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박근혜의 오월동주 전략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오월동주(吳越同舟)’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지금 두 사람은 한나라당이란 같은 배에 타고 있지만 결코 ‘동지’가 아니다. 이들을 핵으로 지난해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갈라진 ‘친이(親李)’-‘친박(親朴)’ 세력도 마찬가지다. 4·9 총선을 거쳐 다시 정치권 전면에 나서게 된 양측 당선자들은 “2차 승부는 지금부터”라며 서로 독기를 품고 있다. 바야흐로 여권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친이와 친박의 2차 대전이 개전의 포성을 울린 형국이다.


 이번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전체 299석 가운데 153석을 얻어 과반의석에 턱걸이했다. 그러나 친이 입장에서만 보면 대실패다. 친이 진영은 당초 총선을 통해 많게는 180석 이상까지 얻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래서 당내에서 당선되는 친박 성향 후보자 30명 가량을 제외하고도 과반의석을 꾸릴 수 있다면 친박 세력은 속속 전향하거나 자멸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결과는 그런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 한나라당내 친박 성향 후보자는 예상대로 30여명이 당선됐지만 친이 성향을 비롯한 다른 후보들이 영남권에서 줄줄이 낙마하는 바람에 친박 없이는 여당을 제대로 꾸려가기 어려운 지경에 처했다.
 반면, 친박 진영의 기세는 하늘을 찌르고 있다. 한나라당 공천을 받은 당선자 30여명과 ‘친박연대’ 14명, 여기다 친박 성향 무소속 10여명까지 합쳐 50여명의 ‘박근혜 친위대’가 국회에 입성하는 결과를 낳았다.
 한나라당 당선자 가운데 범(汎) 친이 계보는 100여명에 달한다. 하지만 범 친이는 정권 실세 별로 분화돼 있다. 친박처럼 하나의 단단한 세력으로 간주하기 어려울 정도로 응집력이 약하다. 여기다 이번 총선에서 친이 핵심인 이재오·이방호·박형준·정종복 의원 등이 줄줄이 낙마한 만큼 범 친이 세력을 하나로 뭉칠 구심점이 사라졌다시피 하다.
 친박은 벌써부터 친이를 강하게 압박하고 나섰다. 박 전 대표 본인부터 그렇다.
 박 전 대표는 선거가 끝난 이틀 뒤인 11일 대구 달성군 자신의 선거사무소로 찾아온 친박 연대와 친박 무소속 당선자 24명들을 만난 자리서 이들의 복당 논란에 대해 “(선거에서) 국민의 심판을 받았기 때문에 당연히 당에서 받아들여야 된다”며 당 지도부를 압박했다.
 여기다 친박연대의 서청원 공동대표는 같은 날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한나라당 복당 문제와 관련, “친박연대가 살살 빌면서 갈 이유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서 대표는 “현재도 의석수가 14석인데, 교섭단체(20석)를 만들면 저희가 아쉬울 게 하나도 없다. 다른 정파들과 연대해 교섭단체를 만들면 되지 비굴하게 할 것 없다”고도 했다.

MB, 보수대연합 통한 강력한 정부 구상
박근혜, 2010년 지방선거 후 본격 행동


 박 전 대표와 서 대표의 이 같은 언급에서 친박 세력의 자신감이 묻어난다. 친박연대의 한 관계자는 “선거 결과 우리가 아쉬울 것은 하나도 없어졌다. 정 아니다 싶으면 한나라당 당선자까지 모두 불러내서 정당을 만들면 된다. 여기다 같은 보수성향인 이회창 총재의 자유선진당과도 연대할 경우 의석수 70명의 강력한 야당을 만들 수 있다. 반면, 한나라당은 120석만 갖는 여당으로 추락하는 만큼 여소야대 정국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 전 대표 진영이 그런 모험을 강행할 가능성은 낮다. 무엇보다 박 전 대표가 당을 떠나 깃발을 든다고 해서 한나라당 소속으로 당선된 30여명이 동반 탈당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당의 한 관계자는 “이 경우 여당 프리미엄을 버리고 5년 후를 기약해서 박 전 대표와 행동을 함께 할 사람은 유승민·이혜훈·유정복 의원 정도를 포함해서 골수 ‘박근혜 계’ 5~6명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친박연대나 친박 무소속 중에서도 이탈자가 생길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박근혜 당’은 군소정당으로 전락해 버릴 소지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박 전 대표 진영은 어떻게 해서든 한나라당에 모두 들어가서 여권의 한 줄기로 자리 잡아야 차기를 도모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하는 듯하다.
 이와 관련, 박 전 대표 측 한 관계자는 “무조건 한나라당에 둥지를 틀고 2년은 꾹 참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2년 대망론’은 이렇다.
 “오는 7월 전당대회에서 우리가 굳이 당권을 잡으려고 시도할 필요가 없다. 이번에 당권을 잡은 세력은 2010년 4월 지방선거 직후 반드시 몰락한다. 지금 국민들의 경제 살리기 기대가 높은데 2010년에도 국민들이 만족할 정도로 경제가 좋아질 리 없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의 중간평가 성격으로 치러질 지방선거에서 여당은 참패할 것이고, 그 결과 책임론이 불거져 당 지도부가 곤경에 처할 게 분명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지방선거 직후인 그 해 7월에 다시 전당대회가 열리는 데 그 때 우리가 힘을 모아 당권을 잡고 차기를 대비하면 된다. 이렇게 되면 2012년 연말의 18대 대선에 앞서 그해 4월에 실시되는 19대 총선에서도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다.”
 상당히 장기적인 안목의 박근혜 진영 대권 플랜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 대응하는 이명박 대통령 핵심 측근들의 구상은 무엇일까.

청와대와 국회 주변에선 ‘보수대연합론’이 제기된다. 이번 총선 결과는 한 마디로 ‘보수 세력의 대약진-진보세력의 몰락’으로 정리할 수 있다.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 친박연대와 여권 성향의 무소속 당선자를 모두 합치면 203석의 무소불위 의석을 확보할 수 있다. 개헌에 필요한 의석이 200 석인만큼 보수세력이 하나로 뭉치기만 하면 못할 것이 없다.
 이 대통령 입장에서는 절대 안정 의석을 보유한 상태에서 ‘경제 살리기’에 매진하기 위해선 충분히 검토 가능한 카드다. 대신 범 보수 세력을 하나로 모으려면 자신은 정치에 일절 간섭하지 않고 국정에만 전념해야 한다. 그래야만 범 보수 진영의 각 세력에게 공정한  ‘차기’ 경쟁을 보장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는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 앞으로도 한나라당이란 배에 함께 승선해 정국 풍랑을 헤쳐 갈 가능성이 높다. 다만 항해 도중 의외의 돌풍을 만날 경우 항로를 놓고 티격태격하다가 한 쪽이 구명정을 내려 하선해 버릴 수도 있고, 목적지를 눈앞에 둔 시점에 대규모 선상반란이 일어날 소지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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