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무대 위의 CEO”

정세현 교수
[뉴스포스트=정세현 칼럼] ‘동양문화권에서 최고 인기소설을 논하자면 아마도 삼국지가 1, 2 순위를 다툴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읽힌 책인 만큼 소설 안에서 좋아하는 장면들이 각자들 있다.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桃園結義), 중원의 패자(覇者)를 결정짓는 원소와 조조의 관도(官渡)대전, 또는 조자룡이 칼 하나에 의지해 수 많은 적을 베어가며 유선을 구해오는 장면 등 삼국지에는 수 많은 명 장면들이 담겨있다. 그러나 필자에게 무엇보다 흥미롭게 읽힌 부분은 적벽대전(赤壁大戰)의 시발점에서 제갈공명이 동남풍을 불러 일으키는 장면이다.

오(吳)나라 장수 주유는 조조의 대군을 무찌르는데 화공(火攻)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나 때가 가을인지라 바라는 동남풍과 다르게 북서풍만 불어왔다. 이를 해결할 답을 찾지 못해 고민하고 있는 주유에게 공명이 찾아가 제안을 한다.

“7일간의 시간을 주시면 제가 하늘에 기원을 하여 동남풍일 일으켜 보겠습니다.”
평소 공명의 재주를 시기하는 마음을 갖고 있던 주유는 공명이 동남풍을 일으키지 못하면 군법에 따라 목을 벨 것을 약속 받고 남병산에 칠성단을 만들어 준다.

사실 어려서부터 천문과 지리를 공부한 공명은 적벽(赤壁) 주변의 장강에 11월에 며칠간 동남풍이 분 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단지 주유와의 연합군 헤게모니 다툼에서의 우위와 본인의 능력을 더욱 신비화하기 위하여 64괘를 활용한 칠성단을 쌓는 퍼포먼스를 연출한 것이었다.
목욕재개하고 흰 도복을 입고 공명이 칠성단에 들어가 기도를 하자 결국 동남풍은 불어오고 오(吳) 촉(蜀) 연합군의 화공은 성공한다. 이 전쟁의 승리로 공명은 바람까지도 불러일으키는 사람으로 신격화된다.

비즈니스 세계에도 공명처럼 대중의 기대를 극대화할 줄 아는 사람이 바로 스티브 잡스(Steve Jobs)다. 아이팟 (i-pod)에서 시작하여 얼마 전의 아이클라우드(iCloud) 발표까지, 애플의 창업주 겸 CEO로서 스티브 잡스는 모든 자사 신제품을 직접 발표한다. 이 자리는 단순히 애플의 새로운 제품을 소개하는 자리가 아니라 다음 IT기술의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자리로 소비자들에게는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스티브 잡스의 프리젠테이션이 어찌나 훌륭한지, 많은 사람들에게 프리젠테이션의 모범으로 추천 받으며 그의 이름을 달은 많은 프리젠테이션 관련 서적들까지 여럿 출시되었다.

사실 그의 발표회는 매우 정교하게 갖추어진 한 편의 연극을 보는 듯하다.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무대에 등장하는 것부터 제품의 기능들을 하나씩 직접 시연해주고 모든 제품에 하나씩 흥미 있는 스토리를 실어 소비자들에게 전달한다. 그래서 애플의 신제품 발표회 자리는 요즘 유행하는 모 방송국의 ‘나는 가수다’ 방청권만큼 구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타고난 그의 천재성도 있지만 스티브 잡스 주변에는 작가, 연출가, 기획자 등 20명 이상의 스텝진이 가장 완벽한 무대의 실현을 도와준다고 한다. 그를 질투한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가 많은 전문가들을 고용하여 잡스를 따라 해보았지만, 둘의 발표를 비교해보면 따라가기 어려운 현격한 차이가 쉽게 눈에 들어온다.

아직까지는 국내에는 신제품 출시를 창업자나 CEO 가 직접 나서서 하는 장면은 흔치 않다. 가끔 있다고 하더라도 소비자들의 관심을 끄는 자리라기 보다는 엄숙하고 딱딱하게 제품의 기능 소개에 머무는 경우가 더 많다. ‘CEO 주가’ 라는 말이 있듯이 기업의 성공과 실패에 있어서 대중들이 CEO 에게 기대하는 몫은 생각 외로 크다.

세계시장을 제패하는 우리 제품이 늘어가고 있는 만큼, 조만간 무대 위에서 글로벌 소비자들의 영감(靈感)과 오감(五感)을 자극하며 자사 제품을 멋지게 소개할 CEO를 기대해본다.
 

<정세현 교수>
서울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영국 Nottingham Trent MBA (경영학 석사)
삼일회계법인 Deal Advisory 팀 부장: 기업전략, M&A 컨설턴트
삼일아카데미 전임교수
라이지움 정보시스템감사 과정 전임강사
전) 한국 IBM
자기계발서 ‘사파리’ 저자(매일경제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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