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영화<홍길동>에 매료되어 무대미술가 길로 / “자신의 일에 미치지 않고 성공할 수 없다”조언

 스타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빛난다. 무대 위엔 주연이 있고 조연이 있다. 그 뒷면에는 수많은 스텝들의 보이지 않는 손길이 있다. 감독 촬영 조명 각본가 음향, 무대미술, 디자이너, 코디네이터 등등. 이들은 스타만큼 화려하진 않지만 그 분야에선 장인이다. EBS영상미술국의 김진극(50)무대미술감독도 무대미술 분야의 장인이다. 무대미술과 한 평생을 함께 해 온 그의 인생이야기를 들어본다.

 

 

 

 

 

 

아기 공룡 둘리, 날아라 슈퍼보드, 딩동댕 유치원 등등.
어린 아이들에겐 주옥같은 EBS-TV작품들이 하나같이 김진극 무대미술 감독의 손을 거쳐 세트가 만들어졌다.
EBS와 함께 무대미술의 길을 걸어온 그는 무대미술계에선 정상의 자리에 올라섰다. 정상에 올라섰지만 그의 열정은 끝이 없다. 최고의 자리에서 후배들의 박수를 받으며 떠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대미술감독은 늘 바쁘다. 아침에 출근하면 직원들과 회의를 하고, 무대세트 디자인을 하고, 현장에 올바르게 세트가 만들어졌는지를 관리 감독을 한다. 이뿐 아니다. 방송의 크레디트 타이틀에서부터 자막까지 미술 전 분야에 걸쳐 체크를 하고, 무대 조명까지 다양한 분야를 관장하며 촬영을 위한 모든 지원하는 것이 그의 몫이다.
그는 디자인에서부터 인테리어까지 무대미술, 무대조명에 관한 한 전문가이다. 전문가이기 때문에 무대미술계에서 최고의 자리에 섰다.
그는 “무대미술은 디자인이다. 디자인의 개념만 강조하다보면 촬영에 지장을 준다. 때문에 카메라의 워크에서부터 조명의 설치까지 드라마의 세트촬영 전반에 걸쳐 세심하게 관리 감독을 한다”고 말한다.
EBS가 교육방송을 전문으로 하는 채널인 만큼 무대미술의 컨셉도 어린아이의 시각에서 디자인되고 제작된다. 이 때문인지 그는 어린아이들처럼 해맑은 미소를 가졌는지 모른다.
그가 무대미술에 빠지게 된 것은 어쩌면 운명적이었다. 처음엔 애니메이터를 지향했지만, 영상산업이 발전하면서 무대미술로 바뀌었던 것이다.
그는 지난 67년에 제작된 <홍길동전>에서 영향을 받았다. <홍길동전>은 신동우 화백의 인기 만화를 만화영화로 제작됐다. 국내 최초의 총천연색 만화영화는 어린 그에게 애니메이터의 꿈을 키우게 했다.
군에서 미술담당을 하면서 체계적 미술수업을 받게 된 그는 제대 이후 애니메이션 회사에 입사해 만화영화와 영상에 대한 매력에 폭 빠졌다.
요즘은 컴퓨터로 제작하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수작업으로 그림을 그렸다. 셀이라는 본바탕에 밑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색을 덧칠하는 방식이었다. 때문에 미술을 전공한 사람들이 애니메이션업계에 많이 진출해 있었다.
그는 잠도 자지 않고 그림을 그렸다. 배경을 그리고, 그 위에 셀로 움직이는 주인공 모습을 그려 넣었다. 이렇게 그려진 수십 장의 그림들을 일일이 무비카메라로 찍어 영화가 제작됐다.
“그림을 그릴 때에 제일 행복했다. 주말에 쉴 세도 없이 내 일에 미쳤었다. 일을 하는 시간이 너무 행복했다. 또 주말에 쉬면 성장이 더디다고 생각해 성공하겠다는 욕심으로 악착같이 했다”
그는 일에서 만큼은 욕심이 많고 열성적이었다. 항상 어떤 일에 대한 확신이 생기면 머뭇거림이 없이 행동으로 보여줬다.
만화영화 시장이 일본으로 넘어가면서 국내 시장이 침체한다. 이를 계기로 그는 자연스럽게 영상미술 쪽으로 방향을 옮겨간다.
만화 영화에서 배경을 그렸던 경험을 살려 무대에 그림을 그리는 일에 매달린다. A4용지 크기에 그리던 것을 대형화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무대가 <아기 공룡 둘리>, <날아라 슈퍼보드>, <딩동댕 유치원> 등이다. 그의 무대는 어린아이의 감성이나 다름없다. 때문에 아이들에 감수성 발전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무대미술 감독은 하루도 편히 쉴 수 없을 만큼 바쁘다. 촬영을 끝내고 스텝들이 집으로 향하면, 그때부터 일한다. 전날 사용했던 세트를 철수하고, 새로운 세트를 세운다. 항상 시간에 쫒기다 보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된다는 것.
