명의 회원에게 '불량 식품 시민 감시단' 명목으로 1500만 원의 활동비를 지급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HACCP 위생 안전 시설 개선 자금 지원 공고 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처벌받은 업체는 지원에서 배제한다는 공고문도 게제해온 것도 확인됐다.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 수사는 물론 새로운 의혹이 속속 드러나면서 야권은 정치보복이라며 반격이 기회를 엿보고 있다. 국감 현장 곳곳에서 벌어지는 파행사태 대부분이 이같은 전 정권 의혹에 대한 여야 입장이 충돌하면서 빚어지고 있다.

 

◆ 세월호 참사 보고일지 조작= 검찰이 박근혜정부가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당일 상황보고일지를 조작하고 국가위기관리지침을 변경한 사건을 배당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세워호 보고서와 관련한 청와대의 수사의뢰 사건을 3차장 산하의 특수1부(부장검사 신자용)에서 수사할 계획이라고 16일 밝혔다. 대검찰청 반부패부는 지난 13일 청와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명의로 된 수사의뢰서를 전자결재로 넘겨받았다.

대검은 청와대의 공식 수사의뢰인 만큼 전국 최대 수사기관인 서울중앙지검으로 내려보냈다. 3차장 산하 부서는 국정농단 사태와 청와대 캐비닛 문건, 화이트리스트 등 사건을 진행해왔다.

검찰 수사는 첫 상황보고시간 조작 의혹 및 국가위기관리 기본지침 불법 변경한 이유와 총 책임자를 가려내는데 우선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조만간 문서를 작성하고 전파한 실무자들을 조사할 예정이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최종적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 다시 창끝이 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자유한국당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 수사의뢰= 청와대와 여당의 MB·박근혜 정부 적폐청산의 가속페달을 밟으면서 자유한국당의 반발이 가시화되고 있다.

검찰은 16일 한국당 정치보복대책특위가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를 뇌물수수 혐의로 고발한 사건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한국당 특위는 지난 15일 권양숙 여사와 장남 노건호씨, 딸 노정연씨, 조카사위 연철호씨와 이들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는 박연차 회장 등 5명을 고발했다.

장제원 특위 대변인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노 대통령의 서거로 공소권 없음 처분이 내려졌지만 뇌물수수 사실은 검찰이 수사를 통해 확인했고 노 전 대통령도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시인했다"며 "죄를 지었으면 법적 책임을 지우는 것이 곧 사법정의를 바로 세우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노 전 대통령 일가에 대한 재조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당과 정치보복대책특위는 노 전 대통령 일가의 뇌물수수 혐의에 대한 즉각적인 재조사는 물론 그에 따른 국고환수 조치를 강력히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위는 또 노 전 대통령 재임시절 제기된 바다이야기 등의 의혹에 대해서도 법적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당의 이러한 행보는 여당의 적폐청산에 대응할 카드가 많지 않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현 정부의 문제를 제기해 봐야 국민적 지지를 얻기 어렵기 때문에 결국 노무현 전 대통령 문제를 다시 끄집어낼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여권 관계자는 이와 관련, “이미 공소권이 소멸한 사안에 대해 전직 대통령 일가를 끌어들여 수사의뢰한 것은 ‘부관참시’보다 더한 행태”라며 “국민적 지지를 받지 못할뿐만 아니라 퇴행적 정치를 되풀이한다는 비난만 받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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