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김혜선 기자] “제 나이 때는 얼마나 힘드셨어요?” “그 끔찍한 고통은 영원히 잊을 수 없어”

한 청년이 만든 ‘유니클로 광고 패러디’ 영상이 화제다. 20초 분량의 짧은 영상은 최근 위안부 모독 논란이 불거진 유니클로의 TV 광고 영상을 패러디한 내용으로, 지난 1944년 일본 나고야 미쓰비시 공장에 강제 동원됐던 양금덕(90) 할머니가 직접 출연했다.

21일 유니클로 패러디 영상을 제작한 전남대 사학과 4학년 윤동현(25) 씨는 <뉴스포스트>와의 통화에서 “유니클로 측에 ‘역지사지’를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 영상을 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영상은 양 할머니가 일본어로 ‘잊혀지지 않는다’는 팻말을 들고 서 있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한 청년이 할머니에게 “그 문구 완전 좋은데요”라고 말을 건네자, 양 할머니는 “난 상기시켜 주는 걸 좋아하거든, 누구처럼 원폭이랑 방사능 맞고 까먹진 않아”라고 답한다. 청년이 “제 나이 때는 얼마나 힘드셨어요?”라고 묻자 “그 끔찍한 고통은 영원히 잊을 수 없어”라는 답변이 되돌아온다.

이 같은 내용은 최근 일본 의류 브랜드 ‘유니클로’의 광고 영상과 구성이 같다. 논란이 된 광고는 14세 소녀 디자이너와 98세 패션콜렉터 할머니가 등장한다. 광고에서 소녀는 할머니에게 “제 나이 때는 어떻게 입으셨어요?”라고 묻고 할머니는 “그렇게 오래 전 일은 기억 못한다”고 답한다.

유니클로 광고 영상.
유니클로 광고 영상.

문제가 된 부분은 한국 버전 영상에 추가된 의역 자막이었다. 자막에 “80년도 더 된 일을 기억하겠느냐”는 내용이 들어가면서 일각에서는 위안부 문제를 조롱한 게 아니냐는 문제제기가 나왔다. 굳이 일제강점기 시절인 ‘80년 전’을 강조한 것에 의도가 있었다는 주장이다.

유니클로의 일본어 자막 광고에서는 “昔のことは、忘れたわ(옛날 일은 잊어버렸어)”라고만 표현돼 굳이 왜 한국어 자막 판에서 ‘80년’을 강조했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판에서도 “Oh My God, I can’t remember that far back(그렇게 오래 된 일은 기억 못한다)”고 돼 있어 두 배우의 나이차를 강조하는 내용은 없다. 반면 최근 불매운동으로 홍역을 앓다가 겨우 판매량이 늘어난 유니클로가 국내 반일감정을 자극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논란이 커지자 유니클로 측은 광고를 중단하고 적극 해명했다. 지난 20일 유니클로는 “해당 광고는 ‘후리스’(플리스) 25주년을 기념하는 글로벌 시리즈 광고로, 어떠한 정치적 또는 종교적 사안, 신념 및 단체와 어떠한 연관관계도 없으나 많은 분께서 불편함을 느끼신 부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광고를 보는 즉시 이해하기 쉽게 두 사람의 나이 차이인 80년을 언급한 건데 오해가 생겼다”고 설명했다.

패러디 영상을 제작한 윤 씨도 ‘두 사람의 나이 차이인 80년을 언급한 것’이라는 유니클로 측의 해명에 대해 “이해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도 윤 씨는 한국인들이 해당 광고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유니클로가 이해하고 제대로 사과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윤씨와의 일문일답.

유니클로 광고 패러디 영상을 찍은 윤동현 씨와 양금덕 할머니. (사진=윤동현 페이스북)
유니클로 광고 패러디 영상을 찍은 윤동현 씨와 양금덕 할머니. (사진=윤동현 페이스북)

 

지난 19일 유니클로 패러디 영상을 올렸다. 어떻게 영상을 찍게 됐나.

문제의 유니클로 광고 영상을 보자마자 패러디 영상을 찍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제가 직접 패러디를 기획했고, 18일에 양 할머니께 연락 드려서 19일에 촬영했다. 당일 바로 영상을 올렸다. 양 할머니와는 과거 시민단체 활동 시 만난 인연이 있었다.

한국어 버전 외에도 영어와 일본어로 영상을 만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제가 할 줄 아는 언어로 번역해서 한국어, 영어, 일본어로 번역해서 만들었다. 영어 잘 하는 친구와 일본어 잘 하는 친구가 도와줬다.

유니클로에서는 소녀와 할머니의 나이차를 강조한 것이라는 주장인데.

저는 그 해명을 이해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저는 처음 광고 영상 속 80년이라는 단어를 보고서 다른 의도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떤 표현을 예술의 성격으로 받아들인다면, 작가의 의도나 생각을 듣고 그 맥락 안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 관점에서 유니클로의 ‘80년’이라는 의미는 나이차라고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작가의 생각과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고, 우리가 느낀 것을 표현할 수 있다. 저는 유니클로 측이 해명을 잘못했다고 생각한다. 유니클로는 ‘그 의도가 아니다’라며 제작의도만 설명했을 뿐, 한국인들이 해당 광고를 받아들이는 방법을 이해하거나 인정하고 사과하지 않았다. 그게 화가 났다. 그런 태도는 완전히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이고, 일본의 일부 우익 단체와 완전히 똑같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그 지점에서 ‘나도 한번 너희를 아프게 해볼 테니까, 이 패러디를 본 당신들에게 내가 ’그런 의도가 없다‘고 말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드는지 한번 직접 느껴봐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제작 의도도 ‘역지사지’라고 미리 밝힌 것이다.

영상을 올린 후 사과문도 올렸다.

사과문은 나중에서야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영상에 비하나 조롱의 의도가 없다고 미리 설명했지만, 그것을 본 일본 사람들이 아플 것이라고 생각했다. 첫째로 인권 차원에서 접근했을 때, 그 사람들이 아플 수 있는데 애꿎은 피해자까지 아프게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미안했다. 두 번째는 제가 아프다고 해서 그 방식을 똑같이 되갚아줄 필요는 없었다. 스스로 제가 사용한 방법에 대해 문제를 느껴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영상을 수정하거나 내리진 않을 것 아닌가.

맞다. 어쨌든 유니클로를 비롯한 사람들이 아프라고 찍은 영상이다. 실제로 저는 일본을 겨냥하고 있었고 원폭과 방사능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 표현을 보고 일본 사람들이 아파하고 한국인들이 느낀 감정을 느끼길 바랐다. 또 패러디 영상 한국어판에서는 ‘해방 74년 전’라고 제목을 썼지만 일본어판은 ‘소년(일본에 떨어진 원폭 리틀보이를 의미)이 떨어진 지 74년’이라고 썼다.

그런데 어제 저녁쯤에 한국에서 논란이 된 광고가 일본에서도 화제가 됐다. 야후재팬이나 SNS를 통해 일본 댓글 반응을 확인했는데, 너무 좋지가 않았다. 제가 의도한 것은 일본인들이 한국인들의 마음을 이해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는데 이 영상을 보고 ‘한국인은 거짓 역사를 말하고 있다’는 식으로 반응하고 있었다. 그래서 또 한 번 실망했다. 저는 일본인들이 아플까봐 걱정했는데 오히려 한국인들이 거짓말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내가 뭘 하고 있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윤씨는 영화 ‘원더’의 원작 소설을 인용하며 말을 마쳤다. “꼭 나쁜 마음을 먹어야만 다른 사람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게 아니야, 알겠니?”

저작권자 © 뉴스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