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미투 재판' 1심에서 무죄를 받으면서 여성계가 들끓고 있다.

14일 서울서부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여성단체 회원들. (사진=한국여성민우회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 제공)
14일 서울서부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여성단체 회원들. (사진=한국여성민우회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 제공)

14일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 11부 조병구 부장판사는 이날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등 혐의 선고 공판에서 안 전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안 전 지사는 지난해 7월부터 올해 2월까지 자신을 보좌한 수행비서 김지은 씨를 4차례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지난해 7, 8월 다섯 차례에 걸쳐 기습적으로 강제 추행한 혐의도 받는다.

재판부는 "피고가 도지사로서 별정직 공무원의 임면권을 가지고 있어 위력이 있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면서도 "도청 내에서 피해자에게 위력을 행사하면서 그의 자유의사를 억압했다고 볼만한 증거는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안 전 지사에게 무죄가 선고되자 김씨는 "부당한 결과에 주저앉지 않을 것"이라며 "굳건히 살아서 안 지사의 범죄 행위를 법적으로 증명하겠다"고 말했다. 권력형 성폭행이 법에 의해 심판받을 수 있도록 끝까지 싸워나가겠다는 입장이다.

김씨는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다움'과 '정조'라는 말이 나온 것을 두고 이번 무죄 판결이 예고된 결과였을지 모른다고 차분하게 입장을 전했다. 하지만 여성단체 등 여성계는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한국여성민우회 등으로 구성한 안희정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는 판결 후 성명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법원이 피고인의 지위가 행사돼 피해자가 저항해야 할지 생계를 유지해야 할지 답을 찾지 못했던 상황에 대해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다"며 "성폭력을 인지하고 사회에 알리기까지 수백 번 고민하기를 반복할 피해자들에게 이번 판결은 침묵에 대한 강요가 될 것"이라 경고했다.

권김현영 여성주의 연구활동가는 "안 지사 측이 가족과 지지자·변호인단을 동원했지만, 피해자는 가족의 보호와 안전을 위해 가족과 함께하지 못했다"며 "누가 함께 했는지만을 보더라도 위력이 작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사법부는 현행 법의 한계로 인해 안희정 전지사의 성폭력은 해당 법으로 적용하기 어렵다면서 법의 변화는 입법부의 몫이라고 했다"며 "언제까지 여성인권의 문제에 대해 법원은 그 책임과 몫을 미룰 것인가"라고 질타했다.

여성단체뿐만 아니라 일반 여성들도 이번 판결에 분노했다. 서울 관악구에 거주하는 대학생 A(25)씨는 "이번 판결로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바닥까지 떨어졌다"며 "법원이 성범죄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구로구에서 직장을 다니는 B(27)씨는 "'홍대 몰카범'은 징역 10개월이고, 안 지사는 무죄라는 게 납득되지 않는다"라고 전날 징역 10개월 형을 받은 홍대 몰카 사건 판결 사례를 언급하기도 했다.

한편 검찰은 이날 판결에 대해 "법원의 판단은 존중하나, 무죄를 선고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항소심에서 공소 사실을 입증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항소 의사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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