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박근혜와 1대 1구도 구축…대권구도 요동

[뉴스포스트 = 이정식 기자] “민(民)을 버리면 민(民)이 버린다.” 4.27재보선의 의미를 한마디로 함축하면 위의 말로 귀결된다. 그만큼 국민의 심판은 준엄했다. 4.27재보선을 계기로 MB시대는 가고 미래 권력의 시대가 성큼 다가오고 있다. 여권은 박근혜, 야권은 손학규 대표가 강자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개헌도 물 건너갔다. 개헌을 이끌 추동력인 친이계 의원들도 각자도생할 처지다. 분당 을에서 확인된 민심에 좌불안석이고 당장 내년 총선이 걱정되는 까닭이다. 친이계 뿐만 아니다. 여권이 자칫 어영부영 하다가는 무능한 보수로 낙인 찍히고 주둔지가 낙동강 전선에 고착될 수 있다. 강원도지사 선거 결과에서 드러났듯 동북전선에도 황색깃발이 꽂혔다. 수도권에서 밀리고, 유리한 고지였던 동북지역마저 적에게 내 주면서 낙동강 일대로 쪼그라들었다. 낙동강 사수도 만만찮다.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로 야기된 낙동강 민심은 더 이상 여권의 총알받이를 자처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4.27재보선 참패 직후 지도부총사퇴를 결의한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와 홍준표 최고위원

이번 재보선에서 여권의 가장 뼈아픈 대목은 잘못된 공천에 있다. 특히 분당 을의 예가 그렇다. 한나라당이 분당 을에 강재섭 후보를 공천하지 않고 정운찬 전 총리를 내세웠으면 어떻게 됐을까. 강재섭 후보는 선거기간 내내 분당 을에서 15년 동안 살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상대 후보인 손학규를 철새 정치인으로 비판했다. 하지만 이런 전략은 먹히지 않았다. 분당을 유권자들은 텃새보다 철새를 선택했다. 텃새와 철새의 표 차는 2천여 표 차이다.

정운찬이 투입됐더라면?

재보궐선거가 끝난 뒤 여권의 한 중진 의원은 "많이 아쉽다. 강 후보에 비해 정치판의 때가 안 묻은 정 전 총리가 투입됐다면 유권자의 생각도 달라졌을 거고 그 정도 표차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마디로 공천이 잘못된 거다."라고 전했다. 이와 관련,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 중 일부는, 강후보가 구시대적 정치인의 이미지가 있다는 점을 들어 공천에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소수 의견은 묵살됐다.

일부 언론에서는 강재섭 공천 카드는 임태희 대통령 실장의 작품으로 보도된 바 있다. 이 때문에 이번 재보선 참패의 책임을 놓고 임실장의 진퇴 문제가 거론된다. 하지만 속사정은 들여다보면 임실장의 책임으로만 보기 어려운 점이 있다. 여권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상득 의원과 친분이 두터운 강재섭 전 대표가 먼저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했고, 이에 이 의원이 분당 을이 지역구인 임태희 실장에게 의논을 해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이 전면에 나설 경우, 또 '형님 정치' 논란이 일 수 있어 뒤로 숨은 대신 임실장이 총대를 멨다는 얘기다. 하긴 제 아무리 위세가 당당한 영일대군이지만 동생인 임금에게 할 말이 있고 못할 말도 있는 법. 그런데 잘 풀릴 듯 보이던 일이 갑자기 꼬이기 시작했다. 군기반장 이재오 특임이 딴지를 걸고 나선 것이다.

이재오 특임은 한물 간 강재섭은 어려우니 정운찬으로 해야 된다며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이런 내막은 언론을 통해 임실장과 이재오 특임의 파워게임으로 비쳐졌다. 그 와중에서 돌아가는 판세를 읽은 또 다른 희망자가 적임자를 자처하며 나섰으니 그가 박계동 전 국회사무총장이었다. 단기 필마로 뛰어든 그는 그러나 전혀 우군이 없어 '어부지리의 꿈'을 접어야 했다. 강재섭 후보에게는 운도 따랐다. 한때 강력하게 부상하던 정운찬 카드에 전전긍긍하던 그를 구원한 이는 '여자 허경영' 신정아였다. 신정아의 '4011 폭탄'에 직격타를 맞은 정 전 총리가 비틀거리는 사이, 강 후보는 전열을 가다듬고 마침내 공천을 획득했다. 그러나 그의 운은 거기까지였다.

반본전은 건진 이재오 특임

말썽 많았던 분당 을에 비해 강원도지사 공천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한나라당 공천을 받은 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월등히 앞서가던 엄기영 후보. 하지만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민주당 최문순 후보와 무려 2만여표의 차이는 강원도민의 '현 정권 심판'의 의미가 가장 높지만 엄 후보에 대한 거부감도 상당히 작용했음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엄 후보는 이번 선거를 통해 쪽박을 찼다. 평소 반듯한 언론인의 이미지를 보였던 그다. 촛불 사태 등 고비마다 정권과 각을 세우며 공정 언론을 지키려 애쓴 평가를 받았던 그였기에 한나라당 공천 소식을 다소 의외로 받아들이는 국민들이 많았다. 여기에 선거 막판 터진 '팬션사건'은 그의 이미지를 일시에 추락시켰다. 따라서 현재로선 그가 정치인으로 재기할 수 있을지는 매우 불투명하다 하겠다.

