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김혜선 기자] 지난 4월 패스트트랙에 지정된 공직선거법 개정안과 검찰개혁안(고위공직자수사처 신설안+검·경 수사권 조정안)이 최종장에 이르렀다.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4+1 협의체(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 정의당, 민주평화당+대안신당)는 선거법과 검찰개혁안 단일안에 합의하고 지난 24일부터 패스트트랙안을 전격 상정해 처리를 시도하고 있다. 패스트트랙 안건을 반대하는 한국당은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로 맞서며 성탄절 내내 국회를 지켰다. 이제 국회는 선거법 처리 이후 ‘태풍의 눈’인 공수처 통과를 눈앞에 두고 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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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를 열고 패스트트랙 법안 중 선거법 개정안을 처리할 방침이다. 이날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총선이 불과 4개월이 채 안 남은 상황에서 더 기다릴 수 없어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인 의사진행 방해)를 무릅쓰고 과반수의 합의만으로 표결할 수밖에 없다”며 선거법 강행 의지를 다졌다.

여야 셈법에 누더기 선거법 탄생

지역구 225석+비례대표 75석으로 출발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4+1 협의체를 거치며 결국 ‘원안’으로 돌아간 단일안이 나왔다. 정의당 등 군소야당이 도입을 주장한 ‘석패율제’는 삭제됐고, 기존대로 지역구 253+비례대표 47에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단, 연동형은 민주당의 주장대로 ‘캡’을 씌워 30석에만 적용하기로 하고 나머지 비례 의석은 기존 방식대로 배분하기로 했다.

선거법 개정안은 여야 간 셈법이 적용되며 점차 누더기로 전락했다. 그동안 4+1 협의체에서는 ‘225+75’안을 적용할 경우 지역구 의석이 상당수 사라지는 것을 우려해 ‘260+40’, ‘250+50’ 등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왔다. 지역구 의석이 줄어들면 현역 의원들의 반발이 심해진다는 이유에서다. 이달 초에는 ‘250+50’ 틀 안에서 연동 의석수에 제한을 두는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고, 최종적으로는 현안 의석에 연동형만 적용하는 안이 나왔다.

여기에 민주당이 ‘연동형 캡’을 들고 나오면서 사실상 현상유지와 다름없는 선거법 수정안이 나오게 됐다. 50석의 비례대표 의석 중 30석에만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적용하는 ‘캡’을 씌우자는 주장이다. 이렇게 되면 거대 정당인 민주당의 비례대표석 확보가 유리해지고 군소 정당은 비례대표석 확보를 손해보게 된다.

정의당 등이 도입에 실패한 석패율제는 지역구 선거에서 아깝게 패배한 후보에게도 비례대표석을 배분하는 제도다. 민주당은 석패율제가 도입되면 정치개혁이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는 이유로 도입을 거부했다.

한편, 한국당은 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위성정당’을 만드는 꼼수로 맞설 예정이다. 지역구 선거는 한국당에, 비례대표 선거는 ‘비례한국당(가칭)’에 투표를 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군소야당에 유리한 선거법 개정안의 ‘이점’을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 한국당이 전혀 비례대표 후보를 내지 않고 비례한국당(가칭)에 정당투표율을 몰아줄 경우 3~4석 가량을 더 얻을 수 있다는 계산도 나왔다. 민주당과 한국당이 모두 위성정당을 만들면 정의당 등 군소 야당의 입지는 더욱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이 ‘발끈’한 공수처 단일안 살펴보니

