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찬 더블유미디어 대표

[뉴스포스트=김혜선 기자] “기호 0번 XXX!”

매 선거 기간 동안 빠짐없이 등장하는 노래가 있다. 각 정당에서 내세운 후보들을 선전하기 위해 유명한 노래에 후보의 이름과 기호 등을 붙여 만든 선거 로고송이다. 매 선거철마다 각 정당에서는 국민들의 귀를 사로잡을 수 있는 로고송을 선점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제7회 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서도 로고송이 대거 등장했다. 본지는 더불어민주당 로고송을 수년째 맡아 제작해온 김성찬 더블유미디어 대표를 만나 로고송 제작의 A부터 Z까지 파헤쳐봤다.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올해 히트 로고송은 ‘엄지척’

로고송은 통상 각 당에서 제작업체에 제작을 의뢰해 만든다. 당에서 선호하는 곡을 고르면 각 업체는 한국음악저작권협회(KOMCA)와 원작자에 저작권료를 지불하고 로고송을 제작에 들어간다. 원곡 곡조에 따라 후보 이름을 넣거나 기호를 강조하는 가사로 개사해 무명 가수들이 노래를 부르면 편집 과정을 거쳐 각 후보에게 전달된다.

로고송 목소리의 주인공은 ‘얼굴 없는 가수’들이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나온 노래가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 로고송 가수들은 신분을 밝히는 것을 꺼린다고. 김 대표는 “로고송 가수는 유명 가수부터 대학 교수, 무명 가수 등 다양하다. 아무래도 ‘남의 노래’를 부르는 일이라 로고송 가수라고 밝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가장 많이 ‘팔린’ 곡은 홍진영의 ‘엄지척’. 김 대표는 “유권자들이 민주당 대표곡으로 ‘아모르파티’나 ‘예뻐예뻐’, ‘캔디’ 같은 곡을 떠올리지만 가장 인기 있던 곡은 ‘엄지척’이다. 600여곡이 나갔다”고 말했다. 600여명의 후보가 이 곡을 선택한 이유는 지난 19대 대선 때 문재인 대통령의 로고송이었기 때문.

지난 2008년 대선 당시에 이명박 전 대통령의 로고송이었던 박상철의 ‘무조건’도 매 선거 때마다 인기 만점이다. 김 대표는 “‘무조건’은 지난 2008년 대선 때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선거 로고송으로 써서 대히트를 친 곡이다”고 설명했다.

 

사그러드는 선거 로고송

하지만 로고송 사용은 점차 사그러드는 추세다. 김 대표는 “로고송은 지난 2012년 국회의원 선거 때가 맥시멈이었다. 하지만 당시 골목마다 로고송을 너무 크게 틀어놓는 바람에 국민들 사이에서는 ‘시끄럽다’는 인식이 박혔다”고 말했다.

실제로 올해 지방선거에서도 선거관리위원회에 접수된 민원 중 대부분이 소음 민원이었다. 지난 6일 광주시 선관위에는 “옆 사람과 대화할 수 없을 정도다” “낮잠이나 휴식에 방해된다” “(학교나 학원) 도무지 수업을 들을 수 없다”는 등 민원이 다수 접수됐다.

유권자들이 불편을 호소하자 후보자들도 로고송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현충일인 지난 6일에는 각 후보들이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음악과 율동을 하지 않는 조용하고 차분한 선거운동에 나섰다. 더불어민주당 이시종 충북지사 후보는 이날 하루 확성기를 통한 지지 호소, 로고송, 율동 등의 선거운동을 하지 않는다고 밝혔고, 자유한국당 박경국(59) 충북지사 후보도 조용한 선거운동에 동참했다. 일부 교육감 후보들과 기초단체장 후보들도 ‘조용한 선거운동’을 선언하고 로고송이나 지지 호소 방송 등을 자제했다.

로고송이 자취를 감췄던 적도 있다. 지난 2014년 제6회 지방선거 때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해 전 국민이 비통에 잠긴 상황에서 로고송이 실종됐다. 김 대표는 “지금까지도 당시 여파가 남아있는 듯하다. 올해 지방선거는 후보자만 2만여명이 나와 가장 많은 후보자들이 나왔는데, 2010년도보다 로고송을 쓰는 후보들이 줄었다”고 말했다.

