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사실적 배경
첩보와 스릴러, 액션이 잘 버무려져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영화 <헌트>가 8월 24일 현재 박스오피스 1위를 15일째 유지하고 있다. 1999년 <태양은 없다> 이후 23년 만에 이정재와 정우성이 함께 출연해 눈길을 끌었고, 이정재가 시나리오 작업은 물론 감독까지 맡았다고 해 더욱 화제가 된 영화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완성도 관련한 편견이 있었던 영화이기도 했다.

영화 '헌트'의 한장면. (사진: 메가박스. 중앙(주)플러스엠 제공)
영화 '헌트'의 한장면. (사진: 메가박스. 중앙(주)플러스엠 제공)

하지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두 미남 배우의 얼굴을 내세우지도 않고 영화를 처음 연출하는 초짜 감독의 어설픔도 보이지 않는 영화라는 평가를 얻고 있다. 박스오피스 1위라는 성적이 이를 보여준다.

영화 '헌트' 포스터. (사진: 메가박스. 중앙(주)플러스엠 제공)
영화 '헌트' 포스터. (사진: 메가박스. 중앙(주)플러스엠 제공)

첩보와 스릴러, 그리고 액션이 잘 버무려진 <헌트>

영화는 5공화국 시절인 1983년을 배경으로 한다. 안기부 해외팀 차장 박평호(이정재 분)와 국내팀 차장 김정도(정우성 분)가 조직 내부에 잠입한 스파이 ‘동림’을 찾기 위해 벌이는 암투가 주요 이야기다.

<헌트>는 전형적 스파이물 영화다. 영화는 조직을 배신한 스파이 ‘동림’이 누구인지 찾아가는 과정을 그려낸다. 그리고 정체가 밝혀진 후에는 그가 왜 스파이가 되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이런 배경과 설정이 <헌트>를 스릴러물로도 만든다. 파편처럼 흩어진 단서들을 조합해 뭔가 밝혀지려 하면 새로운 사건이 터져 이야기 방향에 전환이 일어난다. 

거의 마지막 순간까지 누가 진짜 변절자인지 알 수 없게 하는 <헌트>는 관객들을 긴장의 극치로 몰고 간다. 그 긴장을 풀어주는 처방이 곳곳에 배치한 액션 장면이다. 영화 초반부터 터지는 총격전과 자동차 추격 장면은 이 영화가 본격 액션물이라고 선언하는 듯했다.

영화는 급류타기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거침없이 휘몰아친다. 그렇다고 숨 가쁘지도 어지럽지도 않다. 덕분에 관객들을 이야기에 몰입시킨다. 신인 감독 이정재의 섬세한 연출력 때문이라는 평이다.

영화의 장르적 재미에 빠진 젊은 세대들

지난 주말 기자는 지인들과 <헌트>를 감상하러 경기도의 한 극장을 찾았다. 10대와 20대 관객이 많이 보이고 기자 일행처럼 50대 이상의 나이 지긋한 이들도 더러 보였다.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객석은 집중하는 분위기였다. 팝콘을 먹거나 음료수를 마실 틈을 주지 않을 정도로 영화는 몰입감을 줬다. 

영화가 끝나고는 대체로 만족스러워하는 관객들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젊은 관객들은 주로 액션이나 서스펜스 등 영화 구조가 주는 요인을 재미 포인트로 꼽았다.

“시작부터 몰아친 총격전과 카체이싱, 무엇보다 이정재와 정우성의 계단 격투 장면이 기억에 남아요. 제가 본 액션 장면 중 최고인 듯해요.”

고등학생 한모군과 일행은 이 영화의 액션 연출에 감명받았다고 했다. 군대 휴가 중이라는 20대 일행도 화려한 비주얼의 배우들이 펼치는 강렬한 액션 장면들을 인상적으로 꼽으며 특히 계단 격투 장면을 언급했다. 이정재 감독은 언론과 인터뷰에서 액션 장면을 20분 단위로 배치했다고 설명했다. 영화의 리듬과 관객들의 호흡이 잘 맞아떨어진 듯.

“스파이 ‘동림’의 정체가 밝혀지던 순간 저도 모르게 탄식을 내뱉게 되더라고요. 영화 초반부터 쌓인 여러 복선이 한꺼번에 무너지던 순간이었잖아요. 심하게 몰입하며 봤어요.”