이번 재보선 선거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이는 또 있다. 바로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다. 한나라당은 재보선 다음 날 지도부가 총사퇴했다. 그렇지 않아도 수도권 의원들 사이에서 안상수 체제에 대한 불만이 팽배한 상황에 이번 선거가 기폭제가 된 셈이다. 지도부가 총사퇴하는 날 한나라당은 초상집을 방불케 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공개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고성이 오갔으며 회의실을 박차고 나온 최고위원들 중에는 얼굴이 벌개진 이들도 있었다 한다.

같은 시각, 민본 21 등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들은 삼삼오오 모임을 갖고 'MB 정권 주류의 2선 후퇴'라는 주제를 놓고 난상토론을 벌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홍정욱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노래 잘 부를 생각을 해야지 관객이 적게 오길 바라면 됩니까"라는 글을 남기는 등 의원 개인적으로도 당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 같은 경우는 아예 MB를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선거 다음날 올린 개인 블로그에서 "레임덕은 필연이다. 오늘부터 시작됐다. 대통령도 바뀌어야 한다. 일만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정치가 비뚤어지고, 누가 2인자인양 호가호위해도 제어가 안 되고, 대통령 권위와 체면이 구겨지고 있어도 처삼촌 묘 벌초하듯 한다."고 개탄했다. 김 전 의장은 또 "정부도 바뀌어야 한다. 재벌을 미워하고 노조와 싸우고, 노조조차 못 만드는 대다수 노동자를 감싸 안지도 못하는 정부, 결단의 시기에 책임을 미루고 현장의 목소리는 외면하고 책임지지 않는 사람이 오히려 살아남는 이상한 정부가 하늘아래 또 있는가"라고 비판했다.

이렇듯 당청을 비판하는 상황에서 안상수 대표가 취할 운신의 폭은 제한적이다. 사실 MB 정권들어 안상수 대표는 국회의장 자리를 소망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랬으나 김형오 의장에게 밀렸고, 당 대표로 만족했다. 다음 수순으로 재차 국회의장에 도전할 가능성이 있지만 현재로선 의장은커녕 다른 감투도 보장이 어려워 보인다.

박근혜 시대 도래하나

MB 권력의 양대 구동축인 영일대군과 이재오 특임의 이해득실을 따져보면, 타격을 입은 영일대군에 비해 이재오 특임은 반본전은 건졌다 하겠다. 당 일각에선 경남 김해을에서 신승한 김태호의 배후에 이재오 특임이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이 특임은 선거 기간 내내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다. 지난 20일에는 당내 친이계 모임인 ‘함께 내일로’ 소속 의원들을 불러 선거 작전 회의를 했다가 야당으로부터 고발을 당했다. 특히 선거 막판에 김해을에서 발견된 ‘특임장관실 직원 수첩’을 놓고 국민참여당은 “이 장관이 관권선거를 주도했다.”며 검찰에 또 고발했다. 하지만 결과만으로 본다면 이재오 특임에겐 희망은 있다. 김태호라는 준마를 얻어 속수무책 박근혜 전 대표에게 끌려가지 않을 교두보는 확보한 셈이기 때문이다.

반면 이번 선거 결과 최대의 반사 이익을 본 이는 박근혜 전 대표다. 권력은 힘있는 자에게 쏠린다. 지난 2007년 국민 지지율 부동의 1위였던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그랬듯 이번 재보선 이후 박 전 대표 쪽으로 급격히 권력의 추가 기울 수 있다. 때를 맞춰 홍준표 최고위원도 한마디 했다. 홍 최고위원은 재보선 다음날 센트럴시티에서 주최한 초청강연에서 "지금은 `박근혜 시대'다. 나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보완재이지, 대체재가 아니다"고 말했다. 홍 최고위원은 "박 전 대표의 대체재가 되겠다는 사람은 많은데 그러려면 거기에 걸맞은 실력을 갖춰야 한다. 그러나 내 눈에는 아직 그런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이같은 언급은 그가 현 정권 출범 후 친이계와 일정 거리를 두고 중립을 지켜왔다는 점에서, 박 전 대표의 입장에서는 큰 우군을 만난 셈이다. 남은 것은 친이계와의 관계 설정이다.

이번 선거에서 야당의 'MB 정권 심판'이 먹혀든 만큼 특히 수도권 친이계 의원들은 내년 총선에서 이대통령이 아닌 박 전 대표를 앞세워 선거를 치르고자 할 것이다. 박 전 대표의 입장에서도 어떻게든 이에 화답할 필요성이 있다. 2007년 경선 참패 후 와신상담 5년의 세월이 지났다. 바야흐로 박근혜 시대는 도래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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