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김혜선 기자] 여야의 추가경정예산(추경) 처리를 위한 국회 의사일정 합의가 불발되면서 국회는 역대 최악의 식물국회라는 오명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여야가 각종 정쟁으로 국회 일정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사이, 본회의 가결안은 ‘총선 체제’ 때보다 떨어지거나 비슷한 수준으로 처리됐다.

텅 비어있는 국회 본회의장. (사진=김혜선 기자)
텅 비어있는 국회 본회의장. (사진=김혜선 기자)

22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월 1일부터 이날까지 국회가 본회의에서 통과시킨 법안(대안반영 제외)은 총 135건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는 350건이 처리된 것을 고려하면 전년대비 61.4%가 감소했다. 작년에 같은 기간 동안 10건의 법안을 통과시켰다면 올해는 4건도 처리하지 못한 셈이다. 통상 국회는 같은 기간 동안 300여 건의 법안을 본회의에서 처리했다. 지난 2017년에는 320건의 법안이 만들어졌다.

특히 20대 총선이 있었던 2016년도보다 올해 본회의 가결된 법안이 적었다. 총선은 통상 4월에 선거운동을 시작해 5월 30일에 국회의원을 선출한다. 이후부터는 각 정당 별로 당 원내지도부를 선출하고 상임위원회를 배분하는 등 일정이 분주해 법안을 논의할 시간이 별로 없다. 그럼에도 지난 2016년 1월 1일~7월 22일간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은 총 266건으로 올해보다 131건이 많았다.

식물국회로 악명이 높았던 19대 국회 때도 올해보다는 본회의 가결안이 더 많았다. 지난 2015년에는 같은 기간 395건, 2014년에는 513건의 법안이 만들어졌다. 다만 19대 총선이 있던 2012년에는 동기간 112건의 법안이 만들어져 올해보다 적었다.

20대 국회의 초라한 성적표는 올해 본회의가 단 세 차례만 열렸기 때문이다. 국회는 지난 4월 법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를 연 후 100일 넘게 본회의를 열지 못했다. 추경 역시 지난 4월 제출된 이후 89일째 국회를 표류하고 있는 상황. 일각에서는 사상 초유로 추경 포기 사태가 벌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그러나 본회의 개최를 위한 여야 간 접점은 좀처럼 찾기 어려운 모양새다. 이날 더불어민주당 이인영·자유한국당 나경원·바른미래당 오신환 원내대표는 22일 국회에서 문희상 국회의장 주재로 회동을 갖고 의사일정을 논의했지만 이견만 확인하고 끝났다.

이인영 원내대표는 회동 직후 기자들과 만나 “추경 처리와 관련해 본회의 의사일정과 관련한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면서 “상임위나 특위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은 정상적으로 운영해 나가는 것으로 했다. 예결위는 해나가는 것으로 했다”고 밝혔다.

나 원내대표는 “안타깝게도 어떤 합의도 이루지 못했다. 임시국회 소집이 안 돼 있다. 실질적으로 지금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오 원내대표는 “6월국회가 빈손으로 끝났는데 그 부분에 대한 걱정과 우려 속에 새로운 돌파구 마련을 시도했으나, 또 해답 없이 끝났다”며 “상임위는 국회 임시회와 상관없이 가동 가능하니, 상임위 가동은 위원회별로 진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야당에서는 정경두 국방부장관의 해임 건의안과 북한 목함 사건 국정조사를 추경과 연계해 ‘투 포인트 본회의’를 열자고 제안하고 있다. 국방장관 해임안이나 북한 목함 사건 국정조사를 받아들이라는 게 야당의 주장이다. 그러나 민주당이 이 같은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협상에 난항을 겪고 있다.

한편, 일부 의원은 좀처럼 정상화되지 않는 국회에 ‘세비 반납 운동’을 다시 꺼내들었다. 세비 반납 운동은 지난해에도 정세균 당시 국회의장이 솔선수범해 벌인 바 있다. 이날 민경두 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세비 반납 릴레이 버스킹을 나흘째 진행 중”이라며 “사상 최악의 장기 국회 파행으로 인한 민생 입법 지연, 추가경정예산안 무산 위기를 보며 국민들에게 송구한 마음으로 시작했다”고 밝혔다.

민 의원은 다음 타자로 나 원내대표를 지목하며 “(국회)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병목을 풀어달라”고 요청했다. 이어 “여야 교차하는 방식으로 릴레이를 진행하며, 한 명을 지명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만약 두 명을 지명할 것이면 두 달 치 세비를, 세 명을 지명할 거면 석 달 치 세비를 내야 한다”고 규칙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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