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새 엇갈리는 新·舊 비핵화회담
트럼프 “北에 상상넘는 상응조치할 것”

[뉴스포스트=김혜선 기자] 지난 1일(현지시간) 미국이 탈퇴를 공식화한 ‘중거리 핵무기 감축협정(INF)’은 과거 미국과 소련의 냉전시대 종식을 이끌어낸 평화협정이다. 공교롭게도 같은달인 오는 27일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는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2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린다. 한달새 오래된 비핵화 협정이 파기되고 새로운 비핵화 협정이 시작되는 기이한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독특한 정치스타일과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때문일 것이다.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미국의 탈퇴 선언으로 INF는 파기의 길을 걷게 됐지만, 지난 1987년 미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소련 미하일 고르바초프 공산당 서기장이 INF를 서명하기까지 과정을 돌아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군비경쟁으로 치닫던 미국과 소련의 뿌리깊은 불신은 현재 북한과 미국의 그것과 상당히 닮아 있기 때문이다.

특히 INF가 체결되기 1년 전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열린 미소회담은 ‘실패했지만 성공한 회담’으로 평가받는다. 당초 레이건 대통령과 고르비 서기장은 핵무기 감축을 위해 많은 부분을 합의했지만, 미국이 일명 ‘스타워즈’로 불리는 요경미사일 우주 배치(SDI·전략방어구상) 계획을 폐기하라는 소련의 요청을 거부하면서 결렬됐다. 회담은 실패했지만 소득은 있었다. 불신으로 가득하던 미국과 소련은 서로에게서 군비감축에 대한 의지가 확고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북미 하노이 회담, 디테일 의제 12개+α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협상을 진행 중인 북한과 미국도 비슷한 길을 걷는 모양새다. 지난해 6월 북한과 미국은 싱가포르 회담에서 4개 항목에 합의하고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전 세계가 주목하던 ‘세기의 합의’였지만 평가는 엇갈렸다. 북미 관계개선을 중심으로 한 포괄적 내용을 담았을 뿐 구체적인 비핵화 방법이 담기지 않았다는 지적과 동시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재확인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때문에 이번 하노이 회담은 보다 구체적인 합의가 도출되지 않겠느냐는 낙관적인 추측이 제기된다. 실제로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이달 초 평양에 2박3일간 머물면서 북한 측과 12개 이상의 의제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건 대표는 1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문희상 국회의장과 여야 대표단을 만나 “12개 이상 문제에 대해 논의했고 (1차 북미정상회담에서 나온) 싱가포르 선언 이행을 위해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의제 개수만 봐도 북미 실무진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조금 더 ‘디테일한’ 내용을 논의했을 가능성이 있다.

다만 비건 대표는 당시 북측과 논의한 의제는 ‘협상’이 아닌 ‘입장확인’이었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북한과의 협상은 건설적이고 생산적이었으며 분위기가 좋았다”면서도 “이번이 실질적인 첫 실무회담이었고, 의제에 대해서는 동의했지만 협상을 위해서는 서로 이해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북한과 회의에서 처음부터 내세운 원칙은 이번에 만나서 협상을 하지 않고 구체적으로 양국 입장을 확인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양측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이견을 좁히는 것은 다음 회의부터 시작할 것이다. 북미정상회담 전까지 2주밖에 남지 않아 난제를 모두 해결하는 것은 어렵지만, (비핵화 프로세스) 일정 합의를 할 수 있다면 가능성은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미국이 북한에 잇따라 유화적인 메시지를 내보내는 것도 이번 하노이 회담에 기대를 더한다. 그동안 북미간 비핵화 협상은 북한의 ‘제재 완화’ 주장과 미국의 ‘선 비핵화’ 주장이 배치되며 지난한 줄다리기를 이어왔다. 북미간 대치는 지난해 김영철 부위원장이 미국을 방문한 이후 조금씩 풀어졌는데, 최근에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산하 북한제재위원회가 국제 적십자사·적신월사 연맹(IFRC) 등 3개 구호단체의 인도적 대북지원을 허가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장관이 지난 8일 유엔 산하 세계식량계획(WFP)의 데이비드 비슬리 사무총장을 만난 것도 의미심장하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미국이 대북 식량지원과 관련한 사안을 논의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제기된다.

한편, 미 국무부 대변인실은 “북한이 김정은 위원장의 완전한 비핵화 약속을 이행할 경우 미국은 이전에 가능할 것으로 생각됐던 모든 것을 뛰어넘는 상응 조치를 할 것이라는 점을 트럼프 대통령이 분명히 했다”고 14일 미국의소리 방송에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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