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한영 사장 등 유치 지원 테스크포스 가동 / 5년 전 실패 딛고 이뤄낸 값진 국민적 승리

‘2012 여수 엑스포 성공 개최’
여수의 꿈이 현실로 나타났다. 대한민국의 엑스포 개최 성공 소식은 여수 시민은 물론 국민들에게 큰 희망을 주었다.사람들 성공적인 개최 뒤엔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의 구슬땀이 배어 있다. 바쁜 와중에도 두 팔을 걷어붙이고 세계박람회 여수 유치를 위해 뛰었고 이런 노력이 빛을 발해 쾌거를 이뤘다. 이번 여수세계박람회 유치는 88올림픽과 2002월드컵을 능가하는 국제 행사로 평가받고 있다. 세계 각지를 누비며 민간외교관 역할을 한 정 회장의 유치활동을 알아본다.


여수엑스포 유치 성공의 일등공신이자 주역이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이라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정 회장은 지난 5월 유치 지원팀을 만든 뒤 유치 활동을 위해 국외 출장길을 무려 11만7천㎞를 돌아다녔다. 반 년 동안 지구를 세 바퀴 돈 셈이다.
이 기간에 그는 10여 개국 정부의 고위급 인사 150여명을 만나 여수 지지를 호소하고 다녔다. 지난 10월에는 8일부터 13일까지 파리·슬로바키아·체코를 방문한 이후 미국·캐나다(23∼27일), 러시아 모스크바(11월 7∼10일) 등  7개 나라를 돌았다. 총리급 이상 인사를 만난 것만 5차례, 장?차관급 인사 90여명을 만났고 40여 개국의 대사급 인사와도 접촉했다.
효율성을 최대화하기 위해 비행기를 임대해 이동하는 열정을 보이기도 했다.
그룹 차원의 물적·인적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정 회장은 현대차의 최한영 상용차담당 사장을 중심으로 유치 지원 태스크포스를 꾸렸다. 그런 한편 유치기간 내내 움직이는 상황실을 운영했다. 또 세계 전 지역의 대리점 사장을 파리로 불러들여 유치 활동을 돕도록 했다.
그룹 주변에서는 “회사일보다 엑스포 유치에 더 힘을 쏟고 있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다.

 

 감성적 호소를 열정으로 이겨 내
열정 뒤엔 고난도 많았다. 경쟁국인 모로코가 엑스포를 선진국만 할 것이 아니라 아프리카와 회교 국가에서도 한 번 개최하게 해 달라고 감성적으로 호소했다.
"150여 년에 걸쳐 100회 이상 엑스포가 열렸는데 아시아와 유럽, 그리고 미국에서만 열렸으니 이제는 아프리카에도 기회를 한 번 달라. 그리고 다음엔 남미에서도 한 번 개최하게 하자"는 감성적 호소는 많은 아프리카 나라와 중남미 나라들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왕국인 모로코는 왕이 직접 왕실외교를 함으로써 아직도 왕국이 있는 나라에서는 우리가 공들여 확보한 표도 왕의 명령으로 모로코 지지로 돌아선 나라도 있었다.
또한 국제박람회기구(BIE)에 가입하지 않은 나라들을 가입시킴으로써 회원국이 급격히 불어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올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98개국이던 BIE 회원국이 140개국으로 불어났다.
위기를 느꼈던 정 회장은 당시 김종은 전무를 비롯한 현대?기아차 그룹 관계자들에게 전세기를 타고서라도 아프리카를 샅샅이 훓으라고 지시했다. 일단 목표를 정하면 저돌적인 정몽구회장의 스타일이 빛을 밝힌 순간이었다.

 

힘든 악재 이겨낸 ‘쾌거’

일부에선 그가 엑스포 유치에 발 벗고 나선 데는 지난 9월 비자금 사건에 대한 항소심 재판이 적잖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당시 재판장은 집행유예 선고를 내리면서 이례적으로 “엑스포를 유치하도록 분발해 달라. 그것도 판결에 고려했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엑스포를 향한 정회장의 집념은 오래 전부터 각오한 것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정 회장은 2002년 첫 도전에 나선 2010년 세계박람회 개최지 선정에서 중국의 상하이에 밀려 고배를 마신 적이 있다. 당시 유치위원장이었던 그는 “다음엔 꼭 유치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는 후문이다. 이런 인연이 계기가 되어 이번 2012년 여수 유치에 성공적인 쾌거를 이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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