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화가 부른 비극 국보 1호 숭례문 화재①

국보 1호 숭례문에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 모든 시민들이 비통함을 안은 채 지켜보는 가운데 5시간만에 불길이 멈췄다. 백발의 노인의 어처구니없는 방화에 우리 국민들은 망연자실 넋을 놓고 말았다. 관계당국의 허술한 일 처리와 신속하지 못한 대처능력은 국민들의 질타를 자아내고 있다. 숭례문 방화사건의 원인과 문제점을 짚어본다.


5시간만에 국보 1호 소실
설 연휴가 막바지에 이르던 지난 10일 저녁, 숭례문 부근은 행인들 몇 명만 길을 오갈 뿐, 한산한 기운마저 감돌고 있었다. 어둠속에서 거리를 배회하던 한 사람의 그림자가 점점 숭례문을 향하고 있다. 그날따라 숭례문을 비추는 조명은 유난히 빛을 발하고 있었지만 그를 제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비장한 발걸음이 숭례문에 가까워지자 백발에 검정색 모자를 쓴 채 모(70)씨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휴대용 사다리와 시너가 든 두 개의 커다란 가방을 들고 숭례문의 좌측 비탈로 올라갔다. 가방에서 접이식 알루미늄 사다리를 꺼낸 채 씨는 2층 누각으로 올랐다.
대한민국의 국보 1호 숭례문 위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의 광경은 너무도 고요했다. 채 씨의 억울한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모든 것이 평화로워보였다. 넋을 잃고 야경을 바라보던 채 씨는 결심을 한 듯 시너가 든 페트병 뚜껑을 열어 이를 바닥에 흩뿌렸다. 그는 창경궁 방화범으로 몰렸던 억울한 누명과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토지 보상 문제들의 기억을 되새기며 마지막 한 방울까지 모두 쏟아냈다. 남은 두 병을 나란히 내려놓은 채 씨는 주머니에 있던 라이터를 꺼냈다. ‘치익’ 불을 켠 라이터를 바닥에 고여 있는 시너에 가까이 댔다. 불은 순식간에 확 퍼졌다. 회심의 미소를 띠며 불꽃을 바라보던 채 씨는 이내 숭례문에서 나와 유유히 사라졌다. 
2월 10일 저녁 8시 45분경. 숭례문에서 뿌연 연기와 시뻘건 불길이 치솟았다. 길을 지나던 사람들은 어이없는 광경에 넋을 놓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상경 길에 아이의 손을 부여잡고 숭례문의 산화를 지켜보던 시민은 아이들에게 부끄럽다며 눈물을 훔쳤고, 내려앉은 기왓장이 하나 둘, 땅바닥으로 떨어질 때마다 통곡하고 눈시울을 붉히는 시민들도 있었다.
밤새 숭례문이 불타는 장면을 TV로 지켜보던 국민들 또한 가슴을 졸였다. 거친 불길에 휩싸인 숭례문이 전소되기까지의 5시간은 좌절 그 자체였다. 대한민국의 문화적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는 국보 1호를 홀랑 태워버린 국민들이 느끼는 참담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범인 채 씨, 방화 다음날 고스톱까지 쳐 경악
방재시스템 매뉴얼화 등 유사 범죄 대책 시급

 

 70 노인의 어이없는 방화
숭례문 소실 후 국민들의 모든 시선은 화재의 원인에 쏠렸다. 방화, 전기누전 등 여러 가지 추측이 난무했지만 목격자의 제보와 경찰의 신속한 조사로 화재 하루 만에 범인이 검거됐다. 이 엄청난 화재의 범인은 백발이 무성한 한 노인으로 드러났고 96년 창경궁의 방화범이었다는 사실에 국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11일 오후 8시 15분경. 범인 채 씨는 전처가 살고 있는 강화군 집 앞에서 검거됐다. 채 씨는 “억울함을 호소하려고 방화했다”고 밝혔다.
채 씨는 자신의 편지를 통해 “토지보상 문제로 정부에 억울함을 수차례 진정했으나 한 번도 들어주지 않았다. 또 철거당한 후 창경궁에 놀러갔다가 불난 곳 가까이 있다는 이유로 방화범으로 몰렸다. 검사는 구체적 증거 없이 내 뒷모습이 방화범의 인상착의와 같다며 범인으로 몰았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채 씨는 이 엄청난 범행을 저지르고도 태연하게 이웃과 화투를 치는 등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보였다. 정신 병력이 없는 채 씨가 이 같은 행동을 보이는 이유는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방화범의 심리상태와 동일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불만을 정상적인 방법으로 표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방화라는 방법을 동원한다고 분석한다.
방화범들의 심리분석보고서를 펴낸 형사정책연구원 박형민 연구원은 “채 씨는 불이라는 과시적 도구를 통해 자신의 의사를 관철시키려고 한 것이다. 불은 자신의 약함을 감추고 상대방을 쉽게 제압할 수 있는 힘을 나타낸다”고 진단했다.
토지 보상금 문제와 재판으로 사회에 대한 반감까지 갖게 된 채 씨처럼 피해의식이 개인적인 불만을 넘어 반사회적 감정으로까지 발전되면 방화 대상도 달라진다.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타격을 입을 만한 좀 더 큰 대상을 찾는다는 것이다.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대중과 정부기관이 자신의 불만에 관심을 가져주길 바랬고, 유명문화재야말로 사회에 대한 반감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대상물이라고 생각했을 것”으로 분석했다.