20대 직장인 커플의 말이다. 영화 <헌트>에는 반전이 많다. 극적 전환을 위해 무리수를 두는 것이 아닌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 관객들의 허를 찌르는 반전들이다. 한 30대 부부는 반전은 물론 두 주인공의 서사와 감정이 서서히 올라가는 과정에서 스릴과 서스펜스를 느꼈다고 했다.

“제가 본 최고의 스파이 영화 중 하나예요. 주인공들 서사도 단단하고 전개도 자연스럽고 반전도 빈틈없고요. 어색한 구석 하나 없는 첩보물 같아요. 시나리오 구해서 분석하고 싶을 정도로.”

어느 30대 추리 작가 지망생의 말이다. 이렇듯 <헌트>는 젊은 관객들에게 리드미컬한 액션과 숨 막히는 스릴러라는 영화 구조에 스파이 이야기를 조화롭게 입힌 영화라는 평가를 얻고 있다. 

영화 '헌트'의 한 장면. (사진: 메가박스. 중앙(주)플러스엠 제공)
영화 '헌트'의 한 장면. (사진: 메가박스. 중앙(주)플러스엠 제공)

그 시절 그때를 생각나게 하는 영화

그런데 젊은 관객들이 <헌트>에서 장르적 재미 포인트를 찾는다면 40대나 5060 세대들에게 <헌트>는 과거를 돌아보며 회상에 젖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

SNS 반응을 보면 40대들은 <헌트> 개봉 소식에 23년 전 영화 <태양은 없다>를 떠올린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태양은 없다>에서 꿈조차 꾸기 어려운 청춘으로 나온 이정재와 정우성이 <헌트>에서는 암울한 국가의 현실과 싸우는 중년의 모습으로 등장한 것에 뭉클했다는 글들을 볼 수 있다. 방황하는 청년이 든든한 아저씨로 성장한 대견함이랄까. 혹은 같은 시절을 살아온 자신의 모습이 보여서였을까.

반면 50대 이후 세대들에게 <헌트>는 과거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는 평이 많다. 특히 5공화국을 연상케 하는 배경이 그렇다고. 

1980년 광주에 민주화운동 진압을 위해 7공수여단이 주둔하는 장면, 정권에 반대하는 이들을 고문하고 간첩으로 조작하는 장면 등 <헌트>는 실제 역사에서 가져온 장면이 많다. 이러한 배경 설정이 당시 청년이었던 50대 이후 세대들에게 영화에 몰입하게 하는 요소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분단국가라는 상황에서 벌어졌던 실제 사건을 재해석한 장면들이 50대 이후 세대들에게 현실감을 더해주었다고.

그중에서도 미그기를 몰고 귀순한 이중좌(황정민 분) 에피소드는 1983년에 실제로 발생한 이웅평의 미그기 귀순을 떠올리게 했다. 당시 남한 전역에 실제 상황이라는 방송과 함께 사이렌이 울렸었는데 고등학생이었던 기자도 그 소리를 두려운 마음으로 들었던 기억이 있다. 

좋은 영화의 조건은

좋은 영화는 그것을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를 것이다. 관객이 많이 들거나, 평론가들에게 호평을 받거나, 혹은 영화제에서 상을 받거나. 무엇보다 관객들이 재미있게 보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면 좋은 영화일 것이다.

<헌트>는 배우 출신 신인 감독의 첫 연출 영화라는 여러 선입견을 딛고 탄탄한 구조와 촘촘한 이야기로 관객들에게 만족을 주고 있다. 그런 면에서 <헌트>는 모든 세대에게 재미와 공감을 주는 의미 있는 영화로 기억될 듯하다. 

물론 세대별로 재미 포인트와 공감하는 지점이 다를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헌트>를 더욱 의미 있는 영화로 만드는 요인이 아닐까.

배우 이정재는 영화 '헌트'를 연출한 감독이기도 하다 . (사진: 메가박스. 중앙(주)플러스엠 제공)
배우 이정재는 영화 '헌트'를 연출한 감독이기도 하다 . (사진: 메가박스. 중앙(주)플러스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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