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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탐구 -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
최근 성과 부진 업계 위상 추락, 위기 돌파구 마련 ‘승부수’ 기대
2012년 01월 16일 (월) 16:00:06 이미정 기자 dlalwjd1234@naver.com

[뉴스포스트= 이미정 기자] 작년 11월 재벌랭킹에 따르면, 한국 10대 부자 명단에 박현주(54) 미래에셋그룹 회장이 올랐다. 자수성가형 인물이 재벌 기업인을 제치고 10위권 부자순위에 들어간 것은 매우 이례적 일이다. 박 회장은 평범한 증권맨으로 출발해 국내 최초의 뮤추얼펀드를 시장에 선보이면서 국내 증시에 펀드 투자 열풍을 일으킨 인물이다. 재벌 자본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보험사, 벤처 캐피탈 등 금융 대그룹을 일궈내 업계의 찬사를 받았던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박 회장은 과거의 명성과는 어울리지 않는 ‘가시밭길’을 걷고 있다. 지난해 유로존 위기로 주식시장이 급락한 데다, 해외펀드의 성과 부진으로 환매가 지속되면서 업계 위상마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과연 ‘금융권 신화’는 이대로 몰락할 것인가.

   
                                                                                     ▲ 미래에셋 박현주 회장

1958년 태어난 박 회장의 고향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평동이다. 그의 아버지는 제법 큰 농사를 짓는 중농이었다. 그는 공부를 잘하고 작문 실력이 뛰어나 아버지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아들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죽음은 그를 고등학교 학창시절 내내 방황으로 이끈다. 자연히 공부와는 담을 쌓았고 중학교는 수석으로 졸업했으나 고등학교는 꼴찌로 졸업하게 된다. 하지만 방황시절에도 책은 손에서 놓지 않았다고 한다.

도전정신이 성공 이끌어 

그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전략을 다룬 책에 유난히 끌린다는 걸 알게 됐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나 케네디 자서전, 키신저 자서전 같은 것들은 대여섯 번씩 거푸 읽었다”고 말했다.

고교 시절 독서는 그에게 경영자의 꿈을 심어주었다. 재수 끝에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입학한 그는 주식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리고 대학 2학년 때부터 어머니가 보내준 1년치 용돈을 이용해 주식투자를 시작했다.

박현주 회장은 ‘국내 최초’라는 수식어를 많이 달고 있는 사람이다. 이 말은 곧 그가 남들이 가지 않은 길에 도전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몇 년 동안 명동증권가를 기웃거려 증권시장의 전체적 그림을 살피던 그는 대학원생(당시 26세)이던 1984년, 사실상 최초의 사설 투자자문사인 내외증권연구소를 설립했다. 그동안 증권 투자를 통해 번 돈으로 서울 회현동 코리아헤럴드 빌딩 18층에 20평 남짓한 사무실을 마련했다. 당시 증권시장은 ‘소문’에 의존하는 허술한 시스템으로 운영됐기에 그는 무엇보다 시장을 분석할 수 있는 힘을 키우는데 주력했다.

하지만 2년 후 1986년, 그는 내외증권연구소의 문을 닫았다. 투자자문사 설립에 법적 근거가 없는 점과 아직 개인사업자가 독자적 브랜드로 자본 시장에 뛰어들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리고는 당시 증권가 최고스타였던 이승배 동원증권 상무를 무작정 찾아간다. 그의 영업 스타일과 브로커로서의 자세를 배우고 싶었던 것이다. 몇 번의 문전박대 끝에 입사에 성공, 그와 책상을 마주보고 일하게 된다. 그로부터 불과 45일 뒤 그는 대리로 승진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증권 영업맨으로 승승장구하던 시절, 박 회장은 또 다른 도전을 시작했다. 1989년, 동양증권 중앙지점장을 자원한 것이다. 당시는 코스피지수가 처음으로 1,000선을 돌파한 뒤 곧바로 폭락세로 돌아선 시기로, 모든 사람들이 지점 근무를 기피하던 때였다.

패기만만한 젊은이들로 영업진용을 새로 짜며 지점에 활력을 불어 넣은 그는 동양증권 지점을 1조4,000억원의 주식약정을 올리는 전국 1위 지점으로 만들어 놓았다. 이른바 '박현주 신화'의 시작됐다. 그 후 압구정지점장이 돼서는 2년 연속 전국 증권사지점 중 약정고 1위라는 전무후무한 기록도 세웠고, 95년엔 최연소로 강남본부장 겸 이사로 발탁됐다.

하지만 그는 더 큰 꿈을 품고 회사를 박차고 나왔다. 1997년 그는 당시 구재상 압구정지점장, 최현만 서초지점장 등 8명의 '박현주 사단'과 함께 미래에셋캐피탈(옛 미래창업투자)창업했다.

1998년 말에는 미래에셋자산운용을 설립한 뒤 국내 최초 뮤추얼펀드인 '박현주 1호'를 성공시켰다. ‘박현주 1호 펀드’는 2시간 30분 만에 500억 한도가 모두 팔리며 업계의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외환위기’라는 국가적 위기상황을 겪고 있을 때 거둔 성과라 이 같은 성공은 모든 국민에게 큰 희망을 안겨줬다.