국민 인식변화 외에도 후보들이 로고송을 꺼리는 이유가 있다. 비용 문제다. 우리나라는 선거운동 과열과 금권선거 방지를 위해 각 공직선거마다 선거비용 한도액, 즉 법정선거비용을 정해두는데 이 비용을 초과해 사용하면 최대 당선무효형을 받을 수 있다. 김 대표는 후보들이 법정선거비용을 줄이기 위해 로고송을 포기하는 경우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 대표는 “후보들은 법정 공보물 우편 발송, 현수막, 명함제작, 문자, 전화 발송 등을 선거비용으로 쓰는데 기초의원같은 경우는 법정선거비용 자체가 적다보니 로고송을 아예 못 쓰는 경우가 있다”면서 “그런데 로고송 가격은 점차 높아지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법정선거비용은 선거구 내 인구수와 물가변동률 등을 고려해 정한다. 인구수가 많은 경기도지사의 경우 올해 41억7천여만원의 법정선거비용이 책정됐다. 지역구 범위가 적은 기초의원의 경우 법정선거비용은 평균 4천여만원이었다. 김 대표는 “지방 쪽은 인구수가 적어서 법정선거비용도 함께 줄어든다. 최하 2천만원 정도인 곳도 있다”고 말했다.

결국 로고송 자체가 비싸면 안 된다는 게 김 대표의 주장이다. 그는 “선거로고송을 왜 빅 히트곡을 써야 하나”고 반문했다. 김 대표는 “민주당의 경우 아예 ‘더더더’ 로고송을 자체 제작해 저작권료를 받지 않고 후보들에게 나눠 준다. 그러면 후보들은 제작비만 내고 로고송을 만들 수 있어서 훨씬 저렴하다”고 강조했다.

김성찬 더블유미디어 대표. (사진=김혜선 기자)
김성찬 더블유미디어 대표. (사진=김혜선 기자)

로고송 비싼 이유는 ‘인격권’ 때문

그렇다면 로고송은 왜 이렇게 비쌀까? 기본적으로 로고송 제작을 위해 비용을 지불해야하는 곳이 많다. 우선 로고송을 제작하는 비용이 들고, 흔히 ‘저작권’으로 알려진 저작복제권을 위해 저작권협회에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여기에 창작물의 변형을 원작자에게 허락받는 ‘저작인격권’까지 총 세 가지 비용이 든다.

처음부터 저작인격권 비용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김 대표에 따르면, 선거 로고송의 저작권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4년부터다. 그는 “이전에는 아무 데서나 노래를 갖다가 로고송으로 바꿔서 불렀는데, 당시 작곡가나 작사가들이 ‘내 음악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마라’는 취지에서 저작인격권을 주장했다”면서 “인격권, 개작동의서를 받아야만 저작권협회에서 사용 승인서를 내 준다. 이 동의서를 받으려면 저작자에게 돈을 줘야 한다. 그래서 인격권 값이 생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저작권은 ‘저작복제권’이다. 저작복제권은 저작권협회에서 작사·작곡가에게 일임받아 집행하는데, 로고송의 경우에는 복제권 금액을 정해 법제화했다. 대통령은 200만원, 광역단체장 100만원, 기초단체장 50만원, 광역의원 25만원, 기초의원 12만5천원으로 정해져 있다”

여기에 제작비 약 70여만원을 더하면, 광역단체장의 경우 로고송 1곡 당 300~400여만원을 지불해야 사용이 가능하다. 저작인격권은 편곡 승인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원작자가 결정하는 대로 가격이 정해진다.

김 대표는 로고송 가격이 비싼 이유로 ‘인격권 비용’을 꼽았다. 김 대표는 “내 생각에는 인격권 가격이 상당히 잘못됐다”며 “적정한 선이 있어야 하는데 ‘부르는 게 값’이다”고 지적했다. 그는 “물론 원작자들도 자신의 저작물에 대한 정당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왜 하필 로고송에만 무리하게 비용을 받는지 의문이다. 애초에 인격권 취지는 ‘내 노래를 함부로 바꾸지 말아라’라는 것인데, 이제는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가 제시하는 대안은 ‘선거 로고송’이라는 장르를 새롭게 개척하는 것이다. 김 대표는 “로고송 장르를 새로 만들어서 쓰면 인격권을 쓸 필요 없다. 그러면 나중에 선거비용 보전 시 나가는 국민 세금도 많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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