 

문화재 제대로 된 감정평가 필요
소실된 숭례문의 복원비용은 200억원 가량으로 추산되지만 보험가액은 9500만원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졌다. 건축물의 경우 문화적 가치와 복구비를 기준으로 삼아 보험가를 산정하는데, 문화재청이 최근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 등 26개 궁궐과 능을 대상으로 민간 손해보험에 재가입한 보험가액은 411억원, 연간 보혐료는 3500만원에 불가했다. 하물며 숭례문의 경우는 민영손보사도 아닌 한국지방재정공제회의 화재보험에 가입해 이들 문화재에 비해 터무니없는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문화재청이 국회에 제출한 ‘문화재의 보험 가입 실태’에 따르면 국·보물 제 1~100호 가운데 보험에 가입된 문화재는 총 26건에 불과했다.
숭례문이라는 문화재를 금액으로 환산을 해보려 시도했지만 이를 금전적 가치로 매기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다. 서울시 토지종합정보서비스에서 공개하는 서울시 개별공시지가로 토지금액을 환산해 보았다. 숭례문의 주소인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 4가 29번지의 공시지가는 1m2당 653만원으로 숭례문의 총 면적 177m2로 계산하면 토지의 금액은 11억 5581만원이다. 이는 단순계산에 의한 금액으로 실제로는 거래되지 않는 땅이어서 정확한 부지의 가격은 알 수 없다.
감정을 의뢰했던 한 문화재 감정위원은 “숭례문이 가지는 600년의 역사적 가치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재라는 상징적 가치는 금전적 가치와 비교대상이 될 수 없다. 다만 소실된 숭례문을 다시 복원하는 일에 매진하는 것이 그 가치를 되살리는 일”이라고 뜻을 전했다. 다른 감정 위원들도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전문 감정단이 아닌 이상 어느 누구도 선뜻 그 가격을 감정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문화재가 아닌 기존의 감정 받은 현판의 가격 등을 미루어 대략적인 금액을 짐작할 수는 있으나 이는 터무니없는 추측일 뿐 결코 합당할 수는 없다”고 전했다.
또한 “이제 우리 문화재도 감정 평가를 통해 복원비용 및 문화적 가치 산정을 근거로 한 보험가를 책정하고 이를 토대로 한 보험가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허술한 숭례문 관리, 예고된 인재
지난 600년간 서울시내 한복판에서 기품을 자랑하던 숭례문의 방화는 예고된 인재였다. 이번 사건은 우리 소방방재시스템에 얼마나 큰 구멍이 뚫려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1398년에 건축돼 임진왜란, 병자호란, 6·25전쟁을 견디며 국민과 함께해 온 숭례문은 허술하기 짝이 없는 문화재 화재 대응 매뉴얼과 소방청의 미비한 화재 대처 능력, 관련 기관의 책임미루기 등이 가져다 준 당연한 결과였다.
방화범 채 씨는 경찰조사에서 “먼저 종묘에 불을 지르려 했으나 종묘는 경비시설이 잘 돼있어 쉽게 접근 가능한 숭례문을 택했다”고 방화이유를 설명했다. 일부 노숙자들이 그곳에서 라면을 끓여먹고 불놀이를 해도 어느 누구하나 제지하는 사람은 없었다는 것만 봐도 숭례문 관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봐야한다.
뿐만 아니다. 숭례문에는 스프링클러, 화재경보장치 같은 기본적인 화재 안전장비가 갖추어져있지 않고 달랑 소화기 8대만이 숭례문을 지키고 있었다.
서울 중부 소방서가 지난해 4월 숭례문 화재 대비 가상훈련을 실시했다는 기록이 발견돼 국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실제훈련이 아닌 형식적인 훈련에 그쳐 정작 이번 화재 때는 300명이 넘는 소방대원들이 제대로 불을 진압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한편 일각에서는 기초가 부실한 문화상품화가 재앙을 불렀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화재에 대한 그 어떤 대책도 세워놓지 않은 채 무작정 숭례문을 개방한 것이 화근이라는 것이다.
‘엽전으로 제기 찬다’라는 말이 있다. 문화재에 대한 무지로 귀한 줄 모르고 함부로 대한다는 말을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맥락으로 볼 때 숭례문의 비극은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의 책임이다. 전기 조명으로 눈에 띠게 만들어 놓은 문화재에 화재감지기 하나 없이 모든 시민에게 공개한 무신경,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으로 결국 사라져 버린 뒤 해결책 찾으려는 관계부서들, 서로 ‘네 탓이오’하며 책임을 떠넘기는 무책임. 매번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는 우리 모두는 이번 참사의 공범이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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