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혁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 인터뷰
점점 잊혀지는 양곡관리법 개정안 이슈
“농민 살리려면 농업 생산비 보장이 시급”

시대가 바뀌면서 농사(農事)의 의미도 달라졌다. 농업 종사자 비율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줄었고, 풍년은 더이상 축복이 아니다. 국가의 적극적 개입 없이 복잡한 자본 시장 경제에서 농업은 살아남기조차 어렵게 됐다. 다만 농업은 여전히 국민 주권이자 안보이다. 중요성은 과거와 마찬가지지만, 구조는 판이하게 달라진 오늘날. 대한민국 국민의 주식인 양곡(糧穀)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뉴스포스트>가 파헤쳐봤다. -편집자 주-

(그래픽=뉴스포스트 강은지 기자)
(그래픽=뉴스포스트 강은지 기자)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지난해 벼 재배 농가를 최악의 상황으로 이끌었던 이른바 ‘쌀값 폭락 사태’의 재현을 막고자 야당이 발의한 법안이다. 쌀 생산량이 일정치 이상을 초과하면 정부가 의무적으로 사들여 시장 가격을 조절하는 것이 골자다. 쌀값이 비정상적으로 폭락했을 때도 정부 개입을 통해 농민의 최소 생계를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다. 

정부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거부한 대신 올해 수확기 쌀값을 80kg 기준 20만원 수준으로 유지하고, 보조금의 일종인 농업직불금 예산을 확대할 예정이다. 또한 벼 재배 면적 감축 및 밭작물 장려 등의 방안으로 쌀 수급을 안정시키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농민들의 반응은 조용하다.

<뉴스포스트> 벼 재배 농민들의 바람과 이들을 위한 실질적 정책이 무엇인지 탐색하기 위해 이근혁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과 지난 19일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위원장은 인터뷰 내내 농업 생산비를 정부가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8월 전국농민회총연맹과 농민의길 회원들이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쌀값 폭락 및 농업생산비 폭등 관련해 기자회견을 마치고 도로에 쌀을 뿌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해 8월 전국농민회총연맹과 농민의길 회원들이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쌀값 폭락 및 농업생산비 폭등 관련해 기자회견을 마치고 도로에 쌀을 뿌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현재 벼 재배 농가가 당면한 문제는 무엇인가.

쌀값은 떨어지고, 농업 생산비는 폭등하고 있다. 쌀농사지으면 소득이 안 생긴다. 농민들도 농사지으면서 생활을 해야 하지 않는가. 생산비는 생산비대로 떼이고, 생활비는 남는 게 없다. 농민들이 “땅 사기 위해 돈을 빌렸는데, 돈 갚으려면 도로 땅을 팔아야 한다”라고 푸념한다. 그만큼 쌀 재배 농가들이 어렵다. 농민들은 땅을 사서 농사를 짓는다. 땅값은커녕 이자 비용을 감당하기도 어려울 지경이다. 

-야당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다시 발의해 통과시키겠다는 입장이다.

기존의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김진표 국회의장의 중재안이다. 쌀의 초과생산량 또는 예상치가 3~5% 이상이 되거나 수확기 쌀값이 평년보다 5~8% 떨어질 때 정부가 초과생산량을 의무적으로 매입한다는 것이다. 이는 현실적이지 않다. 10년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하는 수치다. 새 양곡관리법에는 농업 생산비가 보장되는 ‘최저가격제’와 함께 ‘자동시장격리제’가 포함돼야 한다.

*자동시장격리제: 쌀 수급 안정을 위해 일정 기준의 초과 생산 물량을 시장에서 자동 격리하는 제도

일정 조건이 충족하면 빨리 쌀을 시장에서 격리해야 한다. 정부가 늑장을 부리면 쌀값이 폭락하기 때문이다. 쌀값이 폭락하면 정부가 가격을 올리고 싶어도 올라가지 않는다. 지난해 시장 격리를 세 번에 걸쳐서 했는데도 가격이 오르지 않았다는 걸 알지 않는가. 하지만 자동시장격리제 만으로는 부족하다. 농민들이 생산비를 보장하는 최저가격제를 요구하는 이유다. 최저가격제는 노동자로 말하면 최저임금제와 비슷하다. 최소한의 농민 소득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농업 경영인 단체에서는 전략작물직불제도 주장한다.

우리나라의 쌀 자급률은 지난해 기준 82.5%밖에 되지 않는다. 쌀이 남는 게 아니라 부족하다. 전략 작물인 보리나 밀, 콩 등의 재배를 늘리고, 쌀농사를 줄인다고 해서 식량 자급률이 올라가지 않는다. 임기응변식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보고 식량작물 자급률을 높여야 한다. 쌀이 남는 이유는 수입산 쌀 때문이다. 수요량의 15% 쌀을 매년 수입한다. 수입쌀이 우리나라 쌀을 대체하기 때문에 쌀이 남는다. 

세계는 점점 자유무역에서 보호무역으로 변화하고 있다. 수입산 쌀 때문에 우리 국민의 주식을 생산하는 농민들이 피해를 봐선 안 된다. 수입쌀을 처리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같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 그러면 부족한 국내산 쌀이 정상화할 것이고 다른 데에 돈을 쓸 이유가 없다.

-새 양곡관리법이 시행되면 농민들의 삶은 어느 정도 나아질 전망인가.

최소한 농민들이 농사를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농민들의 농업소득은 연간 평균 1100만원 대다. 연 1100만원 가지고 먹고 살 수는 없다. 농민 소득은 도시 노동자들의 평균 임금의 60% 정도밖에 안 된다. 땅을 팔아서 이자를 갚는 형국이니 누가 농사를 짓겠나.

새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통해 농업 생산비가 보장되면 최소한 농민들이 빚은 갚으면서 살 수 있지 않을까. 농사만 지어도 먹고살 수 있게 된다면 젊은 사람들도 농업에 많이 뛰어들 것이다. 현재 농촌의 고령화가 심각한데, 문제가 조금이라도 해소되지 않을까 싶다.

-벼 재배 농민을 살리기 위한 다른 정책은 어떤 게 있을까.

현재 농민들이 요구하는 핵심은 농업 생산비 보장이다. 이를 위해서는 관련법이 필요하다. 지난해에는 생산비가 100~200% 폭등했다. 평균적으로 28.4%는 올랐다. 농산물 가격은 떨어지고, 생산비는 폭등했으니 얼마나 살기 어렵겠는가. 그래서 필수 농자재에 대해서는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 국회에서 필수 농자재 지원법을 만들어 지원해 달라. 

정부 역시 물가를 잡는다는 명목으로 농민만 잡는 정책을 펴서는 안 된다. 물가 때문에 농산물 가격을 매번 떨어트리려고 한다면, 생산비를 책임지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농민한테만 전가시키면 안 된다.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이 있다면. 

농민들이 요구하는 것은 대단한 게 아니다. 허황된 요구를 하는 게 아니다. 밥 한 공기 가격은 300원 보장. 국민들이 1년 내내 밥 먹어도 18만원어치 밖에 안 된다. 1년치 휴대전화 요금보다도 싸다. 농업 생산비를 보장하는 양곡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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