   
▲지난 2009년 12월 10일 오후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3회 언스트앤영 최우수 기업가상' 시상식. 우측으로부터 세 번째 위치한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은 당시 마스터상을 수상했다.

그는 미래에셋증권을 설립한 뒤 다양한 차별화 정책을 펼쳤다. 첫 번째가 위탁 수수료율을 대폭 인하하는 정책이었다. 기존 증권사가 거래액의 0.5% 정도를 수수료로 제하는 데 비해 미래에셋증권은 그 비율을 0.29%로 확 낮췄다. 또한 다른 증권사들이 비용을 축소하기 위해 지점을 줄여 나가는 동안 지점수를 확대하는 전략도 추진했다. 이 같은 전략으로 미래에셋증권은 출범 1년 만에 전국 약정고 6~7위 증권사로 도약하게 된다.

2005년에는 SK생명보험을 인수해 자산운용과 증권, 생명보험으로 짜인 ‘금융그룹’으로 올라서는 등 거침없는 성장세를 보였다.

‘신화’의 몰락

하지만 언제나 승승장구만 할 수는 없는 법. 2007년 10월 말 펀드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던 '인사이트펀드'가 대규모 손실을 기록하며 ‘박현주 신화’는 위기를 맞게 된다. '인사이트펀드'는 한 달 만에 4조원어치가 팔렸지만, 정확히 6개월 후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으로 수익률이 곤두박질 쳤다. ‘박현주’의 이름을 믿고 투자했던 개인들의 원금은 반토막 났고 미래에셋생명 또한 금융위기로 큰 타격을 입었다.

현재까지도 ‘인사이트펀드’는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 중이다. 지난해 미래에셋의 자산운용 실적은 국내 최하위를 기록했다.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운용하는 9조3,363억원 상당의 국내주식형펀드의 작년 수익률은 -15.97%로 운용순자산 1조원 이상 운용사 중 가장 낮았다.

   
▲지난 2008년 1월 9일 오후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이명박 당선인 초청 금융인 간담회에서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이 인사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미래에셋의 이 같은 위기상황이 ‘공동운용시스템의 취약성’과 ‘간판 펀드매니저의 잦은 이탈’ 그리고 ‘박현주 회장의 리더십 부족’ 등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리더십 부족’ 지적은 고객의 수익률 악화에 대한 그의 수동적 대응에 대한 반발에서 나온 것이라고  업계에서는 풀이한다.

그런데 임진년 새해에 박 회장은 최근 독특한 반성문을 기재하며 작년과는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박 회장은 일간지에 편지형식의 광고를 실어 지난해 부진했던 펀드 수익률을 반성하고 새해 각오를 다졌다. 특히 박 회장 본인이 직접 나서 지난 한해 고객이 원하는 수익을 안겨주지 못했다는 점을 고백하고, 새해에는 자산을 다각화하는 포트폴리오로 변화를 꾀하겠다고 다짐해 눈길을 끌었다.

박 회장은 "지난해에는 변동성이 큰 시장이었고 고객의 자산보호에 무게를 둔 전략을 펼쳤지만 결과적으로 만족할만한 수익을 드리지 못했다"며 "새해에도 유로존 문제나 인플레이션, 가계부채와 같은 어려움이 있지만 자산을 다각화하는 포트폴리오로 전략적으로 대처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래에셋은 국내외에서 60조가 넘는 자산을 운용하고 총 120조를 움직이는 글로벌 그룹에 걸맞게 운용시스템을 비롯해 많은 것을 변화하려 한다"며 "새로운 미래에셋으로 지금까지의 미래에셋을 넘어서겠다"고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업계에서는 박 회장이 이례적인 신년사를 통해 새해 각오를 밝힌 것은 그만큼 미래에셋이 ‘위기’임을 인정하는 동시에, 이같은 위기상황을 극복해보겠다는 박 회장의 ‘강력한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보고 있다.

실제 박 회장은 최근 미래에셋 금융계열사 전반에 걸친 조직개편과 구조조정을 잇따라 실시하며 분주한 개혁 행보를 보이고 있다. 특히 공모펀드 중심의 ‘미래에셋자산운용’과 사모펀드 및 대안투자 중심의 ‘미래에셋맵스’의 합병을 발표하며 맵스 같은 대안투자에 더 무게를 두는 등 새로운 돌파구 마련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래에셋에 있어 올해는 그룹의 향방을 가늠할 중차대한 시기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박 회장의 이같은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과연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던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이 업계 위상을 회복하고 또 다른 ‘신화’를 써낼 지, 그의 행보에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프로필>

출생 1958년 10월 17일 (광주광역시)
소속 미래에셋그룹 회장
학력 고려대학교 경영학 학사
수상 2011년 제1회 금융투자인상 대상
     2009년 제3회 언스트앤영 최우수 기업가상 마스터상
경력 2001~ 미래에셋 회장
     1999 미래에셋증권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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