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권 문화경영미디어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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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포스트 전문가 칼럼=이인권] 벤자민 프랭클린은 ‘사람은 지체할 수도 있지만 시간은 그렇지 않다’라고 했다. 그 말대로 가는 시간을 잡을 수도 없이 올 한해도 다 지나가고 있다.

이 송구영신의 시점에 얼마 전 전국의 대학교수들이 설문조사를 통해 사자성어로 2019년을 정리했는데 그것이 ‘공명지조’(共命之鳥)다. 올 내내 이념적 분열로 대립하며 갈등의 극치를 보였던 한국사회를 상상속의 새로 일컬어지는 공명조에 비유했다.

지나가면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올 한해가 격랑의 파도를 타고 역사의 한 장으로 묻혀지는게 못내 아쉬워서였을까. 식자들은 한국사회 현상을 공명조처럼 두 개의 머리를 갖고 서로를 적대시하며 자기주장만 하다가 마침내는 공멸하게 된다는 것에 빗댄 것이다.

돌이켜 보면 온 지구촌이 밀레니엄 버그를 우려하는 가운데 새로운 세계를 갈망하며 새천년을 맞았던 것도 엊그제만 같다. 그렇게 기대하며 시작했던 21세기도 어느덧 강산이 두 번쯤 변했을 즈음에 와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아직 한국사회의 시계는 과거 속에서 멈춰버린 체 ‘타임 워프’(time warp)라는 시간왜곡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급격한 변화 속에 새로운 사회문화체계 곧 진전된 시대에 부합하는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문명을 선도하는 신진세대들은 과거의 타성에 젖은 기성세대들과는 전혀 다른 가치관을 체득하고 있다. 그들은 수직적 행태의 과거 폐습을 거부하며 수평적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으로 한국사회의 피륙을 날실과 씨실로 새롭게 짜나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 한국사회를 이끌고 있는 기성 계층의 가치개념으로는 상전벽해 같은 변화의 사회문화체계를 수용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무빙워크 위를 걸어가는 속도를 일반 통로의 보폭으로 따라가자니 시대 문화의 흐름에 뒤쳐질 수밖에 없다.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모두가 갖게 되는 새해의 희망과 기대 속에 새로운 태양이 떠오를 것이다. 천리대로 뜨고 지는 태양이야 섣달 그믐날이나 새해 첫날이나 떠오르는 모습은 억겁을 통해 한결 같을 것이다. 단지 인간들이 새해가 될 때마다 자신들 기준의 바람을 담아 매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게 될 뿐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설렘 속에 새해 벽두 일출을 바라보면서 한해의 소망을 새기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이내 계속 반복해 움직이는 트레드밀 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또 다른 제자리걸음의 일년이 되어버리는 것이 관성처럼 되어 있다.

사회가 발전해 간다는 것은 시간이 자동적으로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을 운용하는 인간이 옳게 변화해 나가는데 있다. 그래서 앤디 워홀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을 하지만 실제로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설파했다.

21세기를 맞이해 사람에 의해 물질문명은 획기적으로 발전했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의식수준은 여전히 과거에서 맴돌며 혁신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있다. 그런 가운데 내년이면 정확하게 새천년을 지나고 20년이 되는 해가 된다. 사람으로 따지면 성숙해진다는 의미의 스무 해 약관이 되는 시기여서 수치적으로는 매우 뜻깊은 해가 아닐 수 없다.

그런 만큼 한국사회가 명실상부한 선진화를 이룩하기 위해 성숙한 단계로 나아가는 해가 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내년은 지역의 일꾼들을 뽑는 총선이라는 굵직한 정치 일정이 있어 우리사회가 치열한 경쟁으로 치달을 것으로 예상된다.

근본적으로 선거는 승리가 목적인 투전장이기는 하지만 투명하고 정정당당한 겨룸을 통해 우열이 결정되는 정치문화의 원년이 되기를 갈망한다. 정치 후보자들은 국민들이 정치를 보는 수준이 과거와는 다르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사회는 모든 부문에서 균형감과 일체감이 결여되어 있었다. 지역주의에 따른 정치적 파벌, 부와 권력과 출신에 따른 불공정과 불평등이 사회구조를 지배해 왔다. 그래서 우리사회가 시대는 진취적으로 빠르게 변하는데도 여전히 퇴영적 갈등과 대립과 적대감이 상존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글로벌 시대에 걸맞는 평등한 세상의 선진사회를 희구하는 염원을 담아 ‘접화군생'(接化群生)의 가치가 절실하다. 다시 말해 ’군생(群生)에 접(接)하여 화(化)하는‘ 곧 지역, 세대, 계층의 경계를 넘어 조화와 화합의 정신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수평적 공감의 개념이라 할 수 있는 접화군생은 참다운 소통과 공정한 참여로 만들어가는 사회를 뜻한다. 무엇보다 국민이 주체가 되어 다 함께 어우러지는 유기적이며 포용적인 공동체 정신을 바탕으로 하는 사회적 융합이며 통합인 것이다.

그래서 정치사회적 사분오열로 혼미했던 묵은해를 뒤로 하고 2020년 경자년 새해에는 국민 모두가 일심만능의 자세로 큰 화합을 이뤄내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여기에는 무엇보다 전시적 다중의 숫자 결집이 아니라 냉철한 이성과 지혜가 근간이 되는 ‘합리적 보편의지’의 사회적 문화가 정착되어야 할 것이다.

이인권 전 한국소리문화의전당 CEO 대표 · 칼럼니스트 · 문화커뮤니케이터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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