그는 “항상 시간이 촉박했다. 어쩔 땐 당장 내일 모레 녹화가 있는데 작업이 들어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항상 잠이 부족했다. 그로 인해 10년 전 신경성 위장병으로 인해 한 달간 붓을 잡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쉬는 것이 더 스트레스였다. 그렇게 얼마 후 다시 붓을 잡게 됐다”고 말한다.
모든 배우가 무대 위에 죽고 싶다고 한다. 그만큼 무대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김 감독 역시도 무대에서 죽고 싶다는 말을 한다. 그 또한 무대를 사랑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50대에 들어서니 인생은 짧다는 것을 느꼈다. 방송미술은 나하나 잘해야 되는 것이 아니고 여럿이 준비해서 마감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때문에 나만의 노력과 주변인들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독립된 것은 없는 것 같다. 스텝과의 관계를 최우선으로 하고 직업 자체를 존중해주고 내 일만큼 상대방의 일을 존중해주어야만 협조를 통한 종합예술이 나오는 거 같다. 천상천하 유하독존이 아니다”고 말한다.
그는 “앞으로 보다 쉽게 무대미술을 접하고 재밌게 알리기 위해 지금의 내 위치에서 열심히 노력할 것”이라며 “무대미술을 하는 후배 양성에 노력하고 싶다. 앞으로 풍부한 그림과 멀티적인 그림을 통한 나만의 불후의 명작을 만들어 보고 싶다”
열정적인 그의 무대미술 감독 인생은 이제 1막 1장의 마지막을 채우고 있다. 앞으로 그가 어떤 새로운 모습으로 예술인생을 살아갈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tip>무대미술감독이 되는 길

무대미술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대학 교육기관에서 제도에서부터 그림, 건축, 의상디자인 등을 공부해야 한다. 그 중 기본적인 디자인 능력은 필수이며 스케치 기술도 필요하다.
이 밖에도 시나리오를 분석하는 기법에서부터 공간을 이해하는 법 등 다양한 능력을 키워야 한다. 또한 무대미술감독은 디자인 뿐 아니라 영화 제작 전반에 대한 지식을 갖춰야 하고 소품, 의상,분장 등 여러 팀을 통솔해야 하므로 리더십과 원만한 대인관계가 필요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만큼 노력하나’이다.
미술감독을 지망하는 이들을 위해 EBS교육방송에서 미술감독을 맡고 있는 김진극 씨는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김 감독은  "어떤 일이든 간에 내가 하는 일에 미쳐야만 그만큼에 성공을 하고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다만 소질을 발휘해 내가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그는 어떤 일이든 간에 정말 자신이 그 일에 미치지 않고는 성공할 수 없다. 하려면 제대로 하고 안하려면 애초에 발을 들이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한 번 발을 들인 이상 그 일에 대한 행복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노력을 해야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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