4+1 협의체가 합의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신설안은 공수처의 기소 판단을 재심하는 기소심의위원회가 삭제되고 공수처 검사 요건 등을 완화했다. 특히 이번 공수처 단일안에서 검찰 측이 ‘발끈’한 내용은 검·경이 고위공직자에 대한 수사 착수 단계에서부터 공수처에 수사내용을 보고하도록 한 조항이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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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대검찰청은 공수처 신설안에 대해 “공수처에 대한 범죄 통보조항인 공수처법 제24조 제2항은 중대한 독소조항”이라며 이례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혔다. 검찰은 “공수처가 검경 수사착수 내용을 통보 받아야 할 이유도 없으며 공수처와 검찰, 경찰은 각자 헌법과 법률 테두리 안에서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면 된다”면서 “압수수색 전 단계인 수사착수부터 검경이 공수처에 사전보고하면 공수처가 입맛에 맞는 사건을 이첩받아가서 자체 수사개시하여 과잉수사를 하거나 검경 엄정수사에 맡겨놓고 싶지 않은 사건을 가로채 뭉개기 부실수사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어 “공수처는 검사 45명, 수사관 40명으로 구성돼 고위공직자 등의 중요 사안에 대한 수사를 하는 단일한 반부패기구일 뿐 전국 단위의 검찰·경찰의 고위공직자 수사 컨트롤타워나 상급기관이 아니다”라며 “검찰에서 법무부나 청와대에도 수사착수를 사전보고하지 않는데 장시간 내사를 거쳐 수사착수하면서 공수처에 통보하게 되면, 대통령과 여당이 공수처장 내지 검사 임명에 관여하는 현 법안 구조에서 공수처의 수사검열일 뿐 아니라 청와대, 여당 등과 수사 정보 공유로 이어져 수사 중립성 훼손 및 수사기밀 누설 등 위험이 매우 높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4+1 협의체는 오히려 공수처에 사건 보고가 되지 않을 경우 검경 등 수사기관의 의도에 따라 사건이 묻힐 수 있다는 입장이다. 4+1 검찰개혁 협의체에 소속된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이날 반박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경찰과 달리 전국적인 인적‧물적 조직망을 갖추지 않은 공수처가 전국에서 발생하는 고위공직자의 범죄혐의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박 의원은 “수사 혼란을 막기 위한 방침이라 생각해달라”면서 “상호통보를 통해 범죄 수사에 공백이나 혼선이 없도록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수처의 기소권 통제를 위해 만들었던 ‘기소심의위원회’도 삭제됐다. 당초 권은희 바른미래당 의원이 발의한 공수처 설치안에는 일반 국민으로 구성된 기소심의위가 공수처의 기소권을 감시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4+1 합의안에는 기소심의위가 삭제되고 공수처에 기소권을 부여했다. 4+1 협의체는 수사 보안 사항이 많고 빠른 시일 내에 이뤄져야 한다는 기소의 특성상 국민배심원제와 같이 일반 국민으로 위원회를 구성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 소속 검사의 요건도 완화됐다. 기존에는 ‘10년 이상 재판·조사·수사 업무 수행’한 검사가 공수처 소속 검사로 올 수 있었지만, 합의안에는 ‘검사와 변호사 자격을 보유한 10년 이상의 경력자로 재판·조사·수사 업무를 5년 이상 수행한 사람’으로 완화했다. 공수처 수사관도 기존 5년 이상 경력에서 ‘7급 이상 공무원으로 조사·수사업무에 종사했던 사람’으로 대폭 완화됐다.

공수처가 직접 기소하는 대상은 경찰, 검사, 판사로 하기로 한 원안이 유지된다. 수사 대상은 대통령, 국회의원, 대법원장 및 대법관, 헌법재판소장 및 헌법재판관, 국무총리와 국무총리 비서실 정무직 공무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정무직 공무원, 판사 및 검사, 경무관 이상 경찰공무원 등이다.

한국당 표결 저지 최후 카드 전원위원회

한국당은 공수처 설치안 등 남은 개혁안에 ‘국회 전원위원회 소집’ 카드를 들고 맞섰다.

심재철 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국회법에 따라 전원위원회 소집을 요구할 것”이라며 “국회의장이 전원위원회를 거부할 수 있는 것은 교섭단체 대표의 동의가 있어야 가능하지만 한국당은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전원위원회는 주요 긴급한 의안의 본회의 상정 직전이나 후에 재적의원 4분의 1 이상의 요구가 있을 때 국회의장이 개최하는 회의체로, 전원위가 소집되면 국회 본회의가 미뤄져 한국당은 ‘지연 전략’으로 쓸 수 있다.

다만 전원위 논의 대상은 정부조직 법률안, 조세 또는 국민에게 부담을 주는 법률안 등으로 규정돼 있다. 한국당은 공수처 신설안 등 검찰개혁인이 ‘국민의 삶과 나라 운명에 중차대한 영향을 주는 법’이라는 주장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원위가 열린다고 하더라도 4+1 협의체에 비해 ‘숫자’가 부족한 한국당은 공수처 안을 막을 카드가 더 이상 없다. 전원위는 특정 법안에 대해 별도 수정안을 낼 권한이 있지만, 출석 위원 과반이 찬성해야 의결된다. 의결된 수정안은 본회의에 올려 원안에 앞서 표결에 부칠 수 있다.

전원위가 열리자마자 종료될 수도 있다. 일단 전원위를 주관하는 위원장은 문희상 국회의장이 국회부의장 중 한 명을 지명하게 돼 있는데, 문 의장이 바른미래당 소속 주승용 국회부의장을 지명하면 주 부의장의 의사에 따라 언제든지 회의가 종료될 수 있다. 혹은 문 의장이 전원위 소집 자체를 거부할 수도 있다. 지난 2011년 11월에는 민주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에 대한 전원위 소집을 요청했지만 당시 박희태 국회의장이 소집을 거부한 전례가 있다.

한편, 전원위는 1948년 국회법 제정 때 도입돼 1960년 폐지됐다가 2000년 재도입됐다. 이라크 파병동의안 처리와 관련해 파병을 반대하는 의원들의 요구로 2003년, 2004년 두 차례 소집된 사례가 있다. 2004년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이던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도 파병동의안에 대한 전원위 소집을 요청한